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돌격에 오바마 “어휴, 골치 아파”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07.2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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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 정상 갈등 골 깊어…중동 평화 위협 요인

7월17일 오전 10시부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시한부 정전이 시작됐다. 고작 5시간이 주어졌다. 포성이 잠깐 멎은 그 시간에 가자 지구는 아수라장이 됐다. 탈출하기 위해 늘어선 자동차로 도로는 마비됐고, 현금지급기 앞에는 피난 물자를 사려는 수백 명의 사람이 길게 늘어섰다.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우성을 치는 동안 이집트에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만났다. 전면 휴전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소식에 기대감이 커졌지만 협상은 이내 교착 상태에 빠졌고, 17일 밤 10시40분 이스라엘군은 성명을 내고 전격적으로 지상군을 투입했다.

이스라엘, 미국의 ‘양보’ 요구에 요지부동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휴전 협상에 외교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누차 말했지만,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휴전은 의제에 올라와 있지도 않다”며 전쟁 시작부터 전의를 불태웠다. 너무 다른 입장 차이에 끙끙 앓는 쪽은 오바마 대통령이다. 그에게 네타냐후 총리는 골치 아픈 존재다. 미국 정부에 필요 이상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위험 요소가 돼버렸다.

ⓒ AP 연합
2009년 탄생한 1기 정부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실현을 대외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다. 그래서 즉각 네타냐후 총리에게 팔레스타인과 평화 협상을 시작하라고 압박했다. 2009년 7월14일 이스라엘은 마지못해 이를 받아들였다. 미국은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추진하는 아파트 건설 계획을 중단하도록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네타냐후 총리가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수도이며, 모든 시민은 이곳에서 자유롭게 자산을 선택하고 살 수 있다”며 반대했다.

2010년 3월10일,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하는 동안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 유대인 거주 지역에 1600채의 새로운 주택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부통령 방문에 맞춰 나온 발표에 오바마 대통령은 격노한 것으로 전해졌다. 불과 보름 뒤인 2010년 3월26일 두 정상은 백악관에서 만났다. 하지만 그 흔한 사진 촬영도, 기자회견도 없었다. 동예루살렘의 유대인 주택 건설을 중지하라는 요구를 받은 네타냐후 총리는 양보하지 않았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를 홀로 남겨둔 채 회담장을 떠나버렸다.

1년 후인 2011년 5월19일, 오바마 대통령은 중동 정책과 관련한 대국민 연설에서 ‘1967년 이전 경계선 기준’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2012년 재선 도전을 앞둔 상황에서 최대 후원자인 유대계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연설을 시작하기 한 시간 전부터 백악관에 전화를 걸어 언성을 높였던 네타냐후 총리가 이를 받아들일 리 없었다.

2012년 재선에 도전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은 유대인의 표심을 얻기 위해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네타냐후는 경쟁자인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선호했다. 이스라엘과 미국에서 살던 젊은 시절의 두 사람은 보스턴에 본사를 둔 BCG(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만난 직장 동료였다. 결과적으로 오바마 대통령이 롬니를 꺾고 재선에 성공하자, 오바마와 네타냐후의 간극은 더욱 벌어졌다.

2013년 11월 타결된 이란과의 핵 협상은 네타냐후 총리를 분노하게 했다. 서방이 핵무기 개발에 쓰일 것을 우려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제한하는 대신 이란의 경제 제재를 조금 풀어주기로 한 조치에 반발했다. 그는 핵 협상 결과를 “역사적 실수”라고 비판했고 오바마 대통령은 “험한 말과 고성이 정치적으로 쉬운 일일지는 몰라도 안보를 위해 올바른 방법은 아니다”고 맞받아쳤다.   

네타냐후는 정치 인생의 대부분을 이스라엘에서 가장 솔직한 하드코어 강경파로 지내왔다. 1996년 처음 총리가 됐을 때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맺은 오슬로 평화협정(팔레스타인 자치의 기반을 마련해준 협정)을 짓밟는 시늉을 했다. 그가 쓴 책 <Place Among the Nations>의 주요 내용은 팔레스타인의 국가 수립이 어떻게 이스라엘에 위기가 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아랍계 늘어나는 이스라엘 용납 못한다”

이쯤 되면 미국 대통령과 맞대결조차 피하지 않으며 동예루살렘으로 전진하는 강경함의 근원이 궁금해진다. 이스라엘의 나프탈리 베넷 경제부 장관은 이스라엘 사회의 변화에서 단서를 찾는다. 그는 “네타냐후는 이스라엘이 인구 통계의 위협에 노출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스라엘 내 아랍계 인구가 증가하는 현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계는 1948년 이 땅이 유대인의 나라가 되기 전 팔레스타인인 등의 후손인데 전체 인구 800만명 중 20%에 달하는 165만명 정도다.

가족의 영향도 있다. 예를 들어 네타냐후의 전임자였던 아리엘 샤론, 에후드 올메르트 전 총리가 우파에서 중도로 방향을 튼 배경에는 가족이 있었다. 샤론의 곁에는 중도파 국회의원인 아들이 있었고, 올메르트 옆에는 온건파 예술인인 아내가 있었다. 반면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순혈 강경파이자 저명한 시온주의자인 벤지온 네타냐후가 있다. 2012년 부친이 사망하기 전까지 네타냐후 총리 스스로 “큰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아버지와 상담하기도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아들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벤지온은 영토 문제에 관해서는 아랍 세계에 일절 양보하지 않는 철저한 시온주의자였다. 99세 생일을 맞은 2009년, 이스라엘 언론과 인터뷰를 가진 그는 이렇게 말했다. “가능하다면 이스라엘은 귀속을 다투고 있는 모든 영토를 제압해야 한다. 긴 전쟁이 되더라도 제압하고 지배해야 한다.”

이념적으로 이질적인 네타냐후와 오바마의 관계는 변할 수 있을까. 재선을 걱정하지 않는 오바마 정부가 이스라엘과의 대치를 과거처럼 주저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럴 경우 또다시 충돌은 불가피하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국제센터의 아론 데이비드 밀러 연구원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화에 대해 단기적인 해결책이 있다고 보는 중동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화약고가 돼버린 가자 지구의 운명이 불편한 관계에 빠진 두 정상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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