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준·유정복 ‘위기’ 김상곤 ‘휘청’
  • 양정대│한국일보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5.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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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직격탄으로 확 바뀐 수도권 여야 경선 판도

“어제부터 권영진 얘기가 좀 나옵디다. 그래도 설마설마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 같아요?”

4월29일 오후 7시쯤 대구 출신 새누리당 한 의원에게 대구시장 후보 경선 결과에 대해 몇 가지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가 도리어 이런 질문을 받았다. “글쎄요”라고 얼버무리는 기자에게 이 의원은 “대구가 이 정도면 수도권 선거는 해보나 마나지”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길게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세월호 참사에 따른 민심 이반을 우려한 것이었다.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경선 결과를 접한 정치권은 그야말로 ‘깜놀(깜짝 놀라다의 줄임말)’ 분위기다. 대구는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어서 이른바 ‘친박(親박근혜)계의 성지’로 불린다. 그런데 이곳에서 ‘비박(非박근혜)계’인 권영진 전 의원이 친박계 핵심 인사 2명을 꺾었다. ‘국정원 지킴이’를 자처하며 보수층 표밭을 일궈온 대구 북구 을 지역구 3선 서상기 의원, 박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워 친박 소장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대구 달서구 병 지역구 재선 조원진 의원은 4명 가운데 3, 4위라는 충격적 성적표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더구나 권 전 의원의 지역구는 대구도 아닌 서울이었다. 누구도, 심지어는 권 전 의원 자신조차 대구시장 후보에 자신이 당선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정몽준·이혜훈·김황식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 후보(왼쪽부터). ⓒ 사진공동취재단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 급락

대구시장 후보 경선 결과에 친박계는 충격에 빠졌다. 일각에서는 “권 전 의원도 사실상 넓은 의미에서 친박 아니냐”며 애써 자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대선 때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전략조정단장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는 점을 들어 ‘월박(越朴: 타 계파에서 넘어온 친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권의 심장 격인 대구의 상징성을 감안할 때 이 같은 해석은 ‘변명’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언론과 전문가들이 일제히 ‘반란’이자 ‘이변’으로 평가한 게 단적인 예다. 게다가 시기적으로는 세월호 참사 정국의 한복판이었다. 정부의 부실 대응과 허술한 재난 안전 대책 때문에 ‘박근혜정부 무능론’이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박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떠받쳐온 대구에서조차 ‘박심(朴心)’이 외면받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세월호 참사는 6·4 지방선거의 전반적인 구도를 뒤흔들고 있다. 대체로 박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한 실망과 비판 여론이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예상이 나오는 가운데, 실제 각 당 내부의 경선 판도도 요동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대 격전지인 수도권에서 여야를 가리지 않고 일부 유력후보들에게 이번 참사의 불똥이 튀고 있기 때문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당초 예상됐던 본선 대진표가 완전히 뒤바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박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다음 날인 4월30일 ‘디오피니언’이 전국 성인 남녀 800명을 대상으로 면접조사 방식(95% 신뢰 수준에 ±2.0%포인트)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한때 70%까지 올랐다던 박 대통령 지지율이 48.8%까지 폭락했다. 해당 기관 조사만 놓고 봐도 한 달 만에 13.0%포인트나 떨어졌고, 이는 지난해 2월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최저치였다. 새누리당 지지율도 33.3%로 급전직하했다. 또 이번 세월호 참사 이후 지지 후보를 변경했다는 응답자가 전체의 20.0%였는데, 이 중 57.9%는 여당 후보를 지지했다가 야당 후보 지지로 바꿨다고 답했다. 반대로 야당 후보 지지에서 여당 후보로 바꿨다는 응답자는 26.4%에 그쳤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보면 “이러다가 2008년 촛불 정국처럼 상황이 흘러가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한 친박계 핵심 당직자)는 우려가 현실화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4월16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 김상곤·김진표·원혜영 경기도지사 예비후보가 경기도의회 생활임금조례 통과 환영 및 생활임금제 전국 확대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반사이익 못 얻고 주춤대는 김황식

새누리당 내부에서는 무엇보다 코앞으로 다가온 수도권 경선을 보며 전전긍긍하고 있다. 유력한 서울시장 후보로 꼽혔던 정몽준 의원, 박 대통령의 ‘복심(腹心)’으로 불리며 인천시장 선거에 나선 유정복 전 안전행정부장관 때문이다.

당초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선 정 의원의 압승이 예상됐다. 출마 선언 과정부터 박심 지원 논란에 휩싸였던 김황식 전 총리가 친박계 핵심 인사들을 캠프의 전면에 내세우면서 사실상 노골적으로 ‘박심 마케팅’에 나섰지만, 경선 과정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 정 의원은 실의에 빠진 유가족과 분노한 국민들을 향해 ‘미개하다’는 망언을 쏟아낸 막내아들 때문에 수렁에 빠졌다. 정 의원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당내 우려는 갈수록 커지는 분위기다. 특히 정 의원 측의 ‘헛발질’에도 불구하고 당내 경선 판도가 격차는 좁혀질지언정 김 전 총리가 막판 뒤집기에 성공할 가능성이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는 점 때문에 고민이 큰 모습이다. 새누리당의 한 수도권 재선 의원의 말이다.

“김 전 총리는 아직까지 정치인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쫓아가는 입장이면 이슈를 만들어 그 중심에 서야 한다. 욕을 먹더라도 정 의원 막내아들 얘기로 평지풍파를 일으켜야 하는데 너무 점잖다. 이래선 못 뒤집는다. 물론 격차는 좁혀질 것이다. 그런데 정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가 되면 새누리당 입장에선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야당이 가만있겠나. 무엇보다 국민들이 용납하겠나. 자칫 다른 지역 선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새누리당 인천시장 경선을 두고는 온갖 루머들이 난무하고 있다. 유 전 장관이 직전 안행부장관이어서 이번 참사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당초 예상과 달리 안상수 전 시장과의 당내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상황에서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중도 사퇴설이 도는가 하면, 본선 패배를 예상해 경선에 힘을 쏟지 않는다는 얘기까지 나돌았다. 안 전 시장 측 관계자는 “인천시민들이 점잖아서 그렇지 이미 대세는 기울었다”고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중앙당 전략기획본부의 한 당직자도 “인천시장 선거는 진짜 뚜껑을 열어봐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오는 5월11일 뚜껑을 여는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 경선도 ‘세월호 태풍’을 맞고 있다. 후보로 나선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도 도의적 차원에서 보면 당사자 격이기 때문이다. 4월 말께 경쟁자인 김진표·원혜영 의원이 조용하게나마 선거운동을 재개한 데 비해 김 전 교육감은 여전히 잠행 중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고위 당직자는 “그렇잖아도 김 전 교육감의 상승세가 주춤했었는데 이번 세월호 참사로 일정 부분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이슈는 세월호 참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제한 뒤 “유권자들은 안전 문제를 비롯한 세부 공약보다는 나와 가족과 이웃의 안전을 믿고 맡길 수 있는 후보를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본선뿐만 아니라 당내 경선에서도 세월호 참사와 연관된 후보들에 대해서는 민심과 당심 모두 불편해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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