공갈포인 줄 알았더니 불방망이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4.09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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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용병 타자들 맹활약 홈런 ‘펑펑’ 터뜨리며 인기몰이

프로야구가 뜨겁다. 연일 홈런포가 터지고 있다. 덩달아 구장마다 야구를 즐기려는 관중도 늘어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는 “시즌 개막 열기만 본다면 올 시즌 분위기는 사상 첫 700만 관중 돌파에 성공한 2012시즌과 비슷하다”며 “시종일관 박진감 넘치는 경기가 이어져 내심 2012시즌 흥행 기록을 갈아치우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KBO 관계자의 말대로 올 시즌 프로야구는 ‘절대 강자’나 ‘절대 약자’ 없이 9개 구단 모두 고른 전력을 선보이고 있다. 시즌 초반임에도 명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야구계는 이러한 변화를 외국인 타자 도입 덕분으로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외국인 타자에 반신반의했던 야구계

“예전만 하겠나. 1990년대야 우리 투수들 실력이 많이 떨어졌을 때다. 지금은 류현진 같은 투수가 메이저리그를 호령할 만큼 수준이 높아졌다. 과거처럼 타율 3할, 홈런 20개, 타점 80개를 동시에 기록할 외국인 타자는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지난해 12월. KBO와 9개 구단이 외국인 타자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했을 때 한 구단의 투수코치는 2006년 이후 한국 야구 수준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장시간 설명하고서 “KBO와 9개 구단 사장의 결정이 괜한 수고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만이 아니었다. 야구인 대다수는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투수도 KBO 리그에서 난타당해 곧바로 퇴출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KBO 리그 투수들이 야수들보다 조금 수준이 높다는 걸 고려하면 웬만한 외국인 타자의 영입은 실패로 끝날 게 분명하다”며 “최근 몇 년간 외국인 타자들의 성적만 봐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실제로 2007년 클리브 브룸바(현대), 넬슨 크루즈(한화)가 각각 타율 0.308·29홈런·87타점, 0.321·22홈런·85타점을 거뒀을 때만 해도 ‘한 시즌 타율 3할·20홈런·80타점 이상’은 외국인 타자에겐 흔한 기대치였다.

그러나 2009년 로베르토 페타지니(LG)가 0.332·26홈런·100타점을 거둔 이후 어떤 외국인 타자도 ‘한 시즌 타율 3할·20홈런·80타점 이상’을 기록하지 못했다. 2011년 코리 알드리지(넥센)가 20홈런을 친 이후 한 시즌에 홈런 20개 이상을 친 외국인 타자는 아무도 없었다. 타격 정확성도 떨어져 2010년 가르시아가 타율 0.252를 기록한 게 최근 4년간 외국인 타자 중 최고 타율이다. 가뜩이나 2011년 삼성이 메이저리그 출신 타자 라이언 가코를 의욕적으로 영입했다가 중도 퇴출하자 야구계엔 ‘외국인 타자 무용론’이 일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각 팀은 영양가 없는 외국인 타자 대신 외국인 투수 영입에 몰두했다.  지난해 9개 구단이 담합이라도 한 듯 외국인 선수를 전부 투수로만 채운 것도 외국인 타자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올 시즌을 앞두고도 야구계는 외국인 타자 제도 도입이 실패로 끝날까 우려하는 눈치였다.

개막 4경기 가운데 3경기에서 결승타

외국인 타자 제도의 성공을 예상한 이도 있었다. 손혁 MBC SPORTS+ 위원은 “KBO 리그 투수의 실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된 건 사실이지만, 여전히 에이스급 투수와 3~5선발 투수의 실력 차가 크다”며 “외국인 타자가 매일같이 에이스급 투수와 상대하는 게 아닌 만큼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투수와 만나면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 역시 외국인 타자의 성공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이 위원은 “9개 구단이 영입한 외국인 타자 상당수가 메이저리그나 일본 프로야구 경험이 풍부한 검증된 선수들”이라며 “특히 젊은 선수가 많아 한국 프로야구에 빠르게 적응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시범경기에선 우려와 기대가 교차했다. 몇몇 선수는 한국 투수들의 정확한 제구에 연신 헛방망이질을 하며 1할대 타율에 머물렀다. 반면 경기마다 ‘펑펑’ 홈런을 치는 선수도 있었다.

3월29일 정규 시즌 개막전을 앞두고 야구계는 외국인 타자의 활약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정작 뚜껑이 열리자 기대가 우려를 압도했다.

3월29, 30일 이틀에 걸쳐 열린 정규 시즌 개막 2연전에서 외국인 타자 7명(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롯데 히메네스 제외)은 52타석 46타수 15안타, 5홈런, 15타점을 합작했다. 타율 0.326, 출루율 0.404, 장타율 0.826은 야구계가 기대한 성적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외국인 타자들은 찬스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29일 잠실 두산-LG전, 사직 한화-롯데전, 문학 넥센-SK전은 외국인 타자가 죄다 결승타를 올린 경기였다. 야구계는 “지난해 같으면 아깝게 무산될 찬스가 개막전에선 외국인 타자의 한 방 덕분에 득점으로 연결됐다”며 “팀 승리에 외국인 타자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4월 이후 투수들의 반격 시작된다?

4월2일을 기준으로 홈런 1, 2위는 모두 외국인 타자다. 조시 벨(LG)이 3개로 1위, 호르헤 칸투(두산), 야마이코 나바로(삼성), 브렛 필(KIA)이 2개씩을 쳐 2위를 달리고 있다. 타점도 마찬가지다. 벨이 7개로 1위, 나바로가 6개로 2위다.

야구 전문가들은 당분간 외국인 타자가 리그를 지배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4월이 지나면 상황이 달라지리라 예상하는 이도 적지 않다. 한 구단의 전력분석팀장은 “한 달 정도 데이터가 쌓이면 외국인 타자의 장단점이 드러날 것”이라며 “벌써부터 약점을 노출하는 타자가 생기고 있어 5월이 되면 팀마다 외국인 타자 대책이 수립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도권 팀의 전력분석팀장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올 시즌 KBO 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타자 대다수가 몸쪽 공에 약하고, 바깥쪽과 높은 공엔 매우 강하다”며 “체인지업이나 종으로 떨어지는 포크볼 같은 변화구에도 약한 만큼 투수들이 실투를 줄인다면 좋은 승부를 펼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야구는 일본 야구 못지않은 ‘현미경 야구’로 유명하다. 단점을 발견하면 여지없이 그쪽으로만 승부한다. 문제는 역시 제구다. 이용철 해설위원은 “몸쪽 공은 잘 던지면 ‘명약’, 실투하면 ‘쥐약’”이라며 “한국 투수들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 중앙으로 공이 몰리지 않고, 계속 몸쪽으로만 승부할 수 있는 선수는 몇 명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투수들의 집중 견제 속에서도 시즌 내내 롱런할 외국인 타자는 누구일까. 많은 전문가는 입을 모아 펠릭스 피에(한화)를 꼽는다. 손혁 해설위원은 “피에는 선구안이 뛰어나 웬만한 볼엔 배트가 나가지 않는다”며 “특별히 약한 코스도 없어 부상만 당하지 않는다면 2011년 페타지니 이후 3년 만에 ‘타율 3할·20홈런·80타점 이상’을 기록하는 외국인 타자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4월2일까지 피에는 4경기에 출전해 16타수 7안타 볼넷 3개, 5타점, 타율 0.438, 출루율 0.526을 기록 중이다. 4월2일 현재까지 홈런포는 가동하지 못했지만, 19타석에 들어설 동안 삼진을 1개도 당하지 않는 뛰어난 선구안을 과시했다.

외국인 타자들이 예상 밖의 선전을 펼치며 프로야구는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다. 아직 시즌 초반이지만, 1위부터 9위까지 승률 5할을 기록하며 공동 1위(4월2일 기준)를 달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김응용, 외국인 타자 활약에 ‘싱글벙글’

이 가운데 한화의 약진이 돋보인다. 비록 4경기를 소화했을 뿐이지만 한화는 2승2패를 기록 중이다. 지난해 개막 13연패를 당한 팀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상큼한 출발이다. 한화가 좋은 스타트를 한 것은 피에·정근우·이용규를 영입하며 타선을 강화한 덕분으로 풀이된다.

김응용 한화 감독은 “1번 이용규, 2번 정근우가 가세한 후 득점 기회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며 “중심 타선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제때 한 방씩을 쳐주는 덕분에 지난해보다 훨씬 수월하게 경기를 풀어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은 특히 피에의 활약을 높이 평가했다. 김 감독은 “피에가 3번에서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며 다른 타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많은 외국인 타자 후보 가운데 피에를 낙점한 건 행운이었다”고 밝혔다.

이만수 SK 감독도 “메이저리그 출신의 루크 스캇이 입단하고 타자들이 스캇의 훈련법과 자기관리법을 눈여겨보면서 프로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 같다”며 “외국인 타자 한 명 영입이 이토록 팀에 좋은 영향을 줄지 몰랐다”고 평가했다.

과거에도 타이론 우즈(두산), 훌리오 프랑코(삼성) 등 뛰어난 외국인 타자가 KBO 리그에서 뛰며 국내 선수들에게 자극을 준 바 있다. 지금은 일상이 된 웨이트트레이닝과 명상 등도 1998년 외국인 타자들이 KBO 리그 무대를 밟으며 국내 선수들에게 전수한 것이다.

시즌 초반이지만 일단 외국인 타자 제도 도입은 여러 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코리안 드림’을 꿈꾸는 외국인 타자들은 오늘도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다.


문제적 외국인 타자 3선 


제이 데이비스(한화): 무려 7년이나 한화에서 뛰었던 최장수 외국인 타자다. 혼자서 부동산중개업소에 찾아가 월세 아파트를 계약할 만큼 한국 생활에 잘 적응했다. 오랜 세월 마이너리그를 전전해선지 돈에 대한 집착이 강했다고 한다. 구단이 옵션을 잘 챙겨주면 열심히 뛰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태업성 플레이를 펼쳤다.

그라운드 안에선 누구보다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보였다. 문제는 그라운드 밖에서도 열심이었다는 것. 데이비스는 경기가 끝나면 전국 각지의 단골 카페로 달려가곤 했는데 새벽 3시가 넘도록 음악과 술에 취해 인생을 즐겼다. 재미난 건 그럼에도 한 시즌을 빼고 6시즌 동안이나 타율 0.280·20홈런·70타점 이상을 꾸준히 기록했다는 점이다.

펠릭스 호세(롯데): 국내 야구팬이 기억하는 최강 외국인 타자 가운데 한 명이다. 199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에 뽑힐 정도로 빅리그 경험이 풍부했던 호세는 1999년 롯데 유니폼을 입고 타율 0.327·36홈런·122타점을 기록하며 팀을 한국시리즈 진출로 이끌었다.

원체 다혈질이라 빈볼이 날아오면 난투극을 벌이기 일쑤였다. 그라운드 밖에선 더없이 매너가 좋아 부산 시내 유흥업소 종사자는 그를 ‘밤의 신사’로 불렀다. 한 구단의 스카우트는 2012년 도미니카를 찾았다가 해변가에서 미녀들에 둘러싸여 칵테일을 마시는 호세를 만났다. 호세는 “부산이 그립다”며 “꼭 한 번 다시 부산에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2013년 간절한 바람은 이뤄졌다. 호세는 롯데 초청으로 꿈에 그리던 부산 사직구장을 밟았다. 하지만 정작 꿈에 그리던 게 야구장만은 아니었던 모양. 호세는 사직구장에서 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진 뒤 곧바로 부산 유흥가를 찾아가 ‘밤의 신사’로 변신했다고 한다.

숀 헤어(해태): 뛰어난 성적을 기록한 외국인 타자는 아니었다. 반대였다. 1998년 해태(KIA의 전신)에 입단해 29경기만 뛰고 퇴출당했다. 하지만 역대 어느 외국인 타자보다 그를 아는 야구팬이 많다. 헤어의 명언 때문이다.

헤어는 해태에 입단하고서 홈구장인 광주구장을 둘러보다가 “여기는 외야 펜스가 아니라 장외로 넘겨야 홈런이냐”고 자신만만하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여기다 김응용 해태 감독에게 “타율 3할을 원하느냐, 30홈런을 원하느냐”는 호기로운 질문을 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헤어는 ‘건방진 외국인 타자’의 대명사로 불렸다. 그러나 호언장담과는 달리 헤어는 1개의 홈런도 치지 못한 채 쫓겨났다.

하지만 정작 헤어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헤어를 기억하는 이들은 “당시 광주구장 외야 펜스가 이중으로 돼 있어 헤어가 ‘앞펜스를 넘겨야 홈런이냐, 뒷펜스까지 넘겨야 홈런으로 인정받느냐’고 질문했을 뿐”이라며 “원체 겸손해 잘난 척하는 법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해태 사령탑이던 김응용 한화 감독 역시 “헤어가 내게 ‘타율 3할을 원하느냐, 30홈런을 원하느냐’ 같은 말은 한 적이 없다”며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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