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뒤집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야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5.28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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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하루 한 번꼴 오심 논란 MLB처럼 비디오 판독 도입해야

야구는 ‘플레이볼’ 선언으로 시작해 ‘게임오버’ 선언으로 끝난다. 이 모든 선언은 심판의 입에서 나온다. 야구에서 심판은 선언자임과 동시에 모든 플레이를 주관하는 경기 운영자다. 그만큼 야구에서 심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고 엄중하다. 그런 심판들이 근래 오심 논란에 휩싸이며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한 KBO(한국야구위원회) 심판은 “오심 논란의 1차적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하지만 요즘처럼 긴박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판정 하나하나를 모두 오심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에선 도저히 심판직을 감당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고 털어놓았다. 문제는 심판을 둘러싼 오심 논란이 하루 이틀 만에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올 시즌 오심은 다른 시즌보다 유독 많다. 거의 하루에 한 번꼴로 오심이 나오고 있다. 오심의 파장도 크다. 과거 같으면 그라운드에서 끝났을 오심이 지금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뜨겁게 장식하고 있다. 트위터·페이스북 같은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서도 그날 오심은 최고 이슈다.

5월21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열린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경기에서 한화 김응용 감독이 심판 판정에 항의하며 선수단 철수를 지시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 야구팬은 “KBO리그에서만 유독 오심이 많이 나오는 건 심판 자질과 관련된 문제”라며 “KBO 심판진의 역량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거나 심판진을 대대적으로 물갈이할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물론 오심의 1차적 책임은 심판에게 있다. 하지만 야구계는 “심판 자질이 과거보다 떨어졌다는 건 무리한 해석”이라며 “몇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심판 능력은 그대로”라고 주장한다.

KBO 심판이 대개 프로 선수 출신임을 고려할 때 기본적인 심판 자질은 주로 비야구인 출신이 심판을 맡는 MLB(메이저리그), NPB(일본야구기구)보다 한 단계 높다는 게 중평이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한국 심판의 판정을 지켜본 미·일 심판도 “우리보다 낫다”는 말을 자주 한다.

KBO리그의 오심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오심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됐고 그때마다 심판은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럼에도 올 시즌 오심 논란이 여느 해보다 가중된 건 승패를 가름하는 결정적 오심이 시즌 초반 자주 나왔기 때문이다.

한 감독은 “경기 초반이나 큰 점수 차가 났을 때 오심이 나오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승패가 걸린 결정적인 순간에 오심으로 팀이 지면 시쳇말로 눈이 돌아간다. 이상하리만큼 올 시즌엔 ‘눈 돌아가는 장면’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오심 논란을 가중시킨 건 중계방송이었다. 한 심판은 “2~3년 전부터 중계방송 때마다 최첨단 초고속 카메라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느 해 같으면 ‘간발의 차’라는 말로 쉽게 넘어갈 판정도 최첨단 초고속 카메라가 등장하며 빠짐없이 오심 장면을 잡아내고 있다. 아무리 숙련되고 시력이 좋은 심판이라도 100분의 1초까지 잡아내는 최첨단 초고속 카메라를 당해낼 수 없다. 지금처럼 야구 중계방송이 매번 세이프-아웃 상황을 초고속 카메라로 리플레이하면 어느 심판도 오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야구 기술, 판정 시스템이 못 따라가

생각지도 못한 ‘작전 야구’가 수시로 펼쳐지는 것도 심판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경력 10년 차의 한 베테랑 심판은 “2006년 이후 공격·수비·주루 등 전반적인 야구 기술이 발전하는 바람에 심판의 위치 선정이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다”며 “진화하는 야구 기술을 판정 시스템이 따라가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많은 야구인은 “현대 야구에 과연 4심제 운용이 적절한 선택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한 경기에 구심·1루심·2루심·3루심이 출전하는 4심제는 1982년 프로야구 원년 때부터 시행됐다. 이때만 해도 4심제 운용엔 큰 어려움이 없었다. 하지만 해가 다르게 야구 환경이 변화하며 4심제는 큰 위기를 맞고 있다. 한 심판은 “야구장부터 시작해 선수의 체형, 야구 장비, 관중의 관전 태도 등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며 “이 변화하는 환경을 따라잡기엔 지금의 4심제는 한계가 너무 많다”고 고백했다. 야구 심판은 경기 판정만 하지 않는다. 선수(대타·대수비·구원투수) 교체 시 심판은 양팀 코칭스태프로부터 바뀔 선수를 통보받고 이를 KBO 기록원에게 전달하는 임무도 맡는다. 많은 야수와 투수가 동원되는 현대 야구에선 적게는 5번, 많게는 10번 이상 바뀐 선수를 통보하고 이를 체크해야 한다.

빠른 경기 진행을 위해 더그아웃에 있는 선수를 빨리 타석에 서게 하고 투수의 느린 투구를 방지할 목적으로 시행하는 12초 룰을 관리하는 것도 심판 몫이다. 실제로 KBO 구심은 이닝이 시작될 때마다 양팀 더그아웃을 바라보며 그라운드로 빨리 나갈 것을 독려하고 2루심은 초시계를 손에 들고 투수가 투구판에 발을 올린 채 12초 이내에 와인드업을 하는지 확인한다. 여기다 관중석도 꼼꼼하게 챙겨봐야 한다. 혹시라도 터질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심판들은 “혼자서 몇 가지 역할을 담당하는지 모르겠다. 1초만 딴생각을 해도 엄청난 사건이 벌어질지 모른다”고 하소연했다.

선수의 체격이 좋아지고 타구 강도가 몰라보게 강해지고, 빨라졌다는 것도 심판에겐 악재다. 경력 15년 차의 한 고참 심판은 “웬만한 타자의 타구 강도는 메이저리그 타자와 얼추 비슷하다”며 “원체 빠른 볼이 날아오기에 자칫 집중하지 않으면 대형 오심이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덧붙여 “KBO리그에 좌타자가 많아져 3루만큼이나 1루 강습 타구가 많아졌다. 강한 타구가 많이 날아오지 않아 ‘땡보직’으로 불리던 1루심이 심판들의 기피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심판 폭행이 벌금 5만원 ‘경범죄’

거듭된 오심 논란과 대중의 비난으로 심판은 고립무원 상태다. 한 심판은 “심판끼리 만나면 ‘어제 별일 없었느냐’고 묻는 게 안부 인사가 돼버렸다”며 “경기 시작 전 ‘오늘도 무사히’라는 기도를 하고서 그라운드에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심판들은 이구동성으로 “오심 논란이 그라운드에서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심판은 “오심 논란에 휩싸인 심판은 그날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게 마련이다. 심판이야 다음 날 경기에 집중함으로써 잊는다지만 가족은 남편·아버지가 악인으로 둔갑한 현실을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며 “심판 아내들 가운덴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생하는 이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오심 논란으로 KBO 심판의 권위는 땅에 떨어진 상태다. 심지어 4월30일 광주 챔피언스필드에선 한 취객이 난입해 심판의 목을 조르는 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놀라운 건 이 취객의 심판 폭행 사건이 벌금 5만원의 경범죄로 처리됐다는 사실이다. 미국 같았으면 당장 구속됐을 사안이었지만 피해 심판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에서 경범죄로 처리된 것이다. KBO 심판부 관계자는 “폭행을 당한 심판이 정신적 충격뿐만 아니라 목에도 부상을 당했지만 만약 우리가 그 취객을 고소했다면 일부 네티즌들이 ‘심판이 잘한 게 뭐가 있다고 고소하느냐’고 인터넷 게시판에 또다시 여론몰이를 하지 않았겠느냐”며 “억울하고 분해도 그냥 참고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야구계는 오심을 최소화할 방법으로 올 시즌부터 메이저리그가 시행하는 비디오 판정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메이저리그처럼 경기 승패를 좌우할 결정적 오심 논란 장면이 발생할 때 최첨단 카메라를 통해 오심 여부를 가려내자는 것이다. 심판의 판정 부담도 줄이고 공정한 경기 진행도 기대해보자는 것이다.

한 야구해설가는 “메이저리그에서 비디오 판정을 도입한 후 비디오 판정 요구 건 중 무려 45%에서 판정이 번복됐다. 세계 최고 리그인 메이저리그의 오심 비율이 그토록 높은데 KBO리그라고 크게 다를 게 없을 것”이라며 “미국에서 비디오 판정 도입 후 불필요한 논란이 줄어들고 심판의 권위도 회복한 만큼 KBO에서도 이를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심판이 자신 있게 판정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KBO가 적극적으로 심판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팀 분위기 쇄신과 보상 판정 차원에서 얼토당토않게 행해지는 벤치 어필엔 강하게 대처해나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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