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에 고른 카드, 쓰나미에 휩쓸리다
  • 엄민우 기자·서상현│매일신문 기자 ()
  • 승인 2014.06.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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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극 총리 후보자 논란 여당에서도 “자진 사퇴” “임명 강행” 갈려

“A·B·C·D·E 후보가 있었다면, 문창극 총리 후보자는 F쯤 되는 순위의 후보였다고 한다. 인물 발굴이 시급해 검증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집안·재산·범죄기록 등이 빼곡한 인사 파일은 있었지만, 교회 강연 동영상 같은 것은 찾을 길도 없었고 그럴 시간도 없었다고 한다. 청와대도 난감해하곤 있지만 좀 더 지켜보는 쪽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관료 출신인 한 새누리당 국회의원은 최근 청와대 한 수석비서관과 나눈 대화 내용을 기자에게 소개했다. 

급박하게 이뤄졌기 때문일까. 안대희 전 총리 후보자 사퇴 후 이뤄진 청와대의 총리 인선이 또 다른 후폭풍을 몰고 왔다. 문창극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두고 여의도 정가에서는 ‘문참극’이라는 웃지 못할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청와대와 친박 핵심 주류는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 정치권 동향을 수집하는 정보기관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기자 출신의 충청도 사람, 거기에다 정치에 큰 욕심이 없는 사람을 BH(청와대)에서 낙점했다. 만기친람(萬機親覽)하는 대통령 스타일을 아는 이들 사이에선 책임총리는 실현이 불가능할 것임을 알고 있다. 문창극 후보자를 두고 여권에서 의견이 갈리는 이유는 그 뒤에 내밀 카드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는 친박계 핵심 사이에선 문창극 사퇴를 운운하는 이들에게 ‘그렇다면 누구를 천거할 것인가. 당신이 한번 추천해보라’고 반문한다. 이제 집권 2년 차, 김용준·안대희에 이은 세 번째 총리 후보자 낙마는 조기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6월11일 문창극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여당 의원 공개적 반대…국회 부결 가능성도

그런데 갈 길이 너무 험난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벌써부터 ‘청문회장에 나오기만 해봐라’ 하는 기세다. 특히 문 후보자가 워싱턴특파원 시절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경위와 논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파고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문 후보자는 지난 1993년 서울대에서 ‘한·미 간의 갈등 유형 연구’라는 주제의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는데, 한국이 아닌 미국에서 학위를 취득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이 부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볼 것”이라며 벼르고 있다.

새정치연합 일각에서는 “아예 청문회를 보이콧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그렇게 되면 청문회를 하게 되더라도 야당 반대로 청문회 보고서 채택이 불가능하다. 여당이 인준안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해도 이미 새누리당 초선 의원 6명이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힌 데다, 재선 이상 의원들 중에서도 “반대” 의견을 말하는 이가 적지 않다. 비주류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질 수도 있다. 현재 전체 285석 가운데 과반을 약간 넘는 149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이다. 인준안 부결 가능성도 커 보인다. 야당이 청문회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지 않고를 떠나, 그 전까지 야당과 계속 싸워야 한다는 것 자체가 문 후보자와 청와대로서는 상처를 입는 과정이다.

역시 최대 난관은 단일대오를 정비해야 할 여권의 기류가 반반으로 갈린다는 점이다. ‘절대 안 된다’와 ‘통과시키자’로 나뉜다. 새누리당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비례대표 초선 김상민 의원은 “문창극 후보자는 자진 사퇴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국회 기자실에 뿌렸다. 국민이 받아들이기 힘든 역사관과 민족관을 가졌고 국가개조, 적폐 해소, 관피아 척결의 적임자가 아니며, 변화와 통합을 이뤄낼 수 없다는 논리를 댔다. 정부에 직언을 삼가지 않는 대구 지역 중진 유승민 의원은 “언론 보도에 나온 그(문창극)의 멘트가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본다”고 짧게 말했다. 하지만 같은 날 부산 지역 초선 하태경 의원은 “역사관이 건강하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폴리널리스트>란 저서에서 언론인이 정치인이 되는 이야기를 썼던 SBS 앵커 출신의 홍지만 의원(대구 지역 초선)은 “언론인과 정치인이 겹치는 부분은 공익을 위해 일한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 등으로 국가개조 프로젝트가 절실한 지금, 펜으로 이상향을 썼던 문 총리 후보자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교회에서 발언한 부분은 앞뒤 문맥을 충분히 따져야 하고, 본인의 소명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국회 곳곳에서 열린 크고 작은 회의에서 새누리당 의원들은 문 후보자의 ‘고’냐 ‘스톱’이냐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이완구 원내대표는 낙마와 통과를 권유 또는 요청하는 전화와 반협박성 통화로 곤혹스러워했다는 전언이다.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에게 문 후보자 자격 논란에 대해 묻자 먼 곳을 응시하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써달라. 먼 곳만 바라보더라고.” 즉답은 피했지만 여권 분위기를 그대로 전한 답변이었다.

여권, 전당대회·재보선 미칠 영향 예의주시

배종찬 리서치앤리서치 본부장은 “국정 지지율이 하락했던 5월 말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정부에서 인사 검증이 제대로 안 된다는 항목이 7번째 이유로 나왔다. (문 후보자 카드는) 이 인사 관련 항목이 두세 번째까지 오를 가능성이 크고, 민심이반의 한 축이었던 40대 앵그리 맘의 분노를 재발시킬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본다”며 “국민이 요구하는 차기 총리의 필수 자격 요건인 통합성과 개혁성을 갖춘 인물인지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권 내 전략통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기자라는 직종은 참모나 특보로선 상관없지만 국민을 아우르고 품는 대통합 역할로는 맞지 않다. 기자는 공격수 기질을 타고나야 한다”며 “위안부 이야기, 민족 비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라는 종교 편향은 이성이 아닌 국민의 감성을 자극하는 발언이기 때문에 되도록 빨리 드롭(drop)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더 크다”고 전했다. 정부가 긴 고민 끝에 악수(惡手)를 뒀다는 이야기다.

7월14일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출전하는 후보들은 일단 관망하고 있다. 정부 편을 들지도 각을 세우지도 않는다. 여권 기류가 양쪽으로 갈라진 지금, 섣불리 한쪽 편에 섰다간 상대편의 결집을 도울 수도 있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문창극 카드가 옐로성 경고를 받은 상태인데 레드카드로 이어지게 된다면 전당대회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호사가들 사이에선, 만약 문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으로 국정 난맥상이 계속 이어지면 당권 도전에 나선 서청원 의원에게는 악재로, 김무성 의원에게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박근혜정부의 조기 레임덕 가능성까지 회자되는 상황에서 2년 후인 2016년 총선 공천에 관심이 많은 국회의원들 사이에선 정당 지지율 회복 가능성이 큰 적임자에게 표를 몰아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배종찬 본부장은 “이번 총리 인선이 7·30 재보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근혜정부의 ‘문창극 카드’는 결국 안대희 총리 사퇴 이후 안 좋아진 여론을 더욱 악화시킨 꼴이 됐다. 문 후보자 총리 지명 발표 순간부터 이미 레임덕은 시작됐다는 얘기가 여의도에서 힘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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