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야? 핸드볼이야?
  •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5.21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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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경기에 1경기꼴 10득점 이상…외국인 타자 파워 주도

5월7일 목동구장에서 진행된 NC-넥센전을 바라보던 한 야구인은 연방 “이게 핸드볼이야? 야구야?”하며 혀를 찼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NC는 무려 24점을 올렸다. 홈런 6개를 포함해 장단 21안타를 몰아쳤다. 24점은 팀 한 경기 최다 득점이자 프로야구 역대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이고, 2000년 이후엔 한 경기 최다 득점 기록이다. 놀라운 건 NC의 24득점이 단 6회까지 거둔 점수라는 데 있다. 이날 목동구장에 비가 내리며 NC-넥센전은 6회 강우 콜드게임으로 끝났다. 만약 비가 내리지 않고 경기를 계속 진행했다면 NC는 1997년 대구에서 삼성이 LG를 상대로 기록한 한 경기 최다 득점인 27점을 깼을 가능성이 크다.

올 시즌 다득점은 NC-넥센전에서만 나온 게 아니다. 야구 통계 사이트인 ‘KBREPORT’에 따르면 올 시즌 5월7일까지 한 팀이 10득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는 총 30경기였다. 7일까지 9개팀이 130경기를 치른 가운데 30경기면 5경기에 1경기꼴로 10득점 이상을 올렸다는 뜻이다. 여기다 한 팀이 20점 이상을 기록한 경기도 3번이나 됐다.

5월7일 서울 목동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 대 NC 다이노스의 경기. 6회말 전광판에 NC 대 넥센의 점수가 24 대 5를 가리키고 있다. ⓒ 연합뉴스
다득점이 많아지면서 리그 평균 득점도 지난 시즌과 비교해 눈에 띄게 증가했다. 7일 기준 리그 경기당 평균 득점은 10.93점이다. 이는 프로야구 사상 경기당 평균 득점이 가장 높았던 1999년의 10.8점을 0.13점이나 능가하는 점수다.

타율도 뛰어올랐다. 7일까지 리그 전체 팀 타율은 2할8푼2리다. 2012년 2할5푼8리, 2013년 2할6푼8리에 비해 각각 2푼4리, 1푼4리가 치솟았다. 만약 이대로 시즌이 끝난다면 올 시즌 프로야구는 훗날 ‘가장 방망이가 뜨거웠던 시즌’으로 기억될 게 틀림없다.

롯데, 올 시즌 ‘투저타고’ 이끌어

올 시즌 ‘투저타고’ 현상을 극명하게 증명하는 팀이 있다. 롯데와 NC다. 지난 시즌 롯데는 시즌 30경기를 소화했을 때 팀 타율이 2할4푼2리밖에 되지 않았다. 9개 구단 가운데 팀 타율 꼴찌였다. 팀 홈런도 7개로 꼴찌, 팀 득점 역시 경기당 3.76점으로 채 4점을 넘지 못했다. NC도 비슷했다. NC는 지난 시즌 30경기를 치렀을 때 팀 타율 2할5푼4리로 롯데, 한화에 이어 가장 방망이가 약했다. 경기당 득점도 4.13점에 불과했다.

그러나 올 시즌엔 다르다. 롯데는 30경기를 치른 가운데 팀 타율 2할9푼5리를 기록 중이다. 홈런은 지난 시즌 같은 기간과 비교해 무려 4배가 늘어난 30개를 치고 있다. 경기당 팀 득점도 증가해 6.5점을 기록 중이다. NC도 비슷하다. NC는 30경기를 치르며 팀 타율 2할8푼3리, 경기당 팀 득점 5.43점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NC가 1군 데뷔 2년 차 팀임을 고려할 때 NC의 팀 공격력은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다른 팀도 사정은 비슷해 팀 타율 2할5푼대는 한 팀도 없다. 리그에서 가장 빈약한 팀 공격력을 보이는 한화도 팀 타율 2할6푼3리로 지난 시즌 같은 경기 수를 비교했을 때 무려 2푼이나 뛰어올랐다.

야구계는 올 시즌 ‘투저타고’의 배경으로 몇 가지 이유를 든다. 가장 큰 배경은 역시 ‘외국인 타자 제도’ 도입이다. 올 시즌 KBO(한국야구위원회)는 팀당 외국인 선수 보유 한도를 기존 2명에서 3명으로 늘리며 3명 가운데 1명은 반드시 외국인 타자를 두도록 했다. 화끈한 공격 야구를 통해 야구의 재미를 증폭시키고 최근 진행돼온 투고타저 현상을 개선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야구계는 외국인 타자가 리그에 참가하면 지난 시즌보다는 각 팀 공격력이 강화되리라 예상하면서도 한국 야구가 발전한 만큼 1990년대처럼 외국인 타자가 타격 전 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아니 한국 야구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실패의 쓴잔을 마실 외국인 타자가 속출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2009년 로베르토 페타지니(LG)가 타율 3할3푼2리, 26홈런, 100타점을 기록한 이후 한 시즌 타율 3할, 20홈런, 80타점 이상을 동시에 기록한 외국인 타자는 지난 시즌까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되레 반대였다. 코리 알드리지(넥센), 라이언 가코(삼성) 등 실패한 외국인 타자가 더 많았다.

야구계의 예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상태다. 외국인 타자가 각 팀 중심 타선에 배치되며 팀 공격력은 확실히 세졌다. 하지만 각 팀이 30경기 이상 치른 현재 한국 야구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퇴출된 외국인 타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반대다.

개인 타율 부문에서 외국인 타자는 3명이나 10위 안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루이스 히메네스(롯데)가 3할9푼6리로 2위, 비니 로티노(넥센)가 3할5푼1리로 5위, 브렛 필(KIA)이 3할4푼4리로 8위에 올라 있다. 홈런 부문은 외국인 타자 일색이다. 14개(5월15일 현재)로 1위를 달리는 박병호(넥센)를 제외하고 홈런 부문 2위부터 6위까지가 전부 외국인 타자들이다.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외국인 타자가 이렇게 뜨거운 방망이를 선보일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상대 중심 타선을 잘 막아 실점 위기를 극복한 후 호투를 펼쳤던 각 팀 에이스도 올 시즌엔 위기 때마다 외국인 타자에게 한 방을 허용하는 통에 5회를 채우지 못하고 강판하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좁은 스트라이크 존과 신종 배트 출현

감독들은 “갈수록 좁아지는 스트라이크 존도 ‘투저타고’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한다. 한 감독은 “타자 무릎부터 어깨까지인 스트라이크 존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라며 “실제 스트라이크 존은 그보다 훨씬 좁게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투수도 이구동성으로 “심판이 너무 타이트하게 스트라이크 존을 적용한 탓에 한가운데가 아니면 던질 데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리그 정상급 좌완 투수인 A는 작심한 듯 “지난 시즌만 해도 스트라이크 존에 꽉 차는 속구를 던지면 심판의 팔이 올라갔다. 그러나 올 시즌엔 스트라이크 존에서 공 반 개 정도 확실히 안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좀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기 어렵다. 스트라이크였던 공이 볼로 선언되며 볼카운트가 불리해지고,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볼넷이 나오고 이 볼넷이 화근이 돼 실점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금 같은 스트라이크 존은 투수들보고 죽으라는 소리와도 같다”고 주장했다.

심판도 좁아진 스트라이크 존을 인정한다. 한 심판은 “올 시즌 오심 논란이 가중되고 심판진의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표시하는 감독, 선수가 늘어나면서 심판이 스트라이크 존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게 사실”이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느 팀은 좁게 보고, 어느 팀은 넓게 본다’는 불만이 당장 터져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야구계 일부에선 배트를 투저타고의 숨은 배경으로 보기도 한다. 한 구단 관계자는 “외국인 타자가 참가하며 이전엔 보지 못했던 배트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며 “외국인 선수가 쓰는 배트를 내국인 선수도 구입하면서 새로운 배트가 리그에서 부쩍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신종 배트가 리그에서 금지하는 압축 배트일 가능성은 작다”면서도 “배트를 써본 내국인 타자 대다수가 ‘반발력이 기존 배트보다 좋은 것 같다’고 말하는 걸 봐선 확실히 신종 배트가 타자의 타격에 유무형의 도움을 주고 있는 것 같다”고 추측했다. 실제로 한 구단에서는 외국인 타자가 사용하는 배트를 내국인 타자가 빌려 쓰면서 초반 슬럼프에서 벗어났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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