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류현진 추신수를 찾아라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4.06.03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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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중남미 대신 아시아에 관심 양키스, ‘아마추어’ 박효준 영입 추진

미국 메이저리그(MLB).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야구선수가 뛰는 무대다. 1940년대 중반만 해도 MLB는 백인 선수의 전유물이었다. 1947년 흑인 선수 재키 로빈슨이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하며 피부색의 장벽이 무너졌다. 1949년 쿠바 출신의 미니 미노소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유니폼을 입으며 이번엔 중남미 선수들이 MLB에서 뛰기 시작했다.

아시아 선수가 MLB 무대를 밟은 건 1964년이었다. 일본인 투수 무라카미 마사노리가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에 입단하며 MLB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인종의 유리벽이 깨졌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난 2014년. MLB는 아시아 선수의 맹활약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류현진(다저스)·추신수(텍사스) 등 한국 선수와 다루빗슈 유(텍사스)·다나카 마사히로·구로다 히로키·이치로 스즈키(이상 양키스) 등 일본 선수들이 프로야구 최고의 무대 MLB에서 슈퍼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5월26일 다저스 홈구장에서 류현진이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역투하고 있다. ⓒ Reuters
MLB에 부는 아시아 파워

지난 1월 하순, 뉴욕 양키스는 일본인 투수 다나카 마사히로와 7년 총액 1억5500만 달러에 입단 계약을 맺었다. 1억5500만 달러는 아시아 선수 역대 최고 몸값으로, 2년 전 텍사스로부터 6년 총액 5600만 달러를 받은 다루빗슈보다 세 배 가까이 많은 돈이다.

뉴욕 지역 언론은 “다나카가 지난해 일본에서 24연승을 거둔 특급 투수라는 건 알지만 MLB 무대에서 한 번도 검증된 적이 없는 아시아 투수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안긴 건 지나친 투자”라며 “양키스의 투자는 대실패로 끝날 것”이란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양키스 브라이언 캐시먼 단장은 “우린 다나카에게 적당한 금액을 지급했다”며 “결과는 뚜껑을 열어보면 알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뚜껑이 열리자 다나카는 MLB 데뷔전에서 승리를 거둔 후 내리 6승을 따내며 미·일 통산 34연승에 성공했다. 투구 내용도 뛰어나 다나카는 매번 7이닝 3실점 이하로 호투하며 팀 승리를 지켜냈다. 다나카는 5월24일까지 6승 1패, 평균자책점 2.39로 MLB 톱클래스 투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다나카만이 아니다. 같은 일본인 투수 다루빗슈 역시 연일 호투 중이다. 지난해 13승 9패 평균자책 2.83을 기록한 다루빗슈는 올 시즌엔 3승 2패 평균자책 2.32로 분전하고 있다. 팀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해 승수는 적지만 5월10일 보스턴과의 경기에서 9회 2사까지 노히트노런 행진을 펼치는 등 지난해보다 업그레이드된 투구를 펼치는 중이다.

두 선수를 제외하고도 일본인 메이저리거가 팀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는 경우는 많다. 다나카의 양키스 선배 구로다는 3승 3패 평균자책 4.61, 다나카가 라쿠텐에서 뛸 때 원투 펀치를 이뤘던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는 3승 평균자책 1.76, 지난해 보스턴을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우에하라 고지는 1패 9세이브 평균자책 1.02로 안정된 투구를 선보이고 있다.

일본인 타자는 투수보다 못하다. 41세의 이치로가 백업 요원으로 활약하며 타율 3할5푼9리 3타점, ‘제2의 이치로’로 불리던 아오키 노리치카가 타율 2할7푼1리 9타점 5도루로 이름값을 유지하고 있다.

MLB에서 일본인 메이저리거는 ‘실패 확률이 낮은 선수’로 꼽힌다. 원체 뛰어난 성적을 거둬왔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한국인 메이저리거는 박한 평가를 받아온 게 사실이다. 박찬호·김병현 등 MLB를 호령한 선수도 있었지만 대다수가 빅리그에 정착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간 탓이다. 몸값 차이도 여기에서 나왔다.

2012년말 류현진은 다저스와 6년 총액 3600만 달러에 계약했다. 다루빗슈보다 2000만 달러나 적다. 하지만 지난해 류현진이 MLB 데뷔 시즌에 14승 6패 평균자책 3.00으로 호투하자 한국 선수에 대한 대우와 시각이 ‘확’ 바뀌었다.

MLB 구단에서 근무하는 한 한국인 스카우트는 “그전까지 한국 야구에 전혀 관심이 없던 경영진이 지금은 최정·강정호 등 한국 선수 이름을 줄줄 꿰고 있다”며 “얼마 전 본국의 구단 고위층으로부터 ‘투자액은 신경 쓰지 말고 류현진 같은 특급 투수를 물색하라’는 지시를 전달받았다”고 귀띔했다.

류현진은 올 시즌에도 5승 2패 평균자책 3.10(5월31일 현재)을 기록하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와 2점대 평균자책 달성에 도전하고 있다.

추신수의 활약 역시 빼놓을 수 없다. 2001년 부산고를 졸업하고 곧장 MLB에 도전한 추신수는 온갖 고생 끝에 지난해 텍사스와 7년 총액 1억3000만 달러에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었다. 다나카가 기록을 깨기 전까지 아시아 메이저리거 최고 몸값이었다.

대개 FA가 계약 첫해 부상과 부진으로 기록이 떨어지는 데 반해 추신수는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5월30일 기준 타율 2할9푼7리, 출루율 4할2푼3리, 6홈런, 18타점을 기록하며 ‘MLB 최고의 1번 타자’란 찬사를 받고 있다.

아시아 선수가 매력적인 까닭

아시아 메이저리거가 맹활약하자 MLB는 기존 선수 공급처였던 중남미 대신 아시아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뉴욕 메츠의 스카우트는 “아시아 선수는 실력뿐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매력이 많다”며 그 이유 세 가지를 꼽았다.

“우선 성실함이다. 중남미 선수는 자기 재능만 믿고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아시아 선수는 단체 훈련을 끝낸 후에도 개인 훈련을 하며 야구에만 집중한다. 두 번째는 검증된 실력이다. MLB 무대를 밟는 한·일 선수는 이미 자국 리그에서 슈퍼스타다. 그 정도 실력이면 충분히 MLB에서 성공한다는 게 요즘 빅리그 구단의 공통된 생각이다. 세 번째는 풍부한 경험이다. 대개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MLB에 들어오는 아시아 선수는 최소 7년 이상 자국 리그에서 뛴 베테랑들이다. 시차·문화·음식 등이 다르지만, 풍부한 프로 경험은 그러한 차이를 쉽게 극복하는 원동력이 된다.”

물론 과거에도 MLB는 아시아 선수 영입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그때는 아마추어 선수가 대부분이었다. 실제로 박찬호·김병현·최희섭·서재응·왕첸밍(타이완) 등 MLB 구단과 계약했던 아시아 선수는 하나같이 아마추어 신분이었다. 하지만 MLB 스카우트의 설명에서 알 수 있듯 최근 들어 빅리그 구단은 아마추어 선수보다는 검증된 아시아 FA 선수 영입에 주력하고 있다. TNB스포츠 이헌탁 대표는 “어린 선수의 경우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도태되는 일이 많아 MLB 구단 사이에서 ‘아시아 선수는 투자액은 많고, 성공 확률은 떨어진다’는 이야기가 돌고 있다”며 “그 때문인지 돈이 들더라도 성공 확률이 높은 아시아 FA 선수를 잡자는 게 요즘 MLB의 추세”라고 설명했다.

MLB가 아시아 아마추어 선수 영입에 소극적인 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예외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야탑고 유격수 박효준이 주인공이다.

한 MLB 스카우트는 “양키스가 120만 달러를 투자해 박효준을 영입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안다. 7월 초 결정이 날 것으로 본다”고 귀띔했다. 박효준이 양키스 유니폼을 입는다면 아시아 아마추어 선수에 대한 MLB 구단의 관심은 여전하다는 증거가 된다. 하지만 이 스카우트는 “그건 양키스의 내부 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다른 MLB 구단은 아시아 아마추어 유망주 영입에 돈을 쓰고 싶어도 규정상 그만한 돈이 없다”고 밝혔다. “2012년 국제 아마추어 계약 시스템이 변경됐다. 각 팀마다 아시아와 유럽의 아마추어 선수를 영입할 때 샐러리 캡을 두도록 했다. 보스턴의 경우 한 해 아시아·유럽의 아마추어 선수들을 영입하기 위해 쓸 수 있는 총액은 190만 달러다. 이를 넘기면 MLB 사무국으로부터 페널티를 받는다. 양키스는 보스턴보다 샐러리 캡이 조금 높은 걸로 안다. 그럼에도 양키스가 120만 달러를 투자해 박효준을 잡으려는 건 양키스 팜에 국제 아마추어 선수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양키스는 페널티를 물더라도 팜을 강하게 만들기 위해선 박효준을 영입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이 스카우트는 “박효준이 양키스에 간다 해도 빅리그 구단의 아시아 FA 선수 선호는 계속될 것”이라며 “현재 MLB 구단은 일본인 특급 투수 마에타 겐타(히로시마)를 잡기 위해 물밑 경쟁을 펼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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