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녀들 전사 되어 총을 들다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4.05.07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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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시리아로…‘지하드’ 이름으로 미성년자까지 끌어들여

오스트리아 빈에서 함께 학교를 다니던 두 소녀가 지난 4월10일 홀연히 사라졌다. 삼라 케시노비치는 열여섯 살, 사비나 셀리모비치는 고작 두 달 전에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았다. 자매처럼 닮은 두 소녀는 가족에게 이별의 편지를 남겼다. “우리는 이슬람교를 위해 싸울 것이다. 천국에서 만나자.”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의 페이스북에는 여러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AK-47 소총을 들고 무장 전사들에게 둘러싸인 낯선 모습의 사진들이었다. 푸른 차도르를 입은 셀리모비치는 그나마 알아보기 쉬운 모습이었다. 케시노비치는 얼굴까지 감싼 검은 부르카로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천에 난 틈 사이로 속눈썹이 긴 파란 눈동자만 보일 뿐이었다.

두 소녀의 부모는 실종 신고를 했고, 빈 경찰은 곧 인터폴에 실종자 수배를 요청했다. 둘의 행적은 묘연하다. 케시노비치와 셀리모비치는 빈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터키 이스탄불로, 그리고 다시 터키 중남부 지역인 아다나로 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들의 휴대전화가 마지막으로 신호를 보낸 곳은 아다나에서 100㎞가량 떨어진 시리아 북부였다. 지금 내전이 한창 진행 중인 곳이다.

2014년 4월24일 시리아 알레포 인근 반군장악 지역에서 정부군의 공습으로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 REUTERS
2011년 3월 이후 시리아에서는 내전이 벌어지고 있다. 친(親)정부 진영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 간 갈등 속에 정부군과 반군은 서로 가릴 것 없이 심각한 인권침해를 자행하고 있고, 여러 종파 간 갈등이 뒤엉키면서 걷잡을 수 없는 혼돈을 향해 치닫는 중이다.

독일인 300명 이상 시리아 들어가

무장 이슬람 단체인 알카에다는 이런 혼돈을 세력 확산에 이용하고 있다. 내전이 발발한 지 채 1년이 지나지 않은 2012년 2월 알카에다를 이끄는 아이만 알 사와히리는 “모든 이슬람교도는 전력을 다해 시리아의 형제들을 도우라”라는 메시지를 영상을 통해 보냈다. 이슬람 수호라는 미명 아래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슈피겔 온라인’은 “알 사와히리의 메시지가 전해진 이후 시리아에서는 세계 어느 곳보다 빠른 속도로 이슬람 극단주의가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리아에 자리 잡은 이슬람 극단주의는 독일은 물론 영국·프랑스·노르웨이·벨기에 등 중북부 유럽의 이슬람 신도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단 접근성이 좋다. 오스트리아 두 소녀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은 비자 없이 국경 국가인 터키에 입국할 수 있다. ‘슈피겔 온라인’은 “터키에서 시리아 국경을 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지적했다.

노르웨이 국방연구소(FFI)의 테러 전문가인 토마스 헤카머는 “지금까지 시리아로 간 유럽인 수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간 유럽인을 합친 것보다도 많다”고 전했다. 추정치는 연구마다 다르지만 400명에서 2000명까지 들쭉날쭉하다. 독일 연방헌법보호청은 지난 2월, 내전에 참가할 목적으로 시리아로 건너간 독일인 수가 3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10월에는 전 독일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 선수인 부락 카란이 시리아에서 폭격으로 숨진 사실이 알려지면서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수비형 미드필더였던 카란은 2008년 3월 스무 살의 나이로 돌연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분데스리가 2부 리그 팀인 알레마니아 아헨으로 영입된 지 불과 반 년 만의 일이었다. 카란의 죽음이 알려지자 가족들은 “그는 단지 구호 활동을 하러 시리아에 갔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얼마 뒤 그가 무장 전사로서 세운 공훈을 칭찬하는 비디오가 유튜브에 공개되면서 카란이 참전을 위해 시리아로 간 사실이 확인됐다.

카란의 죽음에도 독일 전문가들은 한동안 “시리아로 간 독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실제로 전투에 가담했을지는 미지수”라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이들 중 대다수는 주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시리아의 상황을 알리고 참전을 부추기는 등 선전 활동을 한 정황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올해 2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줬다. 사진 속에는 뒤셀도르프 인근 소도시 딘스라켄 출신의 무스타파가 시리아 해방군 또는 쿠르드족 전사로 추정되는 희생자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스-게오르크 마센 독일 헌법보호청장은 이에 대해 “독일에서 테러 행위가 일어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시리아에 다녀온 내전 참가자들이 무기와 폭발물을 다루는 방법을 익히고 사상이 극단화된 채 독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지난 2년 사이 극렬 이슬람 종파인 ‘살라피스트’가 위험 세력으로 떠올랐다. 특히 본의 살라피스트 소속인 마르코 G.는 2012년 12월 본 중앙역 폭파 미수 사건과 2013년 3월 극우 단체인 프로 NRW의 마르쿠스 바이지히트 대표 암살 미수 사건의 주범으로 체포되면서 살라피스트의 존재를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이런 위험을 우려하고 있는 나라는 비단 독일뿐만은 아니다. 벨기에는 지난해 시리아에 다녀온 19세 청년을 테러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했다. 영국은 국적이 여러 개인 한 시리아 여행객의 영국 국적을 박탈했다.

시리아로 들어간 오스트리아 소녀 사비나 셀리모비치(왼쪽)와 삼라 케시노비치(오른쪽). ⓒ 인터폴 제공
“부인과 아이들도 다 데려와라”

지금까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주요 타깃은 젊은 남성이었다. 시리아로 건너간 베를린의 살라피스트인 데니스 쿠스페르트는 한 녹화 필름에서 “부인과 아이들도 다 데려와라. 여자들은 집안 청소만 해도 도움이 된다”며 남성들을 향해 호소하고 설득했다. 하지만 헌법보호청은 케시노비치와 셀리모비치의 실종에서 극렬 이슬람주의자들이 전략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의 선전 비디오에서는 토론에 적극 참여하고, 다른 종교를 비방하며 ‘성전’에 참여하길 바라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전쟁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여성 해방이라는 왜곡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RW) 주는 지난 3월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을 돕기 위한 상담센터를 설치했다. 상담은 철저히 비밀로 진행되며, 본인뿐 아니라 가족·친구·교사도 신청할 수 있다. 극단주의에 빠질 경우 가까운 사람들이 먼저 눈치를 채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개인별로 맞춤식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다. 극단주의에 빠지는 원인이 학교에서의 갈등, 정신적 문제, 실업 등 다양하기 때문이다.

현재 센터에는 매주 3건가량의 상담 신청이 들어오고 있다. 이 상담 프로젝트의 이름은 ‘이정표(Wegweiser)’다. 심리학자인 에르빈 슈타웁은 시리아로 향하는 이들 중 많은 사람이 “안정과 정체성을 찾고 인정을 받고자 극단주의에 빠진다”고 분석했다. 이 이정표가 독일 청소년들에게 시리아의 전쟁터가 아닌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에 이르는 길을 알려줄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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