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힘들어하는 사람 더욱 힘들게 할 권리는 없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5.07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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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하고 느린 독일 재난 보도, 성급한 한국 언론과 대조

대한민국 언론은 세월호 참사 보도 경쟁을 통해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냈다. 과다한 속보 경쟁으로 오보가 속출하고, 자극적인 문구와 화면을 정제 없이 내보냈다. 국민의 지탄은 이번 사고를 일으킨 선사와 선원 그리고 정부에 이어 언론에도 이어졌다. 그렇다면 재난 보도에서 가장 선진적인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독일 언론은 이번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다뤘을까.

지난 4월16일 오전. 독일의 뉴스 사이트인 ‘슈피겔 온라인(Spiegel Online)’ 첫 화면에 “수학여행 참사: 남한 해역에서 페리호 침몰, 사망자·부상자 다수”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다. 독일 시각으로 6시40분(독일과 한국은 현재 서머타임제 때문에 7시간 시차가 난다)에 올라온 이 기사에는 실종자 수가 300명 이상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 시각 한국 언론사 홈페이지에는 국내 뉴스인 만큼 속속 기사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취재 과정의 혼선과 분투가 ‘결과물’인 기사에 여과 없이 담겨 있었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용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실종자 수를 공유하면서 일희일비했다. 눈앞이 까마득했지만 정확한 정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새로 고침’을 누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최초로 발견된 희생자의 본명과 나이가 알려졌고, 생전 사진까지 기사화되었다.

‘슈피겔 온라인’의 후속 보도는 최초 보도가 나오고 약 4시간 후인 오전 10시30분에 있었다. 역시 첫 화면 기사였고, “수학여행 비극: 남한에서 페리호 침몰로 300여 명 실종”이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구조된 어느 학생이 YTN과 한 인터뷰는 익명으로 처리돼 있었다. 이날 마지막 보도는 오후 5시50분쯤에 올라왔다. 배에 탔던 사람들의 사연을 좀 더 상세하게 담고 있었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학생들의 이름은 모두 익명으로 처리됐고, 탈출에 성공한 한 중년 승객과 진도로 달려간 부모들의 이름만 공개됐다. 단원고등학교 이름도 이 기사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언급되었다. 세월호 사건을 다루는 ‘슈피겔 온라인’의 조심스러운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엿새째인 4월21일 전남 진도 팽목항에서 외신기자들이 취재를 하고 있다. ⓒ 뉴스1
출판 기본원칙 준수는 언론의 명예 문제

일각에서는 한국 언론이 ‘재난 보도 준칙’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아서 우왕좌왕했다고 지적한다. 독일에도 별도로 마련된 재난 보도 준칙은 없지만, 언론평의회(Presserat)가 정한 출판 기본원칙 16개 조항이 모든 취재와 보도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독일 언론평의회의 에다 아이크 대변인은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재난 보도를 할 때는 특히 2조 신중히 보도할 의무, 8조 인격 보호의 의무, 11조 센세이셔널한 보도를 피할 의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문을 보도하지 말고 반드시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하며, 피해자의 이름은 당사자의 동의하에 싣고, 불필요하게 자극적인 이미지와 촬영 기법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속보에도 예외는 없다. 아이크 대변인은 “속보를 낼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면, 더욱더 정보를 주의 깊게 다뤄야 한다”고 주장했다.

언론평의회는 언론을 감독하는 국가 기구가 아니다. 언론사 소유주와 언론인들이 함께 만든 단체다. 출판 기본원칙 위반에 대해 내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은 ‘공개 질책’이다. 지난해 접수된 1347건의 불만 사항 중 가장 엄격한 제재 조치인 ‘공개 질책’을 받은 것은 불과 28건이다. 아이크 대변인은 “벌금형은 자본력이 있는 대형 언론사에는 별 효과가 없다. 그러나 공개 질책의 경우 모든 언론사에서 이를 보도한다. 일종의 ‘프랑거(Pranger)’ 기능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세 시대에 죄인을 마을 광장에 마련된 기둥(프랑거)에 묶어 욕을 보였듯이, 직업윤리를 위반한 언론사의 신뢰와 명예에 벌을 내리는 것이다.

세월호 보도에서 드러난 한국 언론의 문제는 규칙의 부재에서 비롯되지 않았다. 한국기자협회가 정한 윤리강령 및 실천요강의 내용은 독일의 출판 기본원칙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한국기자협회는 자살 보도 윤리강령과 인권 보도 준칙, 국가안보 위기 시 군 취재·보도 기준,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 기준 등 독일보다 분야별로 훨씬 세분화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강령은 말 그대로 선언일 뿐으로 세월호 취재와 보도에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다.

사고 발생 3일째인 4월18일에는 단원고 교감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2004년에 마련된 자살 보도 윤리강령을 비웃듯 언론사들은 경쟁적으로 헤드라인에 ‘자살’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저널리스트는 공중(公衆)의 대변자”

이러한 소식을 자극적으로 보도한 독일 매체도 있다. 황색 언론의 대명사 ‘빌트 온라인(Bild Online)’이다. 이 매체도 ‘슈피겔 온라인’과 마찬가지로 진도 현지에 취재진을 보냈다. 그러나 같은 사건을 다루는 두 매체의 보도 방식은 판이하다. 빌트는 자살한 교감의 성명은 물론 사진과 유언장 내용까지 다 공개했다. 2000여 명이 이 기사를 페이스북을 통해 공유했고, 1200여 명이 ‘좋아요’를 눌렀다. 반면 ‘슈피겔 온라인’은 이 소식을 아예 전하지 않았다. 요란한 애도보다 침묵이 필요하다는 무언의 코멘트였다.

희생자인 교감의 인간적 존엄성과 저널리즘의 가치를 지켜낸 것은 ‘슈피겔 온라인’이다. 이는 독일 언론평의회의 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빌트 온라인’은 2013년 한 해에만 9건의 공개 질책을 받았다. ‘슈피겔 온라인’은 1994년 창설 이래 단 한 차례도 공개 질책을 받지 않았다. 독자의 신뢰가 어디로 향하는지는 분명하다.

독일 언론평의회의 홈페이지에는 어떤 보도가 출판 기본원칙의 어떤 조항을 위반했는지 등이 실제 사례를 통해 알기 쉽게 정리돼 있다. 이뿐만 아니라 원칙이 실제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각 언론사의 수습기자 및 외신기자를 대상으로 세미나를 열고 출판 기본원칙을 교육한다. 벤노 슈빙함머는 독일 최대의 통신사인 ‘dpa’에서 2년간 수습기자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사실 출판 기본원칙은 건강한 인성을 갖춘 사람에게는 자명한 내용이다. 그러나 신중한 판단을 내릴 때 도움이 되는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내용들은 회사의 법률 전문가가 진행한 언론법 강의를 통해 배울 수 있었다”고 전했다.

취재 과정에서 저지른 실수는 보도되기 전 편집 데스크에서 걸러진다. 즉 뉴스의 책임을 기자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데스크에서 지는 것이다. 슈빙함머는 “뉴스는 항상 보도를 해도 좋을지 말지 경계에 서 있다. 그렇기 때문에 ‘dpa’에서는 어떤 글이든 반드시 다른 사람의 검토를 받아 내보내며, 사안이 중대할 경우 뉴스 책임자의 추가 검토를 통해 법적으로나 내용상으로나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을 차단한다”고 밝혔다. 아이크 대변인 역시 “뉴스의 게재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편집부”라며 편집부가 보도윤리를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독일 언론의 재난 보도에 ‘특별한 비밀’은 없었다. 기자는 피해자와 희생자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정확하게 취재하고, 편집국은 뉴스의 질과 내용을 책임지면 된다. 그러나 마땅한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가장 치명적인 치부다. 사회 전 영역에서 부정과 비리가 자행되는 동안 안타깝게 희생된 것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그대로 따른 어린 학생들이었다. “희생자나 피해자를 인터뷰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입이다. 저널리스트는 공중(公衆)의 대변자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을 더욱 힘든 상황으로 끌어내릴 권리는 없다”는 슈빙함머의 당연한 답변에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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