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의 ‘들개’들이 몰려온다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4.04.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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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자> <이쁜 것들이 되어라> <셔틀콕> 등 다양성 영화 풍성

올해 들어 한국 영화의 성적이 주춤하다. 4월 초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월1일부터 3월31일까지 올해 1분기 한국 영화 점유율은 47.7%다. 전년도 1분기에 68.6%였던 것을 감안하면 하락 폭이 꽤 크다. <수상한 그녀>가 865만 관객을 모으며 선전했지만 함께 극장가 흥행을 견인할 한국 영화가 없었던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애니메이션 최초로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겨울왕국>을 비롯해 <노아>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공세가 거셌던 것도 한 원인이다.

4월부터는 한국 영화, 그중에서도 다양성 영화의 약진이 기대된다. 다양성 영화라는 용어는 주요 투자배급사의 거대 예산이 투입된 작품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쓰인다. 작품성과 예술성이 담보된 소규모 저예산 영화를 지칭하며, 이른바 독립영화로 구분되는 작품 대다수가 이에 속한다.

하지만 모든 독립영화가 자동적으로 다양성 영화라는 명함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심사 과정을 거쳐 공식 인정을 받은 작품만이 다양성 영화의 범주에 들 수 있다. 주로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독립영화 전용관에서 상영하며, 일반 상영관에서는 상업영화에 비해 상영 회차가 적다.

영화 ⓒ CGV 무비꼴라쥬
때문에 상업영화에 비해 관객 접근성은 좋지 않은 편이다. 다양성 영화로 분류된 작품은 관객 수 1만명을 모으면 흥행작으로 불리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하지만 다양성 영화에는 상업영화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상상력과 신선한 재미가 있다. 신인 감독의 패기 넘치는 작품을 대거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갑다. 국내와 해외 영화제를 거치며 이미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양질의 다양성 영화가 대거 개봉하는 올해 4월만큼은 극장가에서 아래의 영화에 주목해도 좋을 것이다.

블록버스터 비수기에 등장한 다양성 영화

4월3일 개봉한 <들개>는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장편연구제작과정 지원작이다. KAFA는 봉준호·장준환·최동훈·민규동·조성희 등 스타 감독을 배출한 기관으로 매년 졸업생의 작품 중 몇 편을 엄선해서 제작 전 과정을 지원하고 이를 정식 개봉한다. <들개>는 사제 폭탄을 만드는 정구(변요한)와 그의 앞에 나타난 ‘상또라이’ 효민(박정민)의 이야기다. 젊은 세대의 치기를 폭탄이라는 소재에 투영한 것은 단순하고 직설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조금 투박할지언정 꿈틀대는 에너지로 가득하다. 불온한 욕망을 품은 동시에 사회에 안전하게 편입되고 싶은 정구의 간절함과 온갖 체제와 법칙을 무너뜨리고 싶은 효민의 광기가 팽팽하게 부딪쳐 불편하고 기이한 정서를 만들어낸다. 타협도 없고 절충도 없다.

4월10일 개봉한 <보호자> 역시 KAFA 장편연구제작과정 작품이다. 유괴한 아이를 맞바꾼다는 설정을 통해 선택의 기로에 놓인 등장인물의 도덕적 딜레마에 주목한다. 계속해서 사건을 새로운 국면으로 바꾸며 극의 긴장을 놓치지 않는 영화다. 4월17일 개봉한 로맨틱 코미디 <이쁜 것들이 되어라>까지 다양한 장르로 무장한 세 편의 KAFA 작품은 저마다의 독특한 개성을 발휘하며 기성 감독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작가 감독의 탄생을 기대하게 한다.

신인 감독의 빛나는 감성 목격하는 즐거움

이수진 감독의 <한공주>(4월17일 개봉)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부터 최고의 화제작이었다. 각종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며 개봉 전부터 화제를 몰고 다닌 지 오래다. 영화는 또래 남학생 수십 명에게 윤간당한 후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 애쓰는 소녀 공주(천우희)의 이야기를 그린다. 공주의 고통은 얼마나 깊고 무거울 것인가. 그리고 주어진 시간을 충실히 살아가려는 노력은 얼마나 절박할 것인가. <한공주>는 이러한 지점을 무엇보다 깊게 고민한 영화로 보인다. 

4월24일 나란히 개봉하는 세 편의 영화도 기대작이다. 이유빈 감독의 <셔틀콕>은 고등학생 민재(이주승)의 이야기다. 그는 재혼한 부모님의 사망보험금을 가지고 사라진 의붓누나 은주(공예지)의 행방을 수소문한다. 단순하게 보면 한 소년의 성장물이지만 그 안을 채운 층위는 꽤 다양하다. 길 위의 여정을 담은 로드무비, 호되게 짝사랑을 앓는 소년의 로맨스, 민재와 함께 길을 떠난 의붓남동생 은호(김태용)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별적으로 보면 하나로 묶기 어려운 소재를 부드럽게 엮은 평범치 않은 구조 안에서 사랑의 설렘, 가족에 대한 애증 등 보편적인 정서를 길어 올린 연출 솜씨가 돋보인다.

<10분>은 직장생활을 소재로 사실적이고 생생한 ‘현실’을 묘사한다. 인턴 직원으로서 정규직을 꿈꾸는 호찬(백종환)이 낙하산으로 들어온 직원 때문에 좌절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호찬이 처한 상황이 점점 부조리해지면서 극의 긴장도 가파르게 상승한다. 회사라는 조직 내의 인간관계를 다층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직장인 관객으로부터 큰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이메일>은 홍재희 감독이 자신의 아버지가 남긴 기록과 가족의 인터뷰, 재연 드라마를 토대로 아버지와 그가 살았던 시대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 뒤에는 모진 시대가 있었고 그도 한 인간이었음을 깨닫게 한다. 2012년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작품들이 있어 4월의 극장가가 몹시 풍성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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