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스러운 게 맛도 담겨 있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4.07.02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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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공예플랫폼-공예가 맛있다’…문화역서울284에서 7월13일까지

21세기에 사는 한국인이 가장 자주 접하는 식기는 멜라민수지로 만든 것이다. 백반집 국그릇도, 삼겹살집에서 마늘과 찬을 담아내는 접시도 멜라민 식기다. 이 밖에도 단체급식소 식판, 라면집, 짜장면집, 돈가스집, 우동집 등 음식 장르를 초월해 한국인의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문제는 멜라민 식기가 건강이나 식감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식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이 설거지하기 좋고, 무게가 나가지 않아서 배달이 쉽고, 잘 깨지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애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멜라민 식기를 우리 식탁에서 추방하자는 운동이 일고 있기도 하다. 아프리카 같은 절대적인 저개발 국가를 제외하고 멜라민 식기를 밥상 위에 올리는 나라가 없다는 것이다.

이현배 옹기장과 박효남 셰프의 프랑스 요리를 위한 상차림 협업 작품 ⓒ 시사저널 최준필
공예로 더 맛있는 밥상, 더 멋있는 술상을!

문화역서울284(옛 서울역사)에서 열리고 있는 ‘2014 공예플랫폼-공예가 맛있다’(6월25일~7월13일,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주관)는 이런 일상의 딜레마에 대해 ‘예술’을 통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예술’은 어려운 게 아니라 100년 전 한국 땅에 살았던 사람들이 무시로 일상에서 누렸던 공예다.

‘공예가 맛있다’는 제목에서 보듯 이번 전시는 먹는 행위에 늘 동반하는 식기를 공예의 관점에서 복합적으로 전시하고 있다. 전시관 초입 ‘맛있는 공예’ 섹션에 전시된 4인의 요리사와 그릇 장인의 협업 전시는 이번 전시의 눈 대목이다. 자기 재질의 빈 그릇에 프로젝션으로 음식 이미지를 올리는 미디어아트 작품은 현대 전시 기술과 공예 그리고 음식 장인이 함께한, 장르를 초월한 협업이라고 부를 만하다.

이번 전시는 무형문화재 등 전통 공예를 복원하는 전시에 방점을 찍은 게 아니라 전통에 기반을 두고 현재형으로 쓰일 수 있는, 또 쓰이고 있는 공예를 전시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프랑스 요리 전문가인 힐튼호텔 총괄 셰프 박효남과 옹기장 이현배의 협업은 짙은 갈색의 옹기가 프랑스 요리와 근사하게 어울린다는 것을 보여주고, 한식 요리가 이하연과 도예가 김희종의 얇고 투명한 백자는 빨간 김치가 길쭉한 백자합에 더할 수 없이 먹음직스럽게 놓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옹기다. 도자기는 도기(옹기)와 자기(청자기·분청사기·백자기)를 아우르는 말이다. 출현 순서로 보면 옹기가 먼저다. 신석기 시대부터 인류의 일상사에 쓰였다.

옹기는 자기에 비해 낮은 온도에서 굽고 표면이 거칠지만 대신 숨 쉬는 기능이 있어서 김치·된장 등 발효 식품이 많은 우리 식품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동반자다. 장과 김치, 술이 제대로 발효하는 데는 옹기의 몫이 크다. 우리 선조들은 ‘공예가 맛을 만드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① 류제연 ②장영필 ③배연식 ④ 이번에 전시된 미디어 아트 작품 ⓒ 시사저널 최준필·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제공
공예는 비싸고 어려운 것 아닌 일상의 예술

이번 전시의 옹기 코너에는 이현배·안시성·배연식·장영필·정윤석·홍순탁·김대웅 등 작가가 옹기 작품을 출품했다. 이들은 작은 단지부터 술잔, 접시 등 작은 소품부터 큰 항아리와 감상용 달항아리까지 옹기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고 있다.

전북 진안에서 작업을 하는 이현배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프랑스 요리와의 협업을 통해 옹기가 가진 기본에 충실한 미덕이 모던함으로 변주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전북 김제에서 작업하고 있는 안시성 작가는 붉은색이 도는 옹기를 만들고 있는데 그 역시 옹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많이 제작한다.

옹기 작가 중 배연식·장영필·류제연 작가는 ‘푸레옹기’ 작업을 하고 있다. 푸레옹기는 4~5일 동안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구워내는 옹기로 유약을 바르지 않는 대신 마지막 과정에 가마에다 천일염을 뿌려 연기와 소금 성분이 유약 성분을 대신해 옹기에 입혀지게 된다. 이 과정을 통해 옹기는 검푸른색을 띠게 된다. 푸레옹기는 곡식 저장 능력이나 물 정화 능력이 뛰어나 왕실에 납품된 것으로 알려졌다.

배연식 작가는 서울에서 유일했던 배요섭 옹기장(서울시 무형문화재)의 아들로, 4대째 옹기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배요섭 옹기장은 서울 신내동에 작업장을 갖고 있지만 배연식 작가는 개발 바람에 밀려 경기도로 작업장을 옮겼다. 하지만 푸레옹기의 가치는 요즘도 발효 숙성에 필요한 음식은 물론, 보이차 같은 저장 식품에 안성맞춤인 그릇으로 재발견돼 쓰이고 있다.

경기도 김포에서 푸레옹기 작업을 하는 장영필 작가는 배연식 작가가 단국대에서 강의할 때의 제자로, 미대 출신 옹기 작가다. 그래서인지 현대적인 세련미를 옹기에 가미해 실사용자들에게 인기가 높다.

이번 전시에서는 맛있는 밥상과 멋있는 술상 등에서 옹기뿐만 아니라 임양숙·김지영·고정은 등 12명의 작가가 실생활에 쓰이는 청자 공예품을 선보이고 있다. 또 공주의 분청사기, 담양의 대나무 공예품 등 지역 공예품도 감상할 수 있고 전시에 선보인 작품을 즉석에서 살 수 있는 ‘백화점’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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