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부터 일단 구해놓고 보자”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6.11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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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윤장현 후보 당선…한숨 돌린 안 대표

광주 지역 여론조사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윤장현 후보가 무소속 강운태 후보에게 계속 밀리는 결과가 나왔다. 새정치연합은 비상이 걸렸다. 안철수 공동대표의 ‘전략 공천’이 광주 시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광주의 50대 시민 ㄱ씨는 선거 하루 전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광주 정서를 모르는 소리다. 장담컨대, 윤 후보가 당선될 것으로 본다. 안철수 대표는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다. 광주는 될 사람을 밀어준다. 강운태 후보가 비록 광주에서 시장과 국회의원을 여러 번 했지만, 그뿐이다. 그는 대권 주자가 아니다. 강 후보가 시장 한 번 더 하고 안 하고는 중요치 않다. 광주 시민의 관심은 2017년 대선이다.”

ㄱ씨는 국회에서 오랫동안 호남 지역구 의원의 보좌관 생활을 하다가 최근 고향 광주에 내려갔다. 그래서 서울의 정치권 상황과 광주 현지 사정에 누구보다 밝다. 아무튼 벼랑 끝으로 내몰렸던 안 대표는 가까스로 회생했다. 윤장현 후보는 안철수에 대한 광주 시민의 기대가 투영된 인물이었다. 광역단체장 후보들 중 사실상 순수 안철수 사람이라고 할 만한 이는 윤 후보가 유일하다.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윤장현 광주시장 후보가 6월1일 광주우체국 앞에서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대선 때 안철수로 단일화됐더라면…”

이번 선거에서 윤 후보는 57.9%의 득표율로 31.8%를 얻은 강 후보를 제치고 손쉽게 당선됐다.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결과였다. 윤 후보 캠프에서도 6월4일 오후 6시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기쁨의 함성보다는 놀라움이 섞인 탄성이 터져 나왔을 정도다. 윤 후보 캠프에서 전략기획을 담당했던 새정치연합의 한 인사는 “선거 막판 내부에서 시뮬레이션(여론조사)을 돌려봤을 때 5%포인트 정도 높아서 기대는 했지만, 더블스코어 가까이 이기니 사실 좀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광주 시민들의 이번 선택은 광주가 아직은 안철수의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윤 후보는 여러 면에서 강 후보에 비해 객관적으로 불리한 요소가 많았다. 우선 현직 시장인 강 후보에 비해 조직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열세였다. 또 광주 주류 사회에서는 꽤 알려진 인물이지만, 강운태·이용섭 두 후보에 비해 인지도도 떨어졌다. 전략 공천을 받는 과정에서 ‘새 정치’의 명분도 상처를 입었다. 때문에 각종 여론조사에서 강·이 후보에게 밀리는 양상이었다.

그러나 광주는 윤장현을 선택했다. 그 이면엔 정권 교체에 대한 열망이 크다. 광주 지역의 한 직장인 임 아무개씨(33)는 “노무현 때도 그랬지만 광주는 ‘될 사람(정권 교체를 해줄 사람)’은 확실히 밀어준다. 문재인 후보는 그렇게 밀어줬는데 대선에 지고 나서 언제 광주에 내려온 적이나 있나. 광주에선 여전히 안철수가 대선 후보”라고 전했다. 평생을 광주에서 살아온 대학교수 ㄴ씨 역시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로 단일화됐을 때 92%나 표를 몰아줬음에도 그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그때부터 광주에선 ‘안철수로 단일화했으면 어땠을까’란 기대가 있어왔고, 그 기대가 쭉 이어져 이번 표심에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결국 광주 시민은 단순히 지방선거를 했다기보다는 2017년 대선을 치르는 마음으로 선거를 했다는 얘기다.

‘강운태·이용섭’ 단일화 파괴력 없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번 광주 선거 결과를 놓고 나오는 ‘안철수 희망론’의 과도함을 경계했다. 안 대표가 광주에서 존재감을 보여줬지만 이번 선거에서 지나치게 광주에 집중하느라 당 대표로서의 전국적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미 안 대표는 전략 공천 과정에서 ‘새 정치’ 명분에 상처를 입었고, 윤장현 후보의 광주시장 당선 여부를 떠나 인천·경기를 다 내준 것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 또한 “마냥 안 대표가 좋아서 뽑았다기보다는 새정치연합이 경쟁 구도에서 밀리지 않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운태·이용섭 후보의 단일화가 예상보다 파급력을 갖지 못한 것도 윤장현 후보 승리의 요인이 됐다. 윤 후보 캠프의 내부 분석에 따르면, 강·이 후보 단일화 이후부터 오히려 윤 후보의 지지율은 상승세를 탔다고 한다. 단일화 이후 이 의원을 지지하던 표가 강 후보에게 흡수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강 후보와 이 후보는 윤 후보 전략 공천 전까지만 해도 앙숙이었다는 것을 광주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두 사람의 단일화가 별 감동을 주지 못한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 사진을 들고 서 있는 권영진 새누리당 대구시장 후보. ⓒ 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의 아성인 광주 지역만큼이나 관심을 집중시킨 곳은 여당의 텃밭인 대구와 부산이다. 새정치연합의 김부겸 후보와 무소속 오거돈 후보가 각각 새누리당 후보를 위협할 정도로 힘을 발휘했다. 실제 오 후보는 개표 과정에서 서병수 새누리당 후보를 앞서기도 했다.

선거 당일인 6월4일 오전 김부겸 후보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최근 상승세를 좀 탔던 건 맞지만, 대구 선거는 마지막까지 알 수가 없어. 마지막에도 막 바뀔 수 있기 때문에…”라며 조심스러워했다. 그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결국 새누리당 안방인 대구에서는 ‘심판론’보다 ‘우리가 남이가’ 정서가 강력했다. 그렇지만 권영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된 이번 선거 결과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권 후보 자체가 친박 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선거에서 박 대통령에 대한 표심 운운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부산의 오거돈 후보는 새정치연합 내부에서 당선이 유력한 것으로 전망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정치 전문가들은 새정치연합 김영춘 후보 지지층의 표를 모두 흡수하지 못한 것을 주요 패인 중 하나로 꼽았다. 한때 SNS에서 “문재인 새정치연합 의원이 지원 유세를 하려고 한다”는 소문이 돈 게 지역 내 보수 표를 결집시키는 등 오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 후보 측에서는 문 의원이 지원 유세를 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허위사실이며 지원 요청을 한 적이 없다”며 황급히 선을 그었다.

보수층 결집은 새누리당이 대구·부산 지역을 지킬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이다. 이현우 서강대 교수는 “부산·대구 지역에서 야당 후보가 선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대통령의 리더십에 부담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했고, 이것이 곧 보수표의 결집을 불러왔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이 지역에서도 변화가 감지됐다. 김 후보는 현 정권의 안방에서 40% 이상을 득표했다. 역대 최고였다. 오 후보는 49.7%를 얻어 당선자인 서병수 후보와 불과 1.4%포인트의 득표 차밖에 나지 않았다. 절반 가까운 지지를 얻고도 석패한 것이다. 더욱이 서 후보가 대표적 ‘친박’ 후보라는 점에서 오 후보의 선전은 박 대통령의 가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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