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 무마 2억, MB 당선 축하금 3억도 오너가 지시”
  • 안성모·조유빈 기자 ()
  • 승인 2014.06.03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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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사장 측, ‘회사 용도로 사용한 증거 없다’ 판결에 반박

오리온그룹은 2010년 서울 청담동의 한 피부과의원 원장에게 세무조사를 무마해달라는 청탁을 하면서 2억원의 로비 자금을 지급했다. 이 병원의 김 아무개 원장은 세무조사와 관련해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에게 “국세청장과 친분 관계가 있고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을 움직이면 잘 해결할 수 있다”며 돈을 받아 챙겼다. 김 원장은 이외에도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수도권의 한 골프장 대표 부부로부터도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 등으로 2012년 8월 구속됐고, 이듬해 7월 대법원으로부터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그렇다면 오리온그룹은 왜 김 원장에게 거액을 주면서 청탁을 했을까. 조 전 사장 측은 ‘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김 원장에게 로비 자금을 지급한 것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 전에는 일면식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이 부회장과 김 원장은 이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였다고 한다. 조 전 사장은 이 부회장이 ‘김 원장이 정권 실세의 피부 관리를 한다는 말을 했다’ ‘오리온그룹에 문제가 있을 경우 도와주겠다고 한다’ 등의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조 전 사장이 2008년 김 원장을 처음 만난 계기도 이 부회장의 지시로 돈 심부름을 하면서였다고 주장했다. 또 이 부회장 지시로 오리온 명의로 된 경기도 안성시의 한 골프장 회원권을 김 원장이 사용하게끔 처리해준 적도 있다고 했다.

2012년 6월12일 회사 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구속된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전략담당 사장이 서울증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뉴스1
하지만 서울고등법원은 조 전 사장이 김 원장에게 준 2억원과 관련해 ‘회사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조 전 사장 측은 “김 원장이 오리온·미디어플렉스·메가마크에 대한 세무조사를 잘 해결하겠다는 것이었지 조 전 사장 개인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해주겠다는 것이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당시 조 전 사장이 세무조사를 받던 시기도 아니었고, 오리온그룹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와 관련해 김 원장에게 부탁을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정치권 로비도 오너들 지시였다”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직후 오리온그룹이 대통령 당선 축하금으로 윤 아무개 부회장에게 3억원을 전달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조 전 사장 측은 2008년 4월 윤 부회장이 정권이 바뀌었으니 인사를 해두는 것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해 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이 또한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조 전 사장은 로비 자금으로 2억3340만원을 지급했고, 나머지 부족한 돈은 김 아무개 스포츠토토 부장이 관리하던 이 부회장의 계좌에서 7000만원 정도를 채워 3억원을 지급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룹 차원의 로비 자금을 담 회장이나 이 부회장의 지시 없이 수억 원씩 지급할 수는 없다는 게 조 전 사장 측 설명이다. 특히 로비 자금을 마련하면서 이 부회장의 개인 계좌에서 돈이 인출되기도 했다고 조 전 사장 측은 주장한다. 서울고등법원은 이 역시 ‘로비 자금이 회사를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으므로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조 전 사장 측은 로비 자금은 새 정부가 들어선 후 정치권에 인사 명목으로 지급된 것인데, 조 전 사장이 정치권에 인사를 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국내 재벌가 최초로 사위가 경영권을 승계한 그룹이 있다.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이다. 고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와 이관희 여사(현 서남재단 이사장) 사이에는 딸만 둘이 있다. 두 딸 중 장녀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은 현재현재현 회장과, 차녀 이화경 오리온그룹 부회장은 담철곤 회장과 결혼했다. 그러나 단순한 혼맥도와 다르게 기업 경영은 간단치 않았다. 한 가계도를 이루는 동양그룹과 오리온그룹은 종종 수사선상에 올랐다. ‘윤리 경영’과 ‘사회적 신용’을 덕목으로 갖춰야 할 기업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일까.

지난해 4월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에 대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의 판결이 내려졌다. 담 회장은 총 300억원대의 회사 자금을 빼돌리고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로 2011년 6월 구속 기소됐다. 담 회장은 계열사 법인 자금으로 프란츠 클라인의 그림 <Painting 11>(시가 55억원) 등 총 140억원에 이르는 고가의 미술품을 매입해 자택에 설치했다. 포르쉐 카이엔,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등 고가의 외제차를 위장 계열사 자금으로 굴리며 사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담 회장이 사실상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난 위장 계열사 아이팩이 비자금의 중심에 있었다. 담 회장은 아이팩의 서울영업소를 가족 공간으로 사용했고 체력단련실, 외제차 보관소 등으로 활용했다. 가정부 등 자택을 관리하는 사람들을 아이팩 직원인 것처럼 꾸며 10년간 20억원에 달하는 급여를 지급했다. 지난 4월에는 아이팩이 담 회장에게 고액의 배당을 실시한 것으로 드러나 “자회사가 회장의 금고로 전락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동양그룹은 이보다 더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지난해 일어난 ‘동양 사태’는 그룹 전체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2005년 이후 동양그룹의 캐시카우였던 동양시멘트의 수익이 저하되기 시작했다. 구조적 공급 과잉과 건설 경기 둔화 등이 이유였다. 동양그룹이 계열사를 24개로 확장하며 금융 계열사를 통해 회사채를 발행하기 시작하자 부채는 점점 더 늘어났다. 계열사 부실 채권 판매가 금지되면서 돌려 막기가 어려워졌고, 동양시멘트 등 5개 계열사가 발행한 기업어음(CP)의 만기가 시한폭탄처럼 다가왔다.

결국 재계 순위 38위였던 동양그룹은 지난해 10월 침몰 위기에 빠졌다. 회사채·기업어음 등 만기가 돌아온 채권이 2조2000억원에 달했다. 한 식구인 오리온그룹에 손을 내밀었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오리온그룹은 보도자료를 통해 ‘오리온그룹과 대주주들은 동양그룹에 대한 지원 의사가 없으며 추후에도 지원 계획이 없다’며 동양그룹에 등을 돌렸다. 회사채 발행에 실패해 자금난이 가중되고 동양매직의 매각도 불발됐다. 마침내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 (주)동양과 동양네트웍스, 동양시멘트가 법정관리 신청을 했다. 올해 1월 현재현 회장이 구속된 이후 동양 관련 피해자의 분쟁 조정 신청은 2만건을 넘어섰고, ‘동양사태’로 수사를 받던 계열사 전 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도 발생했다.

현재현 회장은 주가 조작 혐의로 추가 기소된 상태다. 현 회장은 계열사가 보유한 동양시멘트 주식을 대량 매도 주문하도록 지시해 매각을 성사시켰고, 주가 조작으로 얻은 차익 400억원을 회사채를 갚는 데 사용했다. 주가 조작이 의심된다는 한국거래소와 증권사의 경고도 6차례나 무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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