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보름여가 지나고 책상 앞에 앉았는데도 생각은 여전히 세월호 속에 있습니다. 다른 내용의 글을 써보려 해도 마음은 요지부동입니다. 세월호가 만들어낸 소용돌이에 모든 것이 빨려들어가 있는 듯합니다. 그만큼 세월호 사고 속에 우리 사회의 모든 단면이 돋을새김 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참사로 우리는 우리의 부끄러운 위치를 참담하게 목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6회 지방선거가 코앞에 있는데도 거리 분위기는 조용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럴 때면 으레 소란스럽게 지나가곤 하던 유세차도 보이지 않습니다. 벽보와 현수막만이 말없이 선거의 도래를 알려줍니다.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이런 분위기는 서울뿐 아니라 지방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광역이든 기초든 지역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출사표를 던지고 나선 후보들이 가장 먼저 꺼내든 화두는 ‘안전’입니다. 여기저기서 ‘안전 제일’을 외치고 있습니다.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뜻으로 읽혀 반갑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기본에서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원초적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수많은 목숨을 잃고 우리는 이제 겨우 초심(初心)을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또다시 앞으로 4년간 대한민국 각 지역의 주민 삶의 질과 안전을 책임질 사람들을 선택해야 할 중대한 시간 앞에 우리는 서 있습니다.
정당들에는 이번 선거가 세력 확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일지 모르지만, 주민들에게는 지역이 사느냐 죽느냐를 판가름할 중대한 선택의 기로입니다. 중앙 정치의 잣대로 함부로 재단하고 흔들어댈 성격의 것이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최근 여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이 이번 선거를 통해 ‘대통령의 눈물을 닦을 힘을 달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가 역풍을 맞은 일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입니다. 지방선거는 말 그대로 지방 주민들을 위해 일할, 지방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줄 사람을 뽑는 민권의 잔치입니다. 이 선택 한 번으로 지역의 미래가 결정됨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조지프 핼리넌이 지은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라는 책에는 일반적 투표 행위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려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투표자들이 가장 크게 저지르는 실수는 ‘첫인상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유권자들이 모두 그 같은 실수를 피하고 현명하게 옥석을 골라내기를 기대합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국민의 선거이자 주민의 선거가 있는 6월4일 스스로의 권리를 낭비하거나 포기해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표의 힘을 보여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