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유럽까지 ‘열차 여행’ 실현되나
  • 홍순도│아시아투데이 베이징 특파원 ()
  • 승인 2014.04.30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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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혜 코레일 사장 평양 OSJD 회의 참석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축 기대

한반도는 섬이 아니다. 이론적으로는 누구나 걸어서 프랑스 파리까지도 갈 수 있다. 열차로 가는 것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일제 강점기 때도 부산에서 유럽까지 열차를 타고 다니는 것이 가능했으니, 지금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한반도종단철도(TKR)’를 구축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및 유럽철도와 연결하는 이른바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를 완성하면 된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한 대치 상황에서는 꿈이라고 볼 수 있다. 남북 관계 경색으로 TKR 구축조차 쉽지 않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최근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어 주목된다.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4월24일부터 28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을 방북했다는 사실까지 더하면 실크로드 익스프레스 구축 사업은 현재진행형이라고 해도 괜찮을 듯하다. 더구나 최 사장의 방북이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라 최근 일련의 남북 경협 흐름에 의해 추진된 것이라는 사실에 비춰보면 SRX 프로젝트 추진이 그리 먼 얘기만은 아닌 듯하다.

대북 사업가 김 사장, 북한 부총리급과 계약

지난해 말부터 한국의 대북 사업가인 김 아무개 사장은 극비리에 ‘신의주-개성 간 고속철도 사업’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50대 초반인 그는 1992년 한·중 수교 직후인 20여 년 전 중국에 진출해 제법 성공을 거둔 교민 사업가로 유명하다. 그는 김대중 정권의 햇볕정책이 본격화하자 평소 관심이 있던 북한과의 사업에 눈을 돌렸다. 이후 평양을 수차례 왕래하면서 중국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아예 대북 사업가로 변신했다. 중국에서 웬만큼 굵직한 남북 경협 사업 중에는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게 없을 정도로 실적도 좋았다.

하지만 대북 강경 정책으로 일관했던 이명박 정권의 등장은 그에게 재앙이었다. 되는 사업이 없었다. 수입이 ‘제로’인 달이 한두 달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버텼다. 북한에서 고관이나 사업 파트너, 지인들이 나오면 빚을 내서라도 정성껏 지원했다. 대북 사업가를 자처하는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감옥에 가거나 파산한 지난 5~6년 동안 그랬다. 이로 인해 그의 지갑은 얇아졌으나 북한·중국 인맥은 크게 확장됐다. 그에 대한 북한의 신뢰 역시 굳어졌다.

그는 이를 바탕으로 지난해 7월께 필생의 사업으로 늘 뇌리에 담아두고 있던 신의주-개성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패키지 건설 프로젝트를 북한 당국에 제안했다. 이에 대한 답이 오기 직전까지는 중국 측 합작 파트너 회사인 ‘상디관췬(商地冠群)’의 미창(密昶) 사장과도 사업의 구체적 추진을 위해 상당 기간 머리를 맞댔다. 거기서 “누가 하더라도 해야 되는 대박 사업이니 우리가 하자”는 결론을 냈다. 북한 당국에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날아왔다. 상디관췬의 ㅎ 이사는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 없다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솔직히 자금은 문제가 안 된다. 우리 회사의 실질적 오너는 중국 최고 지도부와 통하는 태자당의 실세인 정부 부처 국장급 관료 출신 ㅅ씨다. 자금을 모집하려고 하면 수십억 달러 정도는 순식간에 가능하다. 가능하면 (외부) 투자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데, 일본 자금이 우리를 계속 노크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 기업이 연합하는 컨소시엄도 가능하다. 사업비 200억 달러 확보는 별로 어렵지 않다. 기술은 중국이나 한국 모두 다 가지고 있지 않나?”

2014년 4월21일 최연혜 코레일 사장이 평양에서 열리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베이징 역에서 평양행 국제열차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이후 프로젝트 추진을 위한 발걸음은 빨라졌다. 우선 지난해 12월 말에는 기본적인 의향서가 상디관췬과 김 사장의 한국 내 합작회사, 북한의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사이에 작성됐다. 올해 3월 말에는 법적으로 유효한 계약이 김 사장과 부총리급인 김기석 북한 국가경제개발위원회 위원장 사이에 정식 체결됐다. 이때 북한에서는 철도 건설 전문가들과 관계 부처 차관급들이 대거 동석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에 기울이는 북한의 관심과 기대를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 이 프로젝트의 추진 주체인 한·중 컨소시엄 책임자 김 사장의 설명이다.

“북한은 궁극적으로 신의주-개성 고속철도를 ‘중국종단철도(TCR)’ 및 TSR과 연결시키기를 원한다. 남측과 연결해 TKR을 구축하는 문제도 전향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만 되면 SRX 구상이 현실화할 수 있다. 문제는 지금 같은 경색 국면에서 TKR 구축이라는 현안이 남북한 간에 적극적으로 논의될 수 있느냐다.”

신의주-개성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패키지 구축 사업의 중국 측 사업 주체인 상디관췬의 관계자들과 북한 측 관계자들이 최근 자리를 함께한 모습. 오른쪽이 미창 상디관췬 사장, 왼쪽은 현 북한 외무상 리수용. ⓒ 홍순도 제공
‘5·24 조치’와 코레일 적자가 걸림돌

김 사장의 말처럼 신의주-개성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패키지 구축 사업이 본격 추진되면 진짜 TKR 구축은 현실이 될 수 있다. SRX는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문제는 남북 양측이 이에 대한 의지를 갖고 있느냐에 달렸다. 그런 면에서 이번 최연혜 코레일 사장의 방북은 주목되는 점이 많다. 이는 한국 정부가 신의주-개성 프로젝트에 대해 진작부터 잘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SRX 실현에 필요한 회원국들의 만장일치 동의를 얻기 위해 코레일이 3월21일 OSJD의 제휴 회원으로 가입한 사실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최 사장의 방북 성사와 관련해 SRX 구축에 대해서만큼은 남북한 간에 상당한 교감이 있었던 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남한 측이 적극 나서면서 그동안 단절되다시피 한 양측의 물밑 접촉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남한 측은 최 사장 방북을 통해 북한의 진짜 의향을 타진해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현지에서는 이 물밑 접촉의 파이프라인 역할을 김 사장이 했다는 설이 파다하다.

SRX 구축 프로젝트가 현실화하는 데는 여전히 적지 않은 걸림돌이 있다. 무엇보다 남북 간 교류를 막고 있는 5·24 조치의 해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당장 신의주-개성 고속철도 및 고속도로 패키지 구축 사업에 대한 한국 기업들의 참여가 불가능하다. 또 적자 규모가 큰 코레일이 신의주-개성 프로젝트와 TKR 구축 프로젝트에 참여해 대대적인 투자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 역시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최연혜 사장이 평양을 방문하면서 자신의 방북은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현재 분위기만 놓고 보면 SRX 구축 프로젝트는 낙관 쪽으로 흘러가는 듯하다. 서울이나 부산, 목포에서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가는 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 될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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