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끼리 집안싸움 ‘국민’은 못 말려
  • 조현주 기자 (cho@sisapress.com)
  • 승인 2014.05.2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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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그룹 임영록 회장-이건호 행장 정면충돌

KB금융그룹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총 2000억원이 들어가는 국민은행 전산 시스템 교체를 둘러싸고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의 정면 대결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도쿄지점 불법 대출 사건, 카드사 정보 유출 사고, KB국민은행 직원들의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 등 잇따라 터지는 대형 금융 사고에 이어 볼썽사나운 집안싸움까지. 파국으로 치닫는 KB금융그룹에 우려의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국민은행 이사회는 지난 4월 전산 시스템을 IBM이 독점 운영하는 시스템에서 여러 정보기술업체가 동시에 참여할 수 있는 유닉스 시스템으로 변경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시스템 교체가 처음 검토된 시점은 어윤대 회장 체제였던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11월에는 은행 경영협의회에서 시스템을 교체하기로 잠정 결정했고, 4월 이사회 결의를 거쳐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변경이 확정됐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이내 잡음이 일었다. 시스템 변경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서 탈락한 IBM 측이 4월14일 이건호 행장에게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메일을 보낸 것이다. 이 행장은 즉시 정병기 국민은행 감사에게 감사를 요청했고, 국민은행 감사실은 감사 결과 이사회에 올라간 전산 시스템 교체 비용이 엉터리로 추산됐다는 점을 발견했다. 당초 유닉스 시스템으로의 교체 비용이 2050억원 정도라고 보고됐지만 실제 교체로 인한 리스크 비용까지 더하면 100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감사실은 KB금융지주 관계자가 은행 IT 조직 직원에게 새로운 시스템의 리스크 요인을 누락시키라고 지시한 정황(메신저·이메일 등)을 포착하기도 했다.

국민은행 감사실은 즉시 이러한 문제들을 5월16일 열린 감사위원회에 보고했지만 감사위원회 구성원인 사외이사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외이사들이 감사보고서를 묵살하자 감사실은 이 사실을 이 행장에게 보고했고 이 행장은 3일 후인 5월19일 직접 이사회를 열어 같은 내용의 감사의견서를 상정하려 했지만 이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이 행장과 정병기 감사는 이날 국민은행 전산 시스템을 IBM에서 유닉스로 변경하는 과정과 내용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금융감독원에 특별검사를 요청하는 ‘초강수’를 뒀다.

2013년 6월10일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 내정자가 KB금융 본사로 들어서려 하자 KB국민은행 노동조합원들이 막고 있다. ⓒ 연합뉴스
낙하산 회장·행장 끊임없이 충돌

KB금융지주 측은 즉각 반발했다. KB금융지주의 한 관계자는 “현재 대형 은행 가운데 IBM 기반을 이용하는 곳은 국민은행과 우리은행뿐이다. 산업은행 등 대형 은행 대다수는 유닉스 시스템을 쓰고 있다”며 “이사회에서 이미 의결된 사안에 대해 은행이 관련 업체(IBM) 측의 문제제기만으로 검사에 착수한 데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은행이 감사 권한을 악용해 이사회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란 게 KB금융지주 관계자의 주장이다.

지주 측은 시스템 교체로 인한 추가 비용이 누락됐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반론을 제기했다. KB금융지주 관계자는 “IBM은 유닉스에 비해 유연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유닉스 체계는 호환성이 있는 반면 IBM은 없기 때문”이라며 “(유닉스가 IBM에 비해)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갈 수 있지만 호환성이 있어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하고자 할 때 드는 추가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태가 표면적으로는 사외이사와 감사가 전산 시스템 아웃소싱 업체 선정을 놓고 갈등을 빚은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상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의 주도권 다툼이라는 게 금융권의 대체적인 해석이다. 사외이사들은 임영록 회장의 우호 세력으로 분류되고 있고, 정 감사는 이건호 행장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영록 회장과 이건호 행장에 대해서는 취임 초기부터 불화설이 제기돼왔다. 이들의 선임 배경과 출신이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임 회장은 ‘모피아(경제 관료) 금융인’의 전형으로 꼽히는데, 그는 이명박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2차관까지 지낸 경제 관료 출신으로 KB금융지주 사장을 지내다가 회장이 됐다. 반면 이 행장은 금융연구원 출신으로 박근혜정부 들어 금융권에서 회자되는 이른바 ‘연피아(금융연구원 출신) 금융인’이다. 이들 모두 낙하산 인사인 데다 출신 배경까지 달라 회장의 영향력이 행장까지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취임 초기부터 나왔다.

금융권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낙하산 인사’로 꼽히는데 외부에서 유입된 이들이기 때문에 서로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며 “소통 시스템도 없어 직접 드러나지 않은 충돌이 이어져왔다. 곪을 대로 곪은 문제가 이번에 극단적으로 터진 것”이라고 말했다.

KB국민은행은 다른 은행보다 ‘낙하산 리스크’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4대 천왕’이라 불렸던 어윤대 전 회장도 낙하산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어 전 회장은 당시 금융지주 사장이던 임영록 현 회장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었는데, ING생명 인수를 놓고 어 전 회장이 사외이사와 충돌한 것이 대표적이었다. 2008년 KB금융지주가 출범했을 때도 불화가 있었다. 당시 황영기 전 회장과 강정원 전 행장이 지주사 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였는데, 회장직을 놓친 강 전 행장은 황 전 회장과 불협화음을 낳았다.

KB금융그룹 내분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지난해 말부터 도쿄지점 불법 대출 사건, 카드사 정보 유출 사고, KB국민은행 직원들의 국민주택채권 횡령 사건 등 대형 사고가 이어져 경영진에 대한 책임론이 일고 있는 와중에 권력다툼을 벌이는 것으로 비치고 있어서다. 그룹 내에도 최악의 경우 지주와 은행 양쪽이 모두 상처를 입는 ‘공도동망(共倒同亡)’으로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사태가 급박하게 흘러가면서 국민은행은 5월 23일 오전 긴급 이사회를 개최해 봉합에 나섰다. 하지만 오전 9시부터 약 3시간 동안 진행된 이사회에서도 전산시스템 변경 결정을 둘러싼 논란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져 결국 지주사와 은행 양측의 입장 차만 재확인한 모양새가 됐다. 5월 말 다시 이사회를 열어 수습책을 논의할 예정이지만 사태 해결을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지주-은행 다 혼낸다”

이러한 우려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크다. 금융감독원은 국민은행 측이 5월19일 전산 시스템 교체 문제를 두고 제보성 민원을 제기함에 따라 곧바로 현장 특별검사에 들어갔다. 5월20일부터는 KB금융지주에 대해서도 특별검사에 돌입했다. KB금융그룹의 내부 통제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내부 통제를 책임지는 임 회장과 이 행장 모두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다.

금감원은 최근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민은행에서 발생했던 금융 사고에 대한 특별검사를 마친 상태다. 오는 6월 제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확정할 방침이다. 금감원은 이번에 진행하는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에 대한 검사를 모두 묶어 통합 제재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복수의 KB금융그룹 관계자는 “회장이나 행장이 책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벌어졌던 사고의 직접적 원인 제공자도 아니다. 직접적 책임이 없는데 징계를 내린다는 것은 지나치다”며 “내부 차원에서도 불법 대출, 횡령 등 사고와 관련된 직원들의 책임을 엄중히 묻고 비리의 싹을 도려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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