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박원순 손 빌려 잠룡들 잡는다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7.10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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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 을에 박 시장 측근 기동민 전략공천…내부에서 ‘새 정치’ 저버렸다며 반발

2012년 총선 때 민주당은 127석을 얻으며, 과반수를 넘긴 새누리당(152석)에 패배했다. 당시 “민주당이 도저히 지려야 질 수 없는 선거를 졌다”는 여론의 비판이 빗발쳤다. 8개월 후 대선에서 민주당은 또 졌다. ‘친노’와 ‘비노’의 계파 갈등이 극에 달했다. 지난 6·4 지방선거에서는 세월호 참사 등의 여파로 야권의 우세가 예상됐음에도 승리하지 못했다. ‘무승부’라고 애써 자위했으나, 사실상 진 선거라는 내부 비판이 많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은 7·30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박근혜정부를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지금의 분위기라면 야당은 ‘미니 총선’에서 또 한 번 국민들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을 듯하다. 계파 싸움에 바람 잘 날 없는 게 지금 새정치연합의 현주소다. 

내년 3월 전대 겨냥한 계파 간 힘겨루기

공천 갈등의 진원지는 7월 재보선의 최대 승부처로 꼽히는 서울 동작 을과 야당의 텃밭인 광주 광산 을 지역이다. 모두 새정치연합의 강세 지역인 탓에 원외 중진은 물론 신진 인사들이 대거 몰렸다. 동작 을에는 안철수 공동대표의 최측근인 금태섭 전 새정치연합 대변인(47)이 지원했다. 금 전 대변인과 더불어 그동안 세 차례나 전략공천으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정세균계’의 허동준 전 지역위원장(46)과 ‘스타 변호사’ 출신인 장진영 대한변협 대변인(43), 박원순 캠프 정책대변인으로 활약했던 강희용 새정치연합 정책위부의장(43), 권정 서울특별시 법률고문(45), 서영갑 서울시의회 새정치연합 부대표(52) 등 40~50대의 신진 인사들이 대거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기에 18대 총선 당시 동작 을에 출마했던 정동영 상임고문도 “당의 결정에 따르겠다”며 말을 아끼면서도 내심 동작 을 출마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7월4일 새정치민주연합 허동준 전 위원장이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위 사진 맨 왼쪽)을 동작 을에 전략 공천키로 결정한 것에 반발해 당원 및 주민들과 국회 당대표회의실을 점거해 농성하고 있다. ⓒ 뉴시스·시사저널 이종현
갈등의 도화선은 최근 불거진 금태섭 전 대변인에 대한 ‘전략공천설’이었다. 금 전 대변인도 7월1일 한 라디오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재보선에선 경선을 한 예가 거의 없다”며 “경선이라는 것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전략공천론’에 힘을 더하면서 갈등에 기름을 부었다. 이에 허동준 전 위원장은 ‘하루가 멀다’하고 기자회견을 통해 당 지도부를 견제했고, 타 후보들 역시 일제히 경선을 요구했다.   

광주 광산 을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광산 을엔 4선 국회의원 출신 중진인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60)이 ‘경선 불사’를 외치며 공천을 신청했고, ‘박원순맨’인 기동민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48)과 박지원 전 원내대표의 최측근인 김명진 전 원내대표 비서실장(51), 안철수 공동대표 측인 이근우 광주시당 공동위원장(57) 등이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지방선거 기초단체장 자격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천 전 장관의 ‘사전 낙점설’이 나돌면서 갈등이 촉발됐다. 천 전 장관이 김한길 공동대표와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데다, 안철수 공동대표 비서실장이 ‘천정배계’로 분류되는 문병호 의원이라는 점이 ‘사전 낙점설’의 근거였다. 아울러 광산 을에 도전한 신진 인사들은 4선 중진인 천 전 장관의 광주 출마는 명분이 없고, 경선 참여는 ‘불공정 경선’을 초래할 뿐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이들 지역의 공천 갈등은 당내 계파 갈등과 맞물리면서 더욱 확산됐다. 금태섭 전 대변인과 허동준 전 위원장의 양자 대결 구도로 좁혀지는 듯했던 동작 을에서 광주 출마를 준비했던 기동민 전 부시장의 전략공천이 확정되자 일대 파란이 일었다. 금 전 대변인은 7월4일 전격적으로 대변인 사퇴 의사를 밝혔다. 허 전 위원장 지지를 선언했던 친노 진영에서도 반발했다. 동시에 광산 을 출마가 유력해진 천 전 장관에 대해선 ‘손학규계’로 분류되는 김동철·임내현 의원 등 광주 지역 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40여 명의 의원이 ‘중진의 텃밭 출마는 바람직하지 못하다’며 ‘천정배 불가론’을 주장하고 나섰다. 기존의 친노 대 비노 구도에서 ‘안철수계’ ‘정세균계’ ‘손학규계’에 이어 ‘박원순계’와 ‘천정배계’까지 그야말로 새정치연합은 계파 싸움으로 온통 사분오열되는 양상이다.

이번 공천 갈등은 내년 3월 이후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겨냥한 계파 간 힘겨루기의 부산물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전국 15곳에서 치러져 ‘미니 총선’이라고 불리는 이번 재보선을 통해 세력 확대를 꾀하려는 계파 간 이해관계가 충돌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내년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으면,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2016년 20대 총선 공천권을 쥘 수 있어 이번 재보선이 사실상 세력 확대를 꾀할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각 계파 간에 자파 인사를 공천시키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당내 친노 진영 등 구(舊)주류 측에서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에 대해 ‘자기 사람 심기’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구주류 측은 이미 당내에서 논란이 된 천 전 장관과 금 전 대변인을 비롯해 박광온 대변인 등 신(新)주류 측 인사들에 대한 공천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범친노 진영의 한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안철수 공동대표가 이번 재보선에서 이길 수 있는 공천을 해야 하는데, 내년 전당대회를 의식한 공천을 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안철수-박원순 연대설’에 친노 측 긴장

안 공동대표와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었던 비노 진영에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이긴 마찬가지다. 특히 ‘원외 잠룡’인 손학규 상임고문에 대한 공천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인 터라 당내 손학규계 인사들의 불만은 커지고 있다. 손 고문 측은 새정치연합의 약세 지역인 ‘수원 병(팔달) 차출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고 있지만, 수원 지역 나머지 2곳(수원 을과 수원 정)의 조합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신경이 날카로운 상황이다. 손 고문의 한 측근은 “당 지도부가 수원에 손 고문이 아닌 다른 복안을 찾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 선거를 이길 수 있겠느냐”며 “더욱이 수원 지역 3곳은 벨트로 묶어야 하는데, 아무나 전략공천 한다면 손 고문 차출론의 의미가 퇴색된다”고 말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철수 공동대표의 리더십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당내에선 광주 광산 을과 서울 동작 을 공천 갈등으로 인해 “이미 리더십에 흠집이 갔다”는 말이 나온다. “뜸 들이는 리더십”이라며 안 대표에 대해 볼멘소리를 하는 이도 적지 않다. 이를 의식한 듯 안 대표는 7월3일 동작 을에서 과감히 금 전 대변인을 배제시키는 강수를 던졌다. ‘자기 사람 심기’ 논란을 피해가는 대신 서울시장 재선 성공으로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는 ‘박원순 후광 효과’를 내세워 선거를 치르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또한 광산 을도 전략공천 지역으로 정해 천 전 장관을 둘러싼 ‘공천 배제’ 논란을 잠재우는 승부수를 던졌다. 

이런 안 대표의 승부수가 먹혀들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당장 당내 분위기가 싸늘하다. 한 중진 의원 측은 “광주에서 이미 개소식을 한 기 전 부시장을 서울로 전략공천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안 대표는 ‘전략공천이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을 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당내에선 기 전 부시장에 대한 전략공천으로 ‘안철수-박원순 연대설’이 퍼지면서 친노 진영을 중심으로 한 구주류 측의 긴장감이 커지고 있다. 실제 안 대표 측의 한 인사는 “지금은 안 대표와 박 시장이 본격적인 경쟁보단 협력을 해야 할 때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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