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분노가 ‘사회적 테러’를 낳다
  • 광주=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6.25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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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 방화 사건의 70대 방화범 추적

5월28일 오전 11시쯤 서울 지하철 3호선 3339호 전동차에서 방화 사건이 발생했다. 소식을 접한 시민들은 충격과 불안에 휩싸였다. 세월호 참사의 슬픔과 함께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의 기억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당시 사고로 무려 192명이 화마에 희생됐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 뻔했던 사건은 전동차 일부가 불에 그으는 정도로 끝났다. 때마침 전동차에 타고 있던 역무원의 발 빠른 대처, 이를 도운 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 열차 기관실 및 관제실의 즉각적인 승객 대피 조치 등이 비극을 막았다.

사건 직후 피의자 조 아무개씨(73)가 붙잡혔다. 조씨는 광주광역시에서 유흥업소를 운영해온 인물로 드러났다. 조씨는 지난 2005년부터 자신이 운영하는 콜라텍 내부로 쏟아지는 오·폐수 문제로 광주시와 보험회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해왔다. 그런데 지난 4월23일 선고된 광주고법 판결에서 1800여 만원만 배상받게 되는 등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자 억울함을 알리려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피의자가 검거되고 범행 동기가 밝혀지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5월28일 서울 수서경찰서에서 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 방화 사건 피의자 조 아무개씨가 조사를 받고 있다. ⓒ 연합뉴스
한때 잘나가던 유흥업소 사장에서 몰락

석연치 않은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씨가 진술한 범행 동기를 감안하더라도, 이것이 ‘지하철 방화’라는 극단적인 행동으로까지 표출된 것은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 개인의 분노와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에 불특정 다수 시민을 향한 테러 수준의 방화는 지나치게 과격하기 때문이다. 왜 조씨는 이처럼 비상식적인 행동을 저지르게 된 것일까. 피의자 조씨가 처했던 사회적·심리적 상황을 중심으로 서울 지하철 3호선 방화사건의 전말을 추적했다.

6월18일 조씨가 운영해온 광주 금남로의 ㅇ콜라텍을 찾았다. 콜라텍은 준공된 지 40년이 넘은 빌딩 지하에 있었다. 문이 잠긴 채 영업을 중단한 상태였다. 겉모습은 낡고 초라했다. 오래된 건물 지하 특유의 곰삭은 습기가 느껴졌다. 건물 관리인은 “사건이 나기 5~6개월 전부터 영업을 안 했다. 워낙에 손님이 없었다. 가게 월세도 못 낼 정도로 오랫동안 장사가 안 됐다”고 말했다.

조씨의 주거지는 업소 한쪽 편의 쪽방이었다. 이곳에서 살며 콜라텍을 운영하는 한편, 건물 지하주차장을 관리하며 부수입을 얻었다. 여러모로 조씨의 경제적 상황이 어려웠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씨의 손해배상 소송 업무를 담당하는 광주시청 관계자는 “조씨가 올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신청을 했는데, 승용차를 보유한 것 때문에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조씨는 대인 관계 면에서도 사실상 고립된 상태였다. 사건 수사를 담당한 서울 수서경찰서 한원횡 형사과장은 “아내와는 떨어져 산 지 오래됐고, 자녀 둘과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는다고 했다. 친지 중에는 그나마 친누나와의 교류 정도가 유일하다”고 밝혔다. 조씨에 대해 좀 더 알아보려 빌딩 및 주변 상가를 탐문해봐도 그와 친분이 있는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1970년대 초부터 빌딩 상가에서 장사를 해온 강종남씨(73)는 “다른 상인들과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물장사’하는 사람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지하에서 꿍꽝대며 소음이 나는 통에 부담스러워하는 이가 많았다. 아마 상가 안 누구에게 물어봐도 잘 모를 것이다. 개인적인 접촉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5월28일 서울메트로 수서차량기지로 들어온 사고 전동차.ⓒ 연합뉴스
시청 상대 소송전…늘 공격적이고 분노에 차

조씨에 대한 평판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ㅇ콜라텍 주변에서 만난 한 60대 남성은 “질이 나쁜 사람”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난 돈 없으니 배 째라’ 식으로 나오면서 갈등이 잦았다. 건물주가 가게 월세를 내라고 독촉해도 못 주겠다며 뻗대 자주 얼굴을 붉혔다. 지금도 월세를 안 내고 있다. 건물에 소방 시설을 설치할 때, 업주들이 자기 업소 내의 공사비용은 각자가 부담해야 했다. 그런데도 자기는 돈을 못 내겠다며 화를 냈다. 이런 식으로 경우 없이 굴 때가 많았다.” 이 남성은 1980년대 중반부터 최근까지 콜라텍 위층에서 장사를 하며 약 30년간 조씨와 안면이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조씨와 친분 관계를 쌓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기적이며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며 반감을 품게 됐다고 했다.

조씨가 처음부터 이런 처지에 놓였던 것은 아니다. 조씨는 “나는 한때 잘나갔던 인물”이라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광주 지역 유흥업계에서는 알아주는 인사였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랬다. ㅇ콜라텍의 전신인 ‘ㅇ카바레’는 1980년대만 해도 광주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대형 유흥업소였다고 한다. ㅇ콜라텍 인근 상인들로부터 “건물 2층에 광주 동구청이 있었을 당시가 ㅇ카바레의 전성기였다. 그때만 해도 조씨는 돈을 잘 벌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조씨는 광주 지역 유흥업계에서의 위상도 상당했다. 한국유흥음식업중앙회 광주지회 고관진 회장은 “우리 협회에서 임원을 지낸 적도 있고, 광주 지역 무도 관련 협회의 회장직을 맡기도 했다. 조씨는 광주 유흥업계의 원로로 통했다”고 말했다. 20여 년 전만 해도 조씨는 “원로 격의 지위에 어울리는 점잖은 성품에 자기 일에 열성적으로 임하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광주 금남로 일대를 중심으로 한 옛 시가지 상권이 위축되고, 이른바 ‘퇴폐 문화’ 단속이 강화되면서 ㅇ카바레의 위상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조씨는 카바레를 정리한 후 그 자리에 다른 임차인을 들이기 시작했다. ㅇ카바레는 맥주 주점, 호스트 바 등으로 간판을 바꿔 달더니 콜라텍이 됐다. 업소들은 번번이 망하기만 했고, 결국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는 아무도 가게를 열려 하지 않았다. 조씨가 직접 콜라텍 영업에 나섰다. 하지만 상황은 시간이 갈수록 나빠져만 갔다. 최근에는 “70대 노인 몇 명이 심심풀이로 오는 정도”로 업황이 기울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가게 입구에 붙은, 색 바랜 커다란 청동 조형물만이 과거 ㅇ카바레가 누린 영광의 흔적으로 남아 있다. 고관진 회장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조씨의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아무래도 처지가 예전만 못하니 대외 활동이 줄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광주시와의 소송이 길어지고 있다는 정도만 전해 들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조씨의 ‘몰락’이 진행되는 가운데, 문제의 손해배상 소송전이 시작됐다. 조씨는 인분이 섞인 오·폐수가 업소에 흘러들자 배수시설을 공동 점유한 광주시와 한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05년 첫 소송을 제기한 이래 최근까지 세 번의 소송이 진행됐다.

2005년 10월, 4억40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시작된 첫 소송에선 2년 뒤 일부 승소 판결이 나왔다. 1800만원을 배상받게 됐다. 그런데 이후에도 누수가 계속됐다. 조씨는 다시 2억2000만원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2011년 2100만원 배상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배수 시설 보수 공사를 했음에도 오·폐수 유입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조씨는 2012년 1억7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세 번째 소송을 시작했다. 2013년 2월 내려진 1심 판결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것 중 최고액인 8000만원 상당을 광주시 등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그런데 올해 4월 선고된 2심에서는 1심에 비해 대폭 감액된 1800만원 상당만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반복되는 소송 과정에서 조씨의 공격적인 성향은 극대화된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청 관계자는 조씨에 대해 “상대하기 무척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욕설을 듣는 건 다반사였다. ‘가만두지 않겠다’ ‘지금 법원하고 미리 짜고 이러는 거 안다’라는 등 매사에 공격적으로 반응했다. 1년 전에 부서를 재배치받으며 이 일을 인계받았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죄인’이 돼야 했다.” 자신이 업무를 담당한 최근 1년간 조씨는 늘 공격적이고 분노에 가득 찬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조씨는 앞선 두 차례 소송에서 수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으나, 그 10%에 못 미치는 배상만을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월, 1심 판결보다 대폭 배상액이 줄어든 판결을 받은 조씨의 불만은 극에 달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방화범 조씨가 스스로 범행 동기라고 진술한 소송들은 자신을 둘러싼 상황이 악화되는 가운데 진행됐다. 특히 8000만원에서 1800만원으로 배상액이 대폭 줄어든 2심 판결이 내려졌을 때, 콜라텍은 폐업을 맞은 상황이었다. 조씨의 사회적·경제적·심리적 고립이 진행되는 가운데 오·폐수 소송은 무려 9년간 세 차례에 걸쳐 법정 다툼을 이어갔다. 그동안 조씨는 주변에 공격적인 성향을 자주 표출했다. 끝내 서울의 지하철에 불을 질러 사회의 이목을 끌겠다는 그릇된 결론으로까지 나가고 말았다.

피의자 조 아무개씨가 운영하던 광주광역시의 콜라텍 입구. ⓒ 시사저널 박은숙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빗나간 폭발

조씨의 범행은 2000년대 이후 대형 참사로 이어진 주요 방화 사건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2003년의 대구 지하철 참사, 2008년 숭례문 방화 등이 그것이다. 범죄심리학 전문가들은 이들 사건의 방화범들이 개인적 불만을 망상에 가까운 형태로 굳혀갔고, 이를 방화라는 원시적 방법을 동원해 불특정 다수를 향해 표출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나타냈다고 지적해왔다. 눈에 띄는 점은 지난 2008년 숭례문 방화 사건의 피의자 채 아무개씨와 이번 조씨의 경우 모두 70대의 고령이라는 점이다. 채씨는 방화 사건 당시 70세였다.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의 피의자 김 아무개씨는 당시 56세였다.

이 과정에는 사회적·심리적 고립이 큰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성한기 대구가톨릭대 교수, 박순진 대구대 교수가 집필한 논문 ‘대구 지하철 방화 사건과 피의자의 방화 행위에 대한 범죄·심리학적 분석’에서는 방화범 김씨의 범행이 ‘자신의 억울한 처지에 대한 분노인 동시에 사회에 대한 테러’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더 이상 사회적 가치나 규범에 기댈 수 없게 되었으며, 순전히 고립된 존재로 위기에 개별적으로 마주 서야만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피의자의 행동은 소극적으로 보면 개인적인 불운과 좌절에 대한 반응이지만, 적극적으로 보면 사회적 편견과 차별에 절망한 고립된 개인이 사회에 대해 자신을 주장하고 상호성을 회복하려는 몸짓으로 파악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 3호선 방화는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와 여러모로 닮았다. 사진은 2003년 참사 당시 현장. ⓒ 연합뉴스
서울 지하철 3호선 방화 사건 피의자 조씨도 그랬다. ‘고립된 존재’로 위기와 마주 서야 했던 그는, 자신의 처지에 분노한 나머지 사회에 대한 테러를 시도했다. 조씨는 5월 초 발생한 상왕십리 전동차 추돌 사고에 사람들이 주목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 전동차에 불을 질렀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구조대원에게 환자라고 밝히고 이송되는 과정에서도 “기자들을 불러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아무런 인명 피해가 없었으나, 조씨의 범행에 얽혀 있는 사회적·심리적 배경은 우리에게 중요한 진실을 일깨우고 있다. 사회적으로 고립돼 삶으로부터 좌절하는, 한 평범한 시민의 고통에서부터 대형 참사가 얼마든지 잉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낙오자의 좌절이 ‘묻지 마 범죄’로 이어져 


서울 지하철 3호선 전동차 방화범 조 아무개씨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는 이런 말을 자주 들을 수 있었다. “왜 애꿎은 서울에 가서 그랬는지 모르겠다.” “억울하면 그런 판결을 내린 법원에 불을 질러야 하지 않나.” 개인이 느끼는 억울함이 범죄의 동기가 됐을 때, 그런 억울함을 느끼게 했던 대상을 직접 겨냥하는 것이 상식에 가깝지 않으냐는 게 주변의 반응이었다.

하지만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및 2008년 숭례문 방화, 이번 지하철 3호선 전동차 방화는 모두 방화 피의자의 개인적 불만과는 무관한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분노와 적개심의 대상이 일반 사회로 확장된 것이다. 물론 조씨의 경우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사회가 알아주길 바라는 마음’을 범행의 표면적 동기로 내세우기는 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동차에 불을 지르는 위험한 방식으로 표출됐음을 감안하면, 불특정 다수를 향한 공격성이 범행의 심층 심리에 작용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와 연관되는 개념이 ‘묻지마 범죄’다. 모르는 불특정인을 향한, 동기가 불분명한 범죄를 가리키는 용어다. 지난 2012년 여의도 칼부림 사건, 영등포 골목길 살인 미수 사건, 반포 초등학교 흉기 난동 사건 등이 잇따라 불거지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바 있다. 그런데 이번 지하철 전동차 방화의 경우 ‘방화’가 ‘묻지마 범죄’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방화는 살인·강도 등 여타의 강력범죄에 비해 대형 참사로 비화할 가능성이 큰 범죄다. 방화가 묻지마 범죄와 결합할 경우, 불특정 다수가 희생되는 대형 참사로 번질 위험이 특히 높은 것이다.

올해 2월 발표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논문 ‘묻지마 범죄자의 특성 이해 및 대응 방안 연구’에서는 2012년 발생한 묻지마 범죄 48건을 분석해 대응 방안을 제시했다. 지역사회 내 고위험군 대상자에 대한 효과적 관리 체계 구축,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치료 지원 등이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언급되는 것이 사회·경제적 불안 요인의 극복이다. ‘전통적인 사회통합기관들의 역할이 후퇴하고, 핵가족과 만연한 개인주의로 공동체는 사막화돼가고 있다. 또한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경쟁 위주의 사회 구조에 따라 소외되는 사람들도 증가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쌓인 낙오자들의 불만과 좌절감이 사소한 계기를 통해 극단적인 분노와 증오로 표출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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