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철곤<오리온그룹 회장> · 이화경<부회장> 부부 위해 비자금 조성했다”
  • 안성모·조유빈 기자 ()
  • 승인 2014.06.0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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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의 재판이 막바지에 다다랐다.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을 구속 수사해 법정에 올린 것으로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2년 동안 진행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오너인 담철곤·이화경 부부를 위해 비자금이 조성됐고 실제 비자금 상당 부분이 이들을 위해 사용됐다는 진술과 증언이 나왔다. 시사저널은 검찰 수사와 재판 자료를 통해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한국의 재벌에게 ‘비자금’은 달콤한 유혹이다. 수십 개의 회사를 거느리며 수조 원의 돈을 굴리다 보면 몇 백억 원 정도 몰래 감추는 것은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대놓고 얘기는 못하지만 대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말 못할 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없진 않다. 하지만 기업이 크면 클수록 자금 관리는 더 투명해야 한다. 특히 회사 돈과 오너의 재산은 명확히 구분돼야 한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은 우리나라 기업 환경에서 비자금은 경계 대상 1호라 할 수 있다.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 ⓒ 연합뉴스
시사저널은 2012년 중순 시작된 이른바 ‘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을 계속 주목해왔다. 한 해 전인 2011년 불거진 스포츠토토의 대주주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관련 수사가 채 마무리되기도 전에 또다시 비자금 조성 의혹이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검찰 내 수사 주체는 다르지만 두 사건은 일정한 연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 만큼 스포츠토토에 대한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앞선 오리온그룹의 수사와 재판에서 밝혀지지 않은 의혹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특히 관심 깊게 지켜본 대목은 조경민 전 전략담당 사장을 비롯한 오리온그룹의 전·현직 임원들이 좀 더 은밀한 부분을 털어놓지 않겠느냐는 점이었다. 조 전 사장은 앞선 사건으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구속됐다. 오리온그룹 안팎에서는 한때 ‘오리온의 이학수(전 삼성전자 부회장)’로 불렸던 그가 결국 오너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상황이 변해서일까. “조 전 사장이 오리온 일가의 저격수로 돌아섰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시사저널은 여러 차례 시도 끝에 이번 사건의 수사와 재판 기록을 통해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직 확정 판결이 나지 않은 만큼 어떠한 예단도 하지 않았다. 당사자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하고 증언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개인정보 유출에도 신경을 썼다. 이런 상황에서 보도를 결정하게 된 이유는 대기업의 오너이자 경영자는 주주들의 재산에 영향을 미치는 공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오리온그룹 측은 제기된 의혹에 대해 “전혀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 시내의 복권방에서 한 시민이 스포츠토토를 작성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담철곤 회장, 비자금 보고받았다”

조경민 전 사장은 2012년 6월 두 번째로 구속됐다. 스포츠토토 등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급여 및 상여금 명목으로 돈을 지급한 후 되돌려받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였다. 조 전 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될 당시만 해도 검찰의 수사가 오너인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으로 확대될지가 관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수사의 초점은 조 전 사장 쪽으로 집중됐다. 담 회장과 이 부회장은 수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조 전 사장을 비롯해 ‘비자금 연루자’로 지목된 이들은 검찰과 법정에서 어떤 주장을 했을까.

우선 비자금 조성에 앞장선 드림네스트가 어떤 회사인지를 두고 입장이 엇갈렸다. 드림네스트는 조 전 사장의 형이 전액 출자한 회사다. 조 전 사장 형제가 이 회사를 통해 부당 이익을 챙겼을 것으로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조 전 사장 측은 드림네스트가 오리온그룹의 필요에 의해 설립된 일종의 특수목적법인이라고 주장했다. 오리온그룹이 스포츠토토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전 운영회사를 조속히 청산하고 지분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설립한 회사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실소유주가 오리온그룹의 오너라는 주장이 나올 법하다.

이 회사 일에 관여한 한 인사가 드림네스트에 대해 검찰에서 진술한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 회사는 이화경 부회장의 것으로 조경민 사장의 지시를 받고 형인 조 아무개 사장이 설립했다. 조경민 사장이 이화경 부회장 라인이기 때문에 현금이 조경민 사장을 통해 조 아무개 사장에게 전달됐을 것이다. 또 차명 주식 매입 작업을 조 아무개 사장이 내게 지시는 했지만, 조 아무개 사장은 결국 조경민 사장의 형으로 도움을 주는 입장일 뿐이고, 그 수익을 자기가 모두 가져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리온그룹 계열사 임직원 상당수는 겸직을 했다. 새로운 법인을 인수하거나 설립하게 되면 그 법인이 정상화될 때까지 그룹 내에서 경험이 풍부한 기존 임직원들이 새로운 법인의 임직원을 겸한 것이다. 그래서 계열사 대표 등 주요 임원은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법인으로부터 보수를 받아왔고, 이들 임원이 받은 보수의 일부를 내놓는 방식으로 비자금이 조성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와 관련해 조 전 사장은 담철곤 회장이 비자금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고 진술했다. 심 아무개 사장이 퇴임하고 오 아무개 사장이 취임하자 담철곤 회장에게 ‘심 사장은 끝났습니다. 오 사장의 급여도 같은 방식으로 관리를 하겠습니다’라고 했더니 담 회장이 ‘그렇게 해라’고 해서 계속 관리를 하게 됐다는 것이다.

조 전 사장 측은 비자금의 성격 및 구조를 이런 식으로 설명했다. ‘이 비자금은 오리온의 그룹 차원에서 조성된 자금이며, 사용처도 오리온그룹과 관계가 있다. 여느 회사의 비자금과 마찬가지로 오너 일가를 위해 조성되고 사용됐으며, 특히 이화경 부회장을 위해 조성된 것이다. 비자금을 사용하고자 하는 경우 이 부회장에게 사용처에 관한 사항을 보고해야 사용할 수 있으며, 조 전 사장이 독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비자금이 아니었다.’

비자금의 실무 관리자로 지목돼 재판을 받고 있는 김 아무개 전 스포츠토토 부장도 비자금 중 일부가 이 부회장의 개인 용도에 사용됐다고 진술했다. 당시 김 전 부장은 이 부회장의 계좌 일부도 관리했는데, 이 부회장 계좌에 있는 돈과 자신이 관리하고 있던 비자금 일부를 미술 작품 구입 대금으로 사용한 것 같다고 밝혔다. 다만 비자금과 이 부회장 개인 돈이 섞여 있어서 얼마씩 사용됐는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김 전 부장은 미술 작품 구입 대금으로 지불한 돈은 130억원가량 된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이 부회장 개인 주거지의 인테리어를 했을 때 가구 등을 구입했는데 이때도 돈이 사용돼, 미술 작품 구입이나 인테리어 비용에 들어간 돈 중 15억원가량이 비자금 중 일부인 것 같다고 진술했다. 시기는 2003년부터 2010년까지다.

“비자금 상당 부분 담철곤·이화경 위해 사용”

파텍 필립 등 명품 시계, 로마네 콩티와 같은 최고급 와인은 조 전 사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담 회장이나 이 부회장이 여러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구입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조 전 사장이 사용한 경조사비에 대해서도 비슷한 주장이 제기됐다. 경조사비 중에는 ‘조경민’의 이름으로 낼 때뿐만 아니라 ‘이화경’이라는 이름을 써서 내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조 전 사장이 경조사비를 보낼 때는 그룹 차원에서 ‘이화경 부회장’이 챙겨서 보낸 것이라고 인식하는 임직원들이 다수 있었다고 한다. 조 전 사장이 이 부회장님의 심부름을 간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검찰은 2007년부터 2011년초까지 총 6억7200여 만원이 경조사비로 사용된 것으로 파악했다.

서울고등법원 판결문에서도 양형 이유에서 ‘조경민이 비자금으로 조성한 금원 중 상당 부분은 오리온그룹의 오너 일가인 담철곤·이화경을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이고 조경민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이 적시돼 있다.

다른 증인들 중에서도 관련 증언이 나왔다. 인센티브를 돌려준 경위를 묻는 질문에 ‘통상 회사의 큰일은 조경민과 이화경이 협의를 해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는데, 그 의사 결정이 전달된 것으로 알고 있다’는 답변이 나왔고, 조 전 사장이 월급을 내어놓으라고 요구할 위치에 있는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조경민이 증인에게 개인적으로 그러한 이야기는 하지 못한다”라는 답변도 나왔다.

또 다른 증언도 있다. ‘회사를 위한 정상적인 돈이라면 정해진 접대비로 사용하면 될 것이지만, 이 경우는 뭔가 꺼림칙한 곳에 사용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어서 물어보지 않았고, 조경민이 설명하려고 하면 말하지 말라고 했다.’ 그 꺼림칙한 내용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이런 설명을 붙였다. ‘조경민 위에는 이화경 부회장, 담철곤 회장이 있으니 만약에 그분들 이름이 나오면 꺼림칙하다는 생각이었다.’

담 회장과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하지 않은 데 대한 문제제기도 있었다. ‘모든 의문을 풀기 위해서는 조경민 사장이나 김 아무개 부장의 진술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계좌까지도 관리하게 한 이화경 부회장, 나아가 담철곤 회장의 진술을 들어봤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에 대해 서면조사조차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검찰의 입장을 듣기 위해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에게 연락했지만 “수사나 재판 사항은 얘기할 수 없게 돼 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법조계 막강 라인이 ‘뒤’ 봐줬나 


2011년 ‘오리온 비자금’ 수사 때 담철곤 회장은 구속된 데 반해 이화경 부회장에 대해서는 입건유예 결정이 내려졌다. 검찰은 담 회장과 함께 비자금 조성에 직접 관여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고 남편이 구속된 점과 본인 건강이 악화된 점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사실상 공범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입건조차 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검찰에서는 기소를 하고 재판부에서 정상을 참작하는 게 통상적이라는 것이다.

2012년 ‘스포츠토토 비자금’ 수사에서는 담 회장과 이 부회장 모두 조사를 받지 않았다. 최측근이던 조경민 전 사장이 이들 부부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뒤에서 오리온 오너를 위해 힘을 써주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공교롭게도 2011년 수사 당시 법무부장관이었던 이귀남 전 장관은 현재 오리온그룹에서 법률고문을 맡고 있다. 이 전 장관의 오리온행은 여러모로 비판을 받았다. 장관에서 퇴임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재직 당시 수사를 했던 기업에 취업한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오리온그룹이 2011년 수사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영입한 것 아니냐, 2012년 수사가 오너에게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관예우 차원에서 영입한 것 아니냐 등 갖가지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한 이 전 장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그가 일하고 있는 사무실로 여러 차례 연락하고 전화번호도 남겼지만 이 전 장관은 직원을 통해 “일정이 바빠 통화를 할 수 없다”고 전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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