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오버>는 <강남스타일>이 아니란 말이야
  • 김봉현│대중음악 평론가 ()
  • 승인 2014.06.18 14:53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싸이를 음악 국가대표로 인식 노래를 비교해 낙인찍는 건 잘못

<강남스타일>의 예기치 못한 성공은 많은 후폭풍을 남겼다. 미국 빌보드 핫100 차트에서 7주 연속 2위를 차지했고, 유튜브 조회 수 20억을 돌파한 이 노래는 소셜 미디어가 음악의 성패를 좌우한 극명한 사례로 기록되며 한 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K팝’ 혹은 국가 단위의 여러 논란을 만들어내며 약간의 끄덕임과 그보다 많은 갸웃거림을 자아내기도 했다. 어찌됐든 분명한 점은 이 노래가 음악사에 선명하게 새겨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강남스타일>의 뒤를 이은 <젠틀맨>은 여러모로 <강남스타일>에 미치지 못했다. 음악적 완성도와 호불호에 대한 견해는 각자의 주관에 따라 다를 수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젠틀맨>은 <강남스타일>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불가능한 임무였을지도 모른다. 또 엄밀히 말하면 그것은 싸이의 의무도 아니었다.

그리고 <행오버> 시즌이 왔다. 속칭 ‘월드스타’가 된 후 내놓은 세 번째 싱글이다. 요즘 <행오버>에 관한 무수한 기사를 접하면서 새롭게 겪게 된 (부정적인) 놀라움이 몇 가지 있다. 타인의 평가와 판단을 기준 없이 멋대로 재단하려는 건 아니다. 그러나 그 평가와 판단들이 최소한의 노력과 성의를 겸비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거나 그저 관성적으로 도출된 결론으로 보일 때가 가끔 있다.

싸이 뮤직비디오 캡처 ⓒ YG엔터테인먼트
음악을 국가대표 경기로 착각하는 언론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행오버>는 흥행 면에서 <강남스타일>을 뛰어넘어야 하는 어떤 ‘의무’를 지니고 있는 것인가. 실패한다면 <행오버>의 모든 것은 실패한 셈이 되는가. 당연히 아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의식은 그저 필요 이상으로 비교와 경쟁을 부추기지 말자는 도의적 차원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근거에 기반한 합리적인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우리는 <강남스타일>의 성공이 소셜 미디어와 음악산업을 둘러싼 모든 타이밍과 운이 작용해 폭발해버린 사건임을 알고 있다. 싸이의 노력과 재능을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러한 모든 필연과 우연이 한 번에 작용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미디어는 무조건 <행오버>를 <강남스타일>과 비교한다. 뭐, 비교하는 것까지는 좋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행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비교에 그치지 않고 <강남스타일>과의 비교열위를 증폭해 <행오버>를 낙인찍는다. 책임은 지지 않는다. 관성적이거나 선동적이다. 둘 다일 수도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눈에 띄는 것은 싸이의 어느 인터뷰 구절이다. “나는 절대 그 노래(<강남스타일>)를 뛰어넘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20억 뷰’를 돌파한 노래를 이길 수 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신선한 다른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싸이의 말대로 <행오버>는 <강남스타일>과 다른 카테고리의 음악처럼 들린다. 거칠게 규정하자면 ‘힙합’이다.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은 그렇지 않았다. 이에 대해서도 싸이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많은 분이 모르시겠지만 나는 음악을 힙합으로 시작했다. 데뷔하자마자 춤을 워낙 야무지게 추다 보니까 장르가 확 변경되면서 그동안 힙합 할 기회가 없었는데….”

그렇다. 또 다른 몇 가지 놀라움은 대체로 힙합에 관한 것이다. 노파심에 말하자면 필자의 이 놀라움은 비난이라기보다는 아쉬움에 가깝다. 힙합을 오랫동안 좋아해오고 있는 필자의 입장에서 볼 때, 수많은 기사에서 잘못된 정보처럼 보이거나 뭉뚱그려 설명된 부분을 조금 더 정확하고 자세하게 풀어서 제공하고 싶은 것이다. 더불어 한국의 기자 및 음악평론가 대다수가 잘 모르거나, 관심이 없거나,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부분을 어쩌다 보니 필자가 잘 알고, 관심이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먼저 “싸이가 힙합을 가지고 나와서 놀랍다”는 기사에 약간 놀랐다. 물론 싸이를 대표하는 다수의 노래가 힙합과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음악인 건 맞다. 그래서 이해가 가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싸이 자신의 말대로 싸이는 (실력 여부와 상관없이) 랩을 늘 음악적 도구로 활용해왔고 어떤 노래에서는 다분히 힙합과 가까운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초창기 그의 음악 중 <사우나 속으로>라는 노래가 있다. 현재 싸이와 함께 YG엔터테인먼트에 소속돼 있는 래퍼이자, 곧 시작할 엠넷의 서바이벌 오디션 힙합 프로그램 <쇼미더머니3>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하는 마스타 우가 참여한 이 노래는 지금 들어도 명백한 힙합이다.

힙합과 미국 연예인에 대한 오해

또 <행오버>가 ‘정통 힙합’이라는 기사에도 조금 놀랐다. 정통 힙합이라는 표현에 어떠한 함의가 담겨 있는지는 직접 물어보지 못했지만 불행(?)하게도 <행오버>는 힙합계에서 규정하는 힙합 고유의 사운드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곡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행오버>는 미국 힙합 중에서도 남부 지역 힙합, 그중에서도 트랩(trap) 사운드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정통 힙합이라고 불리는 노래와는 달리 잘게 쪼개지는 드럼과 저음으로 둥둥대며 울리는 베이스, 피치-다운돼 평소 톤보다 굵게 변형된 보컬, 각종 말초적인 신시사이저 음으로 구성된 어떤 유의 힙합 스타일 말이다.

특히 <행오버>를 접한 힙합 팬이라면 듣는 순간 프로듀서 방글라데시라는 특정인을 떠올릴 법도 하다. 현재 최고의 랩 스타인 릴 웨인을 비롯해 비욘세, 리한나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인물 말이다. 방글라데시라는 예명 자체가 마치 서양인이 ‘국가 방글라데시’를 떠올릴 때의 그 생경함 비슷한 무엇을 자신의 음악 스타일이 갖추고 있어서 탄생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음악 스타일이 싸이 특유의 익살스러움 및 한국적인 요소와 결합해 적절히 중화된 듯해 나온 결과물이 바로 <행오버>다. 어느 부분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역시 힙합의 서브 장르 중 하나인 마이애미 베이스 느낌이 슬쩍 나기도 하는 건 덤이다. 확실히 <행오버>는 한국 시장보다는 미국 시장을 향한 노래다. 비록 미국 주류 힙합에 비할 때 딱히 신선하거나 혁신적이지는 않지만.

마지막으로 <행오버> 뮤직비디오에서 스눕 독이 망가지는 모습에 놀랐다는 기사에 흠칫 놀랐다. 그리고 그 ‘무서운’ 래퍼 스눕 독이 자신의 경력 최초로 싸이를 위해 망가졌다는 식의 기사에 크게 놀랐다. 스눕 독이 1990년대 초반에 갱스터 랩(gangster rap)으로 자신의 경력을 시작한 것은 맞다. 살인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았던 것도 맞다. 그러나 그가 뮤지션이자 엔터테이너로, 또 갱스터 래퍼이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대중음악가로 활약해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는 점도 사실이다.

물론 그가 한국에 와서 삼각김밥을 들고 있는 모습 자체에 좀 더 구체적으로 놀랄 수는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 코믹 배우로 분하고, 팝 가수의 달콤한 노래에 참여하며, <행오버>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준 모습보다 더한 ‘망가짐’을 각종 쇼 프로그램에서 보여온 지 꽤 오래됐는데도 그러한 기사가 나온다는 건 아무래도 조금 민망한 일이다. <행오버>가 남긴 몇몇 찜찜한 뒷맛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