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명의 보스가 철권통치 하는 막강 패밀리
  • 조철 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6.25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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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탐사 기자 토마스 키스트너, <피파 마피아>에서 부패 폭로

전문가들이 내놓은 브라질월드컵의 잠정 손익계산서를 들여다보면 개최국은 엄청난 빚에 허덕이고 FIFA(국제축구연맹)는 수조 원 넘는 이익을 거둔다. 한창 월드컵이 열리는 와중에도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하는 브라질 국민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다.

‘공은 둥글다’면서 순수하게 승부를 겨루는 것으로 믿어온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소식은 이뿐이 아니다. 온갖 추악한 탐욕과 거래가 이뤄지는 난장판이라는 폭로와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최근 2022 카타르월드컵 선정 과정에서 우리 돈 5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의 뇌물이 오갔다는 대형 스캔들이 불거져 전 세계 언론이 사막의 열기만큼이나 뜨겁다. 애초 한국·일본·미국·호주 등 막강한 후보 국가들을 제치고 변변한 경기장조차 준비돼 있지 않은 사막 국가 카타르에 월드컵 개최권이 돌아간 직후부터 논란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더구나 2018 러시아월드컵과 쌍을 이뤄 한꺼번에 선정되는 과정 자체가 의혹에 휩싸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다.

월드컵을 둘러싸고 퍼져나온 온갖 추문의 진상을 알게 해주는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끌고 있다. 브라질월드컵 개최 시점에 국내에 번역돼 나온 <피파 마피아(FIFA MAFIA)>.

2009년 5월 바하마 낫소에서 열린 FIFA 행사에서 만난 블라터 FIFA 회장(오른쪽)과 아벨란제 전 회장. ⓒ epa 연합
‘그라운드 바깥 경기’가 그라운드 좌지우지

독일인 저자 토마스 키스트너(Thomas Kistner·57)는 ‘스포츠 정치와 스포츠의 조직범죄’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탐사 전문 기자다. 그는 초국적 축구 권력인 FIFA를 둘러싸고 거대한 기업과 미디어 그리고 각국의 정치인들이 벌이는 그라운드 바깥의 경기를 생생하게 생중계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인물이나 집단이 부패하면 할수록 의전과 예의에 목을 맨다”고 지적한다. 감시·감독해야 할 기관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이해관계로 얽혀 각종 규제가 줄어들면서 탐욕에 제동을 걸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문제의 원인을 진단하기도 한다.

이 책에는 몇 십 년에 걸쳐 FIFA의 고질적 문제에 어떤 식으로든 연결된 세계 각국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FIFA의 현 회장 제프 블라터를 필두로 전 회장 주앙 아벨란제, 최근 스캔들의 주인공인 카타르의 빈 함맘, 사무총장 제롬 발케, 축구 영웅 펠레와 베켄바워, IOC 전 회장 사마란치와 자크 로게 등 작게는 한 나라에서부터 넓게는 전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막강한 유명 인사들이다. 이들의 연결 고리는 철저하게 계산된 상업적 논리다. 그래서 각각의 인물이 펼쳐가는 스토리는 스릴러나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한다. 흥미로운 점은 FIFA와 IOC 회장단, 사무총장을 하나하나 거슬러 올라가면 최종적으로 만나게 되는 인물이 현대 스포츠 마케팅을 새롭게 구축한 가공할 위력의 소유자 호르스트 다슬러라는 사실이다.

호르스트 다슬러는 ‘아디다스’의 창업주인 아돌프 다슬러의 아들로 아디다스를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업체로 키워냈을 뿐 아니라 수영용품 제조업체인 아레나를 창립한 인물이다. 아돌프는 ‘푸마’의 창업주인 친형 루돌프와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할 만큼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 인물이다. 서로 피를 볼 정도로 평생 숙적이었던 두 집안의 증오는 아들 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호르스트와 사촌 아르민은 경기장의 선수보다 더 격렬하게 싸웠다. 호르스트는 1974년 당시 FIFA 회장 스탠리 라우스를 몰아내려는 부패의 원조 주앙 아벨란제를 도와 그를 회장 자리에 앉혔으며, 1982년에는 스포츠 에이전시인 ISL을 세워 FIFA와 밀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내 호르스트 다슬러는 스포츠용품 시장보다 훨씬 더 수익성이 좋은 목표를 찾아냈다. 아예 스포츠 자체를 거래 품목으로 만들어버렸다. 남은 일은 스포츠 행사를 마케팅하는 것뿐이었다.

현재 많은 국제 스포츠연맹들이 스위스에 몰려 있다. FIFA 또한 면세 특권과 더불어 사실상 부패 추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주는 스위스로 자리를 옮겼다. 방송 중계권과 광고권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은 FIFA 임원의 자신감을 한껏 부추겼다. 1980년대 이후 스포츠연맹의 정상급 인사들은 풍족하고도 화려한 인생을 누렸다. 이후 끊임없이 각종 위원회를 신설해 자리를 늘리며 자문역과 전담 인력을 선정하고 배정하는 등 무수한 꼼수로 자신의 주머니를 채우는 기생 인간의 네트워크가 짜였다. 바로 이들이 국제 스포츠의 부패 온상을 이룬다.

‘한 나라에 한 표’ 원칙 앞세워 전횡

“블라터 휘하의 국제 축구는 그 어떤 종교도 능가하는 차원에 올라섰다. 우리 시대에 축구는 최대의 블랙홀이다.” 

키스트너는 모든 것을 지배하면서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는 단 한 명의 보스가 군림하는 패밀리, 돈과 더불어 부패의 악취가 진동하는 철권통치 조직, 그 이름이 바로 FIFA라고 주장한다. FIFA는 어떻게 이런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FIFA의 선거는 ‘한 나라 한 표’ 원칙에 따른다. 수상쩍기 짝이 없는 바나나공화국이나 크기가 축구장 하나만 한 섬나라도 FIFA 총회에서는 680만명의 등록회원을 자랑하는 독일축구협회와 똑같은 비중을 갖는다. 이는 아쉽게도 부패에 빠져들기에 너무나 쉬운 구조다. 스포츠 단체 임원들은 이 이상에 가까운, 20세기 초반에 만든 원칙을 민주주의의 기초처럼 여긴다. 이런 선거 시스템에서 표를 원하는 사람은 몇몇에 지나지 않는 강력한 연맹들과 씨름할 필요가 전혀 없다. 훨씬 더 빠른 시간 안에 작은 국가들을 끌어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표심 잡기가 스포츠의 지속적인 발달을 위한 인프라 구축을 보장해주기보다는 은밀한 뒷거래를 통해 이뤄진다는 점은 지금껏 터져나온 숱한 스캔들이 웅변하고 있다.

키스트너는 <피파 마피아> 한국어판 서문에 ‘세월호’의 비극을 언급하며 이익 추구 집단과 감독 관청이 FIFA의 경우처럼 밀접하게 맞물릴 때 참극은 피할 수 없다고 역설했다. 독립성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족벌 경영이 판을 치면서 이해 당사자끼리 서로 이익만 키워주는 부패를 막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막후에서는 잔혹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물러섰다고 해서 완전히 단절되는 일은 결코 없다. 문제의 핵심은 돈이자 부귀영화를 마음껏 누릴 화려한 지위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에 모든 걸 걸고 미래를 담보로 하는 투기는 말 그대로 숨 막히는 전쟁판이다. 돈과 명예를 걸고 악다구니를 쓰는 싸움판, 이게 바로 FIFA의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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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브라질 국민들을 화나게 만든 것은 정치가와 축구 행정가들이 서로 결탁해 FIFA를 위한 월드컵 관련법을 상정함으로써 FIFA를 식민지 점령군처럼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특히 어처구니없는 ‘특별법안’은 자국의 소상인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고 특정 FIFA 스폰서 기업이 월드컵 경기장에서 맥주를 팔 수 있게 허락해줬다는 점이다. 지나칠 정도로 격정적인 관중 때문에 벌써 오랫동안 경기장에서는 음주를 철저히 금지해온 법을 단숨에 허물어버리고 철저히 스폰서에게 특혜를 준 것이다. 월드컵 법령은 더욱 어처구니없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해당 지자체에 월드컵을 위해서라면 법적인 한계를 무시하고 빚을 끌어다 써도 좋다고 한 것이다. 게다가 FIFA와 스폰서에 면세 혜택까지 주었다.

기본적으로 천문학적 액수의 이권이 걸린 알짜배기 사업을 잃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에 FIFA는 전 세계를 상대로 무지막지한 ‘갑질’을 계속해올 수 있었다. 물론 비즈니스의 기회주의가 문제의 전부는 아니라 할지라도 적어도 그 일부임은 분명하다. 경제계의 막강한 스폰서들은 월드컵이라는 상품, 곧 그 주인인 블라터와 그 무리 앞에 겸손히 고개를 조아린다. 이 상품이야말로 은하계에서 가장 강력한 광고 효과를 자랑하기 때문이다. 눈치 없이 굴다가는 언제라도 광고주가 뒤바뀔 수 있다. 그것도 시장의 직접적인 라이벌에게 빼앗긴다면 정말 치명상을 입는다. 그만큼 경쟁자들은 끝 모르게 줄을 서서 블라터 군단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돈을 주는 광고주는 FIFA 임원들의 기이한 행동을 보고도 그저 조용히 넘어가려고만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FIFA 귀족들은 거리낌이 없다. 막후에서 기업에 광고를 빼앗길 위험이 크다고 압력을 행사한다. 기분이 상하고 의심이 가도 스폰서는 광고를 포기하느니 부패한 임원의 비위를 맞추는 쪽을 택한다.

“코카콜라가 조금이라도 싫은 내색을 하면 FIFA는 펩시에 아양을 떤다. 아디다스나 소니가 실제로 광고를 빼겠다고 하면, 나이키와 삼성이 이내 그 자리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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