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백·투톱 전술, 다시 그라운드 지배하다
  • 브라질=서호정│축구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07.02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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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등 ‘4-2-3-1’ ‘점유율 중심 패스’ 팀 맥없이 무너져

축구 전술은 생명과 같다. 진화를 거듭하며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키고 가치를 잃은 전술은 설 자리를 잃기도 한다. 토털 사커, 리베로 시스템, 프레싱 사커 등이 그런 전술의 진화를 통해 세상에 등장해 축구를 바꿨다. 21세기 축구 전술의 화두는 탈(脫)압박이었다. 1980~90년대를 거치며 전원 공격과 전원 수비 그리고 전 방위 압박이 강화됐다. 월드컵에서 단 1승도 없던 한국조차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의해 그 개념에 눈을 뜨며 세계와의 경쟁이 가능해졌고 4강 신화를 쓰기도 했다. 기술이 체력과 신체 능력에 밀리자 아름다운 축구를 지향하는 축구 순수주의자들은 절망했다.

스페인의 탈락, 철저히 무너진 ‘티키타카’

그 과정에서 외면 받던 점유율과 패스는 지난 6년간 다시 생명을 부여받았다. 바로 ‘무적함대’ 스페인에 의해서다. 탁구에서 빠르게 공이 오가는 소리를 따서 만든 ‘티키타카’라는 엄청난 점유율의 패스 축구와 그것을 가능케 하는 선수의 세밀한 기술, 컨트롤, 창조성이 축구의 새로운 지향점이 됐다. 공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면 신체 능력이 미비하더라도 승자가 될 수 있다는 새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차비·이니에스타 등 작지만 위대한 기술을 지닌 스페인의 미드필더들은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켰다.

2014 브라질월드컵 네덜란드-칠레경기의 스리백 수비 모습. ⓒ sbs 캡처
스페인 대표팀의 축구는 세계의 축구 지도자들에게 하나의 지향점이었다. 유로2008에서 우승을 하며 메이저대회를 처음으로 제패한 스페인은 2010년 남아공월드컵, 유로2012까지 제패해 역대 최강팀이 됐다. 동시기에 스페인은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꼭대기에서 한 번도 내려오지 않았다. 세계의 축구 지도자는 스페인으로 모여들었고 그들을 배우기 위해 혹은 무너뜨리기 위해 티키타카를 연구했다. 4-2-3-1 포메이션을 기반으로 한 스페인 대표팀의 전술은 패스의 요체인 미드필더의 역할을 극대화했다. 그 과정에서 최전방엔 원톱을 세웠고 나중에는 아예 그 자리까지 득점력이 좋은 미드필더가 대신 서는 제로톱(False Nine, 가짜 9번) 전술까지 등장했다. 전통적인 스트라이커의 개념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이번 브라질월드컵은 티키타카의 종말을 알렸다. 모두가 스페인을 지향했지만 단기간에 쫓아갈 순 없었다. 스페인의 자산인 각 클럽의 유스 시스템이 배출한 탁월한 선수 자원이 없기 때문이었다. 결국 상대국이 택한 길은 티키타카 파쇄법을 찾는 것이었다. 

힌트는 나와 있었다. 유럽 클럽 축구에서 티키타카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양대 클럽인 바이에른 뮌헨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가 내건 게겐 프레싱(전방 압박)은 압박 축구의 강도와 속도를 극한으로 끌어올리며 티키타카에 대응했다. 스페인 내에서도 바르셀로나에 밀리던 레알 마드리드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선수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한 고도의 역습 축구로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시작했다. 클럽 축구에서 티키타카를 대표하던 바르셀로나는 두 시즌 연속 챔피언스리그에서 그들에게 무너졌다.

결국 그 여파는 월드컵까지 이어졌다. 브라질·아르헨티나와 함께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스페인은 조별리그 2경기 만에 탈락이 확정되며 조기 퇴장했다. 네덜란드와 칠레에 각각 1-5, 0-2로 무너졌다. 네덜란드의 루이스 판 할 감독은 자신이 향하는 토털 사커에 정교한 역습과 강한 수비를 더한 실용주의 축구로 스페인을 대파했다. 칠레는 스페인 못지않은 패스와 점유율 축구에 기동력을 더해 축구를 한층 진화시켰다.

스리백, 돌풍의 진원지 되다

이 속에서 4-2-3-1과 점유율 중심의 패스 축구를 지향하던 팀들은 무너졌다. 스페인만이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세련된 패스 축구를 펼친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도 뛰어난 피지컬의 코트디부아르, 그리스 그리고 뛰는 축구를 하는 콜롬비아를 넘지 못하며 1무 2패로 탈락했다. 안드레아 피를로라는 걸출한 패스 마스터를 앞세워 스페인 못지않은 패스 축구를 펼치던 이탈리아도 조별리그에서 짐을 쌌다. 세 팀의 공통점은 점유율에서 늘 6 대 4, 혹은 7 대 3까지 앞섰음에도 패배했다는 것이다. 즉, 골이 없이 높은 점유율과 패스 성공률은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스페인은 1, 2차전에서 단 1골을 넣는 데 그쳤고 이탈리아도 잉글랜드와의 첫 경기에서 넣은 2골밖에 없었다. 일본은 코트디부아르와의 1차전에서 선제골을 넣고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그리스전에서는 득점이 없었고 콜롬비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1-4로 대패했다.

티키타카를 대신한 것은 스리백과 투톱의 3-5-2 전술이다. 네덜란드와 칠레가 스페인을 무너뜨릴 때 가동한 전술이다. 멕시코·코스타리카 등 돌풍을 일으킨 팀도 같은 전술을 쓰고 있다. 3-5-2는 구시대 유물로 평가받았다. 강력하고 공격적인 압박을 펼치기 위해선 중앙 수비수 숫자를 1명 줄이고 미드필더와 공격을 강화하고 스위칭이 가능한 유기적 움직임이 필요했다. 그런 상황에서 3명의 수비가 뒤에서 고정돼 있어야 하는 스리백은 풀백이 전진해 허리와 공격을 강화하는 포백에 비해 효용성이 없었다.

 한국은 이 3-5-2를 거의 마지막까지 잡고 있었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당시 한국은 스리백을 쓰는 거의 유일한 팀이었고 네덜란드에 0-5의 참패를 당했다. 변화에 대한 대응이 느리고 수동적인 전술이기 때문에 공략법이 다 나와 있던 상황이었다. 당시 네덜란드 대표팀 감독이었다가 2002년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의 지휘봉을 잡은 히딩크 감독은 포백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한국을 위해 가운데 수비수를 뒤로 배치하는 스위퍼 시스템을 수정한 일자 스리백 시스템과 엄청난 스위칭 플레이를 요구하는 3-4-3 전술로 성공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나 다시 많은 팀이 스리백으로 귀환하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티키타카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방법론에 가장 부합하는 것이 3-5-2 전술이다. 세 명의 중앙 수비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안의 공간을 메워 문전에서의 패스를 차단하고 엄청난 기동력의 좌우 윙백이 협력해 2선 공격수의 침투를 막았다. 그 앞에 배치된 미드필더는 공을 배급하는 미드필더를 악착같이 괴롭혔다. 그리고 역습 전략을 위해 1명이 아닌 2명의 공격수를 배치했다. 특히 네덜란드는 결정력이 탁월한 판 페르시와 돌파 능력에서 세계 최고라는 로번을 세워 역습 때마다 스페인을 흔들었다. 공격을 하는 동시에 앞에서부터 압박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속도와 정교함을 더한 스리백은 더 이상 구시대의 유물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의 산물로 진화했다. 탈압박을 향해 등장한 화두였던 티키타카는 업그레이드된 압박에 지배당하고 말았다. 이것은 축구 전술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몇 년이 지나면 다시 강화된 패스와 점유율의 축구가 압박 축구를 겨냥할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와 변화를 목격하는 곳이 바로 월드컵이다.


ⓒ ap 연합
월드컵에선 세계 축구의 별들이 각축전을 벌인다. 리오넬 메시, 로빈 판 페르시, 아르연 로번, 메수트 외질, 카림 벤제마 등 구관이 명관임을 보여주는 스타의 활약은 반갑다. 그 무대에서 우리는 매번 역사의 뒤편으로 물러나는 별과 떠오르는  별을 확인한다.

가장 눈길을 모으는 샛별은 역시 브라질의 네이마르다. 펠레·호마리우·호나우두의 뒤를 잇는 브라질 스트라이커의 후계자로 평가받는 네이마르는 자신의 첫 월드컵에서 대관식을 준비 중이다. 조별리그 3경기에서 4골을 넣었다. 현란한 개인기와 문전에서의 자신감으로 새로운 축구 황제의 등장을 알렸다. 바르셀로나 이적 후 일었던 거품 논란도 완벽히 잠재웠다.

독일의 마리오 괴체도 첫 월드컵에서 펄펄 날고 있다. 토마스 뮐러, 외질과 함께 독일의 스리톱을 맡고 있는 괴체는 남미 선수를 연상케 하는 완성도 높은 기술과 드리블, 정교한 패스로 전차군단의 진격을 이끌었다. 네덜란드는 베테랑 공격수의 활약을 뒷받침하는 수비진에 새로운 얼굴을 발굴했다. 데 브리와 블린트는 판 할 감독의 실용주의 축구를 완성시킨 주역이다. 스리백의 중앙을 맡는 데 브리와 측면 풀백에 선 블린트는 강력한 수비와 적절한 공격 가담으로 스페인을 침몰시키는 데 한몫했다.

 멕시코의 골키퍼 기예르모 오초아는 이번 대회에서 주가가 가장 급상승한 선수다.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엄청난 선방쇼로 0-0 무승부를 만들어낸 그는 단숨에 세계적인 골키퍼로 올라섰다. 소속팀인 프랑스의 아작시오와 계약이 끝난 그는 바르셀로나, 아스널, 파리 생제르맹 등 유럽 정상권 클럽 20곳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1990년대생 돌풍도 이어지고 있다. 우루과이·이탈리아를 무너뜨리며 코스타리카 돌풍을 이끈 공격수 조엘 캠벨과 메시가 버티고 있는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환상적인 두 골을 넣은 나이지리아의 아메드 무사는 1992년생이다. 부상으로 빠진 라다멜 팔카오의 공백을 지운 콜롬비아의 공격수 제임스 로드리게스, 온두라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달성한 스위스의 에이스 제르단 샤키리, 벨기에 대표팀의 공격을 조립하는 미드필더 케빈 데 브라이너는 1991년생이다. 한국 대표팀에 희망이 된 손흥민 역시 1992년생이다. 이들 세대의 본격적인 등장은 축구 판도가 이제 20대 초반의 1990년대생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몰락에 가까운 실패를 맛본 ‘지는 별’도 있다. 세계 최고의 골키퍼로 불리던 이케르 카시야스는 2경기에서 7실점을 하며 물러나야 했다. 특히 1-5로 패한 네덜란드전에서는 결정적인 실수까지 두 차례 범했다. 역대 최고의 패스를 구사한다던 미드필더 차비 역시 부진한 플레이로 무적함대 침몰의 주된 원인이 됐다. 2차전부터 아예 벤치에 앉은 차비는 대표팀 은퇴를 고민 중이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이끈 두 엔진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파드도 체면을 구겼다. 주장을 맡은 제라드와 그를 돕는 또 다른 리더였던 램파드는 잉글랜드가 월드컵에서 52년 만에 승리 없이 탈락하는 순간을 함께했다. 특히 제라드는 우루과이와의 맞대결에서 리버풀의 동료인 수아레스에게 결승골을 헌납하는 헤딩을 해 절망에 빠졌다.

아프리카 축구의 양대 공격수인 디디에 드로그바와 사무엘 에투도 세월 앞에선 장사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했다. 30대 중반인 두 공격수는 코트디부아르와 카메룬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다. 드로그바의 경우 일본전에서 인상적인 영향력을 보여줬지만 그 뒤에는 이렇다 할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카메룬은 에투가 지켜보는 앞에서 팀 동료끼리 싸움을 펼치는 등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였다. 코트디부아르와 카메룬은 모두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활약은 뛰어나지만 이번 월드컵 최대의 기행을 저지르며 축구계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선수도 있다. 우루과이의 공격수 루이스 수아레스다. 무릎 부상을 딛고 조별리그 2차전부터 투입돼 우루과이의 극적인 16강 진출을 이끌며 국민 영웅이 됐지만 이탈리아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경기 도중 상대 수비수 조르지오 키엘리니의 어깨를 깨무는 기괴한 행동으로 세계에 충격을 줬다. 과거 소속팀에서도 같은 행동을 두 차례나 했던 수아레스는 더 이상 면죄부를 받지 못했다. FIFA는 세계적인 논란으로 번지자 본격적인 조사에 돌입해 A매치 9경기 출전 정지와 4개월 선수 정지 처분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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