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병장, A급에서 B급 된 건 근무 인력 부족 때문”
  • 이규대 기자·정락인 객원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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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 관심병사 관리 부실 의혹 제기…“인원 없어서 무리하게 배치”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이 또 일어났다. 국민의 안위를 지켜야 할 한 군인의 총부리가 다시 한 번 동료를 겨눴다. 6월21일 저녁 8시 무렵, 강원 고성군 육군 22사단 GOP(일반 경계소초)에서 총기 사고가 발생했다.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한 임 아무개 병장(22)이 동료 병사들에게 수류탄을 터뜨리고 K-2 소총 10여 발을 쐈다. 김 아무개 하사(23) 등 5명이 숨지고, 7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임 병장은 범행 직후 총기와 탄약을 소지한 채 무장 탈영했다. 체포에 나선 군 병력과 인근 야산에서 간헐적인 교전을 벌이며 대치했다. 이 과정에서 소대장 한 명이 추가로 부상당했다. 임 병장은 사건 발생 약 43시간 만인 23일 오후 3시 무렵 자살을 시도했으나, 응급조치 후 병원에 후송되며 검거됐다.

또 재발한 군 총기 사고로 인해 국민들의 충격과 걱정은 커지고 있다. 2011년 해병대 총기 사고가 발생한 지 채 3년도 안 돼 벌어진 일이다. 2005년 경기도 연천 28사단 530GP에서 발생한 총기 사고로 장병 8명이 숨지고 2명이 부상당한 이래 최악의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37쪽 상자 기사 참조).

ⓒ시사저널 이종현
이렇듯 끔찍한 참사의 1차적인 책임은 임 병장에게 있다. 임 병장이 어떤 인물이었는지, 사건을 전후한 그의 심리 상태와 행적은 어땠는지, 범행의 직접적 동기는 무엇이었는지 등이 철저하게 규명돼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임 병장 개인만이 아니라 그의 범행에 관련된 여러 정황 및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 발생한 총기 사고 대부분이 사고자 개인의 문제와 군 내부의 부조리한 병영문화가 결합돼 발생하는 복합적 성격을 띠었기 때문이다. 이번 총기 사고와 관련된 임 병장의 ‘개인적 요인’, 그리고 이를 둘러싼 ‘환경적 요인’을 함께 추적했다.

내성적인 성격에 버거웠던 GOP 근무

임 병장은 전역을 3개월 남겨놓고 있었다. 몇 달만 참으면 되는데도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총을 난사했다. ‘조준 사격’을 하고 부상당한 병사에게 ‘확인 사살’까지 했다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당시 임 병장의 정신 상태가 극도로 흥분해 있었고, 동료 병사들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고 추정되는 정황이다. 임 병장은 왜 3개월을 참지 못하고 죽을 각오로 방아쇠를 당겼을까. 이를 규명하기 위해서는 임 병장이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

임 병장의 성장 과정은 ‘외톨이’에 가까웠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대인 관계가 원활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한집에 살았던 임 병장의 할아버지는 언론 인터뷰에서 “대인 관계가 넓은 편이 아니었고, 친구들과 장난치고 어울리는 걸 싫어했다”고 말했다. 스스로 고립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친구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다. 친구들의 괴롭힘과 따돌림은 점점 심해졌다. 고교 2학년 때는 아침 자율학습 시간에 받는 놀림이 싫어 정규 수업 시작 직전에 맞춰 등교할 정도였다. 임 병장은 학교생활을 견디지 못했다. 결국 고교 2학년 때 자퇴의 길을 택했다. 고교 학력이 인정되는 검정고시를 준비해 합격한 후 방송통신대에 입학했다. 공무원인 부모의 영향을 받아 공무원이 되겠다며 행정학과를 선택했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내성적인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주로 집에 틀어박혀 컴퓨터와 인터넷 게임에 빠져 지냈다고 전해진다. 또래 친구들 대다수가 갖고 있을 인터넷 미니홈피조차 만들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싫어했고,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활동도 하지 않았다. 22사단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카페에도 임 병장의 흔적은 없다. 그가 얼마나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피하는 성향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임 병장은 대학 1학년 때인 2012년 말 군에 입대했다. 입대를 전후해 그가 지닌 성격적인 결함이 감지됐다. 입대 장병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인성·적성검사에서 근무에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근무 부적합’ 결과가 나왔다. 군은 임 병장을 ‘A급 관심사병’으로 분류했다.

임 병장은 지난해 8월, 군 소속 전문상담관과의 심리 상담 과정에서 대인 관계에 대한 어려움을 호소했다. 당시 상담 기록에 따르면, 임 병장은 주변의 소소한 장난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성격을 고치려 했지만 잘 안 돼 좌절감을 느껴왔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간부들로부터 꾸지람이나 지적을 받았을 때 심하게 의기소침해졌고, 후임병들과의 관계에서도 어려움을 느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런데 임 병장은 지난해 11월 실시한 인성검사에서 한 단계 낮은 ‘B등급’ 판정을 받았다. 올해 3월15일 실시된 재평가에서도 ‘양호’ 평가를 받았다. B등급 관리 대상자의 경우 지휘관의 판단 아래 GOP 투입이 가능하다. 임 병장은 B급 판정을 받은 지 한 달 후에 GOP 경계근무에 투입됐다.

6월23일 오전 임 아무개 병장 체포작전에 참가한 수색팀이 차량에 탑승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소초장 공석 등 군 병영 관리 부실도 사고 원인

비무장지대 소초는 일반 내무반 생활과 다르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를 이어서 만든 막사에서 30명 정도가 생활한다. 외부와는 완전 단절된 상황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년간 해야 한다. 오로지 선임·후임 아니면 동기로 나뉘어 고립된 생활을 한다. 선임이나 후임 간의 관계에서 갈등이 생기면 해당 병사는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마음을 터놓고 지낼 동료가 없다면 하루하루가 지옥처럼 느껴지기 쉽다. 내성적인 성격의 임 병장이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환경이다.

실제 군 관계자와 임 병장 부모의 말을 종합하면, 임 병장은 GOP에 투입된 후 병영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다. 매사에 절도 있고 민첩한 행동을 요구받았지만, 임 병장은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병장으로 진급해서도 부대원들로부터 제대로 고참 대접을 받지 못해 불만이 쌓여갔던 것으로 보인다. 군이 임 병장 부대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1차 면접조사에서는 “임 병장이 자주 열외됐다” “단체생활을 못하고 소수하고만 어울렸다” “선임병들에게 왕따를 당했고, 후임병한테 인정을 못 받았다” 등의 증언이 나왔다. 임 병장의 GOP 생활이 그리 원만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군 수사 당국은 임 병장의 범행으로 볼 때 단순 따돌림뿐만 아니라 가혹 행위나 구타 등이 있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임 병장은 지난 5월 휴가를 다녀왔는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 가족들이 걱정했다고 전해진다. 가족들은 “휴가 때 얼굴이 반쪽이 되어 왔다”며 가혹 행위를 받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 후임병들이 임 병장에 대해 선임병 대접을 해주지 않는, 이른바 기수 열외나 집단 따돌림 등이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임 병장이 자살을 기도하기 전 쓴 유서 형식의 메모에서는 스스로를 ‘개구리’와 ‘벌레’에 비유하면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죽는다’ ‘벌레를 밟으면 얼마나 아프겠나’는 취지의 표현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나 같은 상황이었으면 누구라도 힘들었을 것’이라는 내용도 담겨 있다. 과연 그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상황’은 무엇이었을까. 군 수사 당국이 6월26일 임 병장을 민간 병원에서 군 병원으로 데려와 범행 동기 및 경위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에 들어간 만큼, 곧 그 실체가 드러나게 될 전망된다.

이번 사고의 모든 책임을 임 병장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군 당국의 무책임하고 안일한 병영 관리를 보면서 임 병장에게도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사고 유족들이 6월26일 대국민 호소에서 밝힌 내용이다. 유족들은 “군 당국의 태만으로 죽어간 우리 아들뿐만 아니라 임 병장 역시 지키고 보듬어야 할 자식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고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희생자 가족들이 군의 병영 관리 부실을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나선 것이다.

소초원 사이의 갈등 관계를 중재하거나 해소하는 건 소초장의 몫이다. 그런데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GOP 소초의 소초장은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지난 4월, 감시 장비 분실과 소초 시설물 훼손 등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보직해임됐다. 사고 발생 당시에는 다른 부대의 부중대장이 소초장 직무대리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발생 전 해당 소초 분위기가 어수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지난해 8월 임 병장이 상담관에게 대인 관계에 따른 고충 등을 토로하고 불과 두 달 뒤, ‘A급’에서 ‘B급’으로 관심병사 등급이 하향 조정된 것도 질타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간부·후임병 등과의 관계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병사에게 GOP 근무를 지시한 결정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군의 관심병사 관리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노출된 셈이다.

GOP 소초원들은 근무 스트레스까지 겹쳐 있었다. 국방 전문가인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은 “전방 초소의 경우 현재 필요한 수요에 비해 병력 공급이 70~80%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산악지대가 많은 강원 지역의 복무 환경은 특히 열악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22사단은 동부전선과 해안 경계를 맡고 있다. 관할 구역인 경계근무 구간이 무려 97㎞(전방 경계선 28㎞, 해안 경계선 69㎞)에 달한다. 인근에 있는 21사단에 비해 5배가 넘는다. 거리는 길지만 인원은 다른 사단과 비슷하니, 병사들의 경계근무가 더욱 고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2사단의 경우 2명의 경계근무 병력이 3~4개의 소초를 지켜야 하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업무 강도가 강할수록 소초원들도 심리적으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제2의 임 병장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

관심병사인 임 병장을 GOP에 투입한 것도 부족한 인력을 메우기 위한 자구책이 아니었느냐는 말이 나온다. 과거 22사단에서 근무했던 한 전역자는 “내가 있던 곳은 DMZ 수색 임무를 맡았는데, 실탄과 위험으로 가득했다. 흔히 말하는 관심병사들이 왔었고 당혹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한 예로 일본에서 대학을 나온 관심병사가 있었는데, 적응을 못 하고 사고를 많이 쳤다. 뭘 알려줘도 제대로 하지 않고 늘 꾸중을 들었다. 그러자 선임에게 일본어로 욕을 하는 등 동료 병사들과 관계가 좋지 못했다”며 “위험이 가득한 관심병사를 전방 GOP에 투입할 수밖에 없는 부대 시스템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희생자 가족들 역시 당초 A급으로 분류된 임 병장이 B급으로 변경돼 GOP 근무에 투입된 경위를 두고 ‘인력 부족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고 진 아무개 상병의 아버지는 한 라디오 방송에서 “인원이 없어서 무리하게 배치한 것으로 생각한다. B급이었던 사람도 A급으로 떨어질 것 같은 (열악한 근무) 환경인데, A급을 B급으로 만든 (데 대한) 명쾌한 해석이 안 되면 제2, 3의 임 병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주장했다.

끔찍한 총기 사고가 발생할 때면 항상 군의 부조리한 병영문화, 부실한 부대 관리 실태가 문제로 떠올랐다. 정부와 군 당국은 재발 방지를 위한 후속 대책을 내놓았지만, 별 성과를 보지 못한 채 사고는 재발했다. 이번 총기 사고 역시 징병제를 근간으로 운영되는 한국군의 총체적인 위기를 노출한 사건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국민들은 철저한 진상 규명과 실효성 있는 후속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사고를 둘러싼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에서, 군이 강도 높은 혁신 요구에 직면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05년 11월 법정으로 들어가는 김동민 일병(가운데). ⓒ 연합뉴스
2005년 6월19일 경기도 연천 28사단 530GP에서 장병 8명이 죽고, 4명이 부상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국방부는 김동민 일병이 수류탄 1발을 내무실에 투척하고, K-1 소총 44발을 발사했다고 발표했다. 김 일병의 범행 동기에 대해 “평소 선임병들로부터 잦은 질책과 욕설 등 인격모욕을 당한 데 앙심을 품고 선임병 등을 살해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군은 물론 사회에도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고, 군에 자식을 보내는 부모들을 불안에 빠뜨렸다.

언론에서는 이번에 강원도 고성에서 총기 사고를 일으킨 임 아무개 병장이 동료 병사들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하고, 총을 난사했다는 점에서 530GP 사건과 유사한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다. 당시 김 일병은 대학을 다니다 군 입대 전 자퇴했다. 군은 “김 일병이 몸이 허약해 학교생활에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으로 동료 전우들과도 잘 어울리지 않았다. 컴퓨터 게임을 즐겨 했다”고 밝혔다. 당시에는 관심병사 제도가 없었지만, 이 내용만으로 보면 관심병사였던 임 병장과 판박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군의 발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 530GP의 내무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는 증언도 있다. 실제 생존 소대원의 진술서를 보면 “김 일병과 소대원들의 분위기는 좋았다”고 적고 있다. 김 일병이 쓴 수양록도 일반 사병들과 다른 게 없었다. 자기표현도 자유스럽게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금의 관심병사 기준에 김 일병은 해당되지 않는 셈이다.

현재까지도 이 사건은 미스터리 속에 빠져 있다. 김 일병이 범인이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유일한 증거는 김 일병의 자백뿐이다. 김 일병의 범행을 목격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530GP사건진상규명위원회 박영섭 위원장은 “여러 가지 정황·증거·증언을 종합해보면 김 일병이 범인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530GP의 사건은 차단 작전 중 북한군의 기습 포격에 의한 사건인데, 북한과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우려해 조작·은폐했을 가능성이 크다”며 “군이 김 일병을 회유해 범인으로 내세운 것이라고 유족들은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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