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임 병장’ 언제든 다시 나온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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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 뚫린 관심병사 관리 시스템…지휘관에만 기대는 방식으론 사고 못 막아

강원도 고성 동부전선(22사단)에서 GOP 경계근무를 마치고 복귀하던 임 아무개 병장이 수류탄과 총기를 난사해 부대원 5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6월21일 저녁 발생했다. 임 병장은 당초 ‘A급 관심병사’였다. 지난해 말 ‘B급 관심병사’로 하향 분류된 후 GOP 경계근무에 투입됐다. 결국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그에게 지급된 실탄과 수류탄은 참사의 도구로 사용되고 말았다. 관심병사에 대한 후속 관리가 부실했다는 질타가 군 당국에 쏟아지는 이유다. 자연스레 우리 군의 관심병사 관리 실태 전반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관심병사’의 정식 명칭은 ‘보호관심병’이다. 군 복무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부대 지휘관 등에 의해 특별 관리 대상이 되는 병사를 가리킨다. 병무청 신체검사와 입대 초 및 자대 전입 직후 등 수차례에 걸쳐 실시되는 인성검사와 지휘관과의 면담 등을 통해 선별된다.

6월23일 한 장교가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서 사고 희생자 조문을 마친 장병들을 인솔해 합동분향소를 떠나고 있다. ⓒ 연합뉴스
각 부대 지휘관은 육군 규정 941호에 따라 관심병사를 세 등급으로 구분하게 된다. 최상위 등급인 A급은 ‘특별관리대상’이다. 자살 계획과 시도 경험이 있는 병사, 동성애자 등이 해당한다. B급은 ‘중점관리대상’이다. 자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병사, 한 부모 가정, 경제적 빈곤자, 성 관련 규정 위반 우려자 등이다. C급은 ‘기본관리대상’이다. 입대 100일 미만의 신병, 허약 체질자, 기타 보호가 필요한 대상 등이 해당한다.

“5명에 1명꼴 위험”은 과장된 것

관심병사에 대한 군 전체의 통계는 현재까지 없다. A급 관심병사를 1만7000여 명, 60만 군 장병 전체의 3.8% 수준인 것으로 추정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국방부는 6월23일 사고가 발생한 22사단의 관심병사 현황만 파악해 발표했다. A급 312명, B급 470명, C급 1018명이다. 관심병사는 도합 1800명으로 22사단 전체 병사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는 “22사단에 특별히 집중된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이 정도 수준”이라고 밝혔다. 전체 병사 5명 중 1명꼴로 관심병사가 존재한다고 추정한 것이다.

국방부의 발표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잇따르고 있다. 일반적인 예상에 비해 많은 숫자가 관심병사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분석해보면 사정은 좀 다르다. 육군 규정에 따르면 입대 100일 미만의 신병을 일괄적으로 C급 관심병사로 구분하게 된다. 갓 입대한, 전체의 약 7분의 1에 해당하는 병사들이 자동적으로 관심병사에 편입되는 셈이다.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만 전체 병사 대비 10%가 넘는다. 결국 충분한 시간이 흐른 후에도 군 복무에 적응하지 못했거나 심리적 문제가 있는 경우는 전체 병사 10명 중 1명꼴이거나 이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일각에서는 동성애자, 한 부모 가정 병사 등에 일괄적으로 ‘관심병사’ 낙인을 찍는 것이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사고 고위험군에 해당하는 병사의 비율은 이들 수치보다 더 낮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상을 고려할 때 “병사 5명 중 1명꼴로 위험하다”는 식의 우려는 다소 과장된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사고 위험군에 해당하는 복무 부적응자, 심리적 문제가 있는 병사는 수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결코 적은 숫자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이번 총기 사고를 통해 이들에 대한 관리에 총체적인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시사저널은 관심병사 관리 실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예비역 육군 장교 ㄱ씨와 접촉했다. ㄱ씨는 육군 일선 부대에서 오랫동안 지휘관으로 복무했던 인물이다. 22사단이 소속된 8군단 예하 연대에서 지휘관으로 근무하는 등 20여 년 동안 장교로 복무하다 지난 2011년 예편했다. 전역 후에도 군 관련 업종에 종사하며 군 안팎의 동향을 접하고 있다.

관심병사 100명당 전문상담관 1명꼴

ㄱ씨는 병영생활지도기록부 등을 활용해 개별 병사에 대해 최대한 깊이 있게 이해하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부대 관리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갈수록 병사 관리가 더욱 어려워진다는 것이 일선 간부들의 지배적인 견해라고 한다. “과거에는 주말에 ‘전투체육’을 하는 것만으로 병사들 간의 우애가 다져질 수 있었다. 자라온 환경 차이가 현재처럼 크지 않았기 때문에 단체 활동을 장려해 부대 분위기를 개선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요즘 군인들은 각자 선호하는 바가 너무나 다양하다.” 개성이 다양해진 탓에 병사들에게 접근하는 일이 과거에 비해 훨씬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관심병사들은 각 등급에 따라 차별화된 조치를 받게 된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등급분류 기준’ 문건에 따르면, 최고 위험군으로 분류된 A급, 즉 ‘특별관리대상’ 병사는 대대장이 주 1회, 중대장이 주 2회, 소대장이 매일 면담을 실시하도록 돼 있다. 정신과 진료, ‘그린캠프’ 입소,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 상담 등의 조치도 뒤따른다. 그런데 ㄱ씨는 군대 적응 프로그램 격인 ‘그린캠프’의 경우 “여기에 다녀온 관심병사들을 향해 ‘문제 있다’는 식의 부정적인 선입견이 부대 내에 생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관심병사의 군 적응을 돕는다는 취지가 무색하게 오히려 부작용을 발생시킨다는 것이다.

ㄱ씨는 “사고 위험이 큰 관심병사에겐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 같은 전문 인력의 면밀한 관리가 적합하다”고 말했다. 예전보다 더욱 섬세하고 복잡해진 병사의 내면을 장기적으로 꾸준하게 밀착 관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군의 상담관 수는 246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2017년까지 병영 생활 전문상담관을 여단급까지 확대 배치해 그 수를 357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하지만 이 역시도 많아야 연대에 1명꼴이다. 관심병사 100여 명당 한 명꼴로 배치될 상담관이 이들의 밀착 관리에 얼마나 실효적일 수 있을지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여전히 관심병사 관리는 지휘관의 역량에 대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를 도울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자료가 인성검사 결과다. 현재 군에서 실시하는 인성검사는 한국국방연구원에서 개발한 ‘신인성검사’ 진단 도구를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ㄱ씨는 일선 지휘관이 관심병사의 상태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성검사 결과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인성검사는 총 4개 세트로 구성돼 매우 정교하다. 복무 적합도, 군 생활 적응, 적성 적응도 등을 분석해낸다. 그런데 심리학적 지식이 없는 지휘관이나 간부는 그렇게 자세히 분석된 결과를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결과 말미의 ‘총평’ 정도를 겨우 참고하는 식이다.”

‘A급 관심병사’였던 임 아무개 병장의 손에 실탄이 쥐어질 수 있었던 것은 부대 지휘관이 ‘B급’ 판정을 내린 후 GOP 투입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심리학적 전문성이 없는 지휘관이 재량으로 관심병사 등급을 변경할 수 있는 현 시스템에 문제를 제기한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2011년 해병대 총기 사건 이후 3중 필터 제도를 만들었다. 병무청 신체검사, 훈련소 입소, 자대 배치 직후 한 번씩 인성검사를 받도록 돼 있다. 문제는 여기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더라도 지휘관이 심리학적인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A를 줘야 할지, B를 줘야 할지, C를 줘야 할지 잘 모른다. 지휘 부담에 따라 본인이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국방부도 현행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향후 개선해나가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6월24일 “현재 대대장 이상 지휘관이 임의대로 관심병사 등급을 변경해왔던 관행을 개선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관심병사 등급을 변경하려면 전문 심사관의 심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제도를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만성적 병력 수급 부족에 ‘안전’은 뒷전

하지만 이것이 문제의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기엔 여러모로 부족해 보인다. 현역병 징집 과정에서부터 이미 ‘관심병사’가 될 가능성이 큰 이들을 선별해내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병무청 국정감사 당시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신체검사에서 확인된 정신건강 이상자 대다수가 현역으로 입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송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신검 인성검사 이상자 현황’에 따르면, 2012년 신체검사 대상자 37만5525명 중 7.4%에 해당하는 2만7836명이 인성검사 이상자로 분류됐다. 그런데 이 중 4216명만이 4급·면제·재검 등 판정을 받았을 뿐, 나머지 85%에 해당하는 2만3620명은 모두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한국군은 북한의 방대한 재래식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지상군 위주의 대규모 병력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출산 인구 저하 등으로 인해 병력 수급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군 당국은 징병검사 기준을 끊임없이 완화하는 것으로 대처해왔으나 이마저도 한계에 부닥친 상황이다. 1980년 45.4%, 1990년 64.2%로 증가해온 현역 판정 비율은 2000년대 이후 90%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 탓에 심리적으로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은 이들까지 무리하게 현역병으로 입영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땜질식 처방을 넘어, 국방 시스템 전반에 대한 총체적 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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