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의 재보선 압승에 휩쓸려간 ‘검·경 수뇌부 교체론’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8.05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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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덕에 다시 칼자루 쥐게 되나

“이성한 경찰청장이 문제가 아니다. 김진태 검찰총장도 위험하다.”

경찰이 지난 6월 초에 발견해 단순 변사 사고로 처리했던 시신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 밝혀진 지난 7월22일, 검·경은 발칵 뒤집혔다. 검·경과 정치권 안팎에서 수뇌부 경질론이 들끓었고,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이성한 청장이 이날 청와대로 불려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질책을 당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양대 사정기관 수뇌부 경질론은 더욱 힘을 얻었다. 일각에서는 “청와대가 이 청장은 ‘해임’으로 처리하고, 김 총장은 ‘자진 사퇴’로 정리했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2013년 12월2일 김진태 검찰총장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은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 정부 출범 후 검찰총장 공석만 6개월

실제 곧바로 수사 라인에 대한 경질 조치가 이어졌다. 유 전 회장 수사를 총괄 지휘했던 최재경 인천지검장은 사표를 제출했고, 정순도 전남지방경찰청장과 우형호 순천경찰서장은 직위해제됐다. 야당에서는 한 발짝 더 나아가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여론도 검·경 책임론에 힘을 실었다. 여론조사 전문 기관 리얼미터의 국민 여론조사 결과, “국과수의 발표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이 57.7%로 절반을 넘었다. 검·경의 부실 수사가 국민적 불신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여당 내에서도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문책이 있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지만, 청와대는 결국 실무  라인에 대한 문책으로 현재까지의 모든 책임을 무마하는 모양새다. 경질론의 한가운데 있었던 이성한 청장은 7월24일 국회 안행위에서 “사퇴할 뜻이 없다”고 분명히 밝혔고, 황 장관도 법사위에서 “책임을 피할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진상을 밝히는 게 우선”이라며 사퇴 요구를 피해갔다. 야당의 파상 공세 속에서도 이들이 이처럼 꼿꼿할 수 있었던 것은 “더 이상 문책은 없다”는 청와대의 언질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꼬리 자르기’란 비판이 뒤따랐지만 정치권은 코앞으로 다가온 7·30 재·보궐 선거에 함몰됐고, 여당이 압승하면서 야당이 주장했던 검·경 수뇌부 책임론은 힘을 잃어가는 모양새다.

청와대가 선뜻 검·경 수뇌부를 경질할 수 없는 데는 다른 말 못할 사정도 있다. 박근혜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최근 2기 내각을 출범시켰다. 그러나 안대희·문창극 총리 후보자를 필두로 교육·문화부장관 후보자의 연이은 낙마로 내각에 구멍이 뚫린 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정기관의 중추인 검·경 수뇌부를 경질할 경우, 법무장관·검찰총장·경찰청장에 대한 인사 부담까지 짊어져야만 한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시작된 ‘인사 참사’로 집권 1년 5개월 내내 인사청문회 정국에 발목이 잡혀왔다. 올해마저도 인사 문제로 정국 주도권을 잃게 될 경우 ‘국가 개조’ ‘경제 활성화’ 등을 기치로 내건 2기 내각 역시 표류할 수밖에 없다.

사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지금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을 경질하는 것은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진태 검찰총장의 경우 취임한 지 겨우 8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더구나 김 총장은 혼외자 문제로 불명예 퇴진한 채동욱 전 총장의 후임이다. 채 전 총장은 작년 4월4일 취임 이후 163일 만에 사퇴했다. 이후 검찰총장 자리는 김 총장이 취임한 12월2일까지 무려 81일간 공석으로 남아 있어야만 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검찰 역사상 초유의 검란(檢亂) 사태로 2012년 11월 말 한상대 전 검찰총장이 물러난 후 채 전 총장이 취임하기까지 4개월 이상 검찰총장 대리 체제가 지속됐다. 결과적으로 박근혜정부 집권 1년 차였던 2013년의 경우 검찰 수장 자리가 거의 6개월간 비어 있었던 셈이다. 만약 김 총장이 물러날 경우, 검찰은 검란 때부터 이어온 악몽을 또 한 번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는 검찰 조직의 연속성을 뿌리부터 흔들 수 있다.

반면 이성한 경찰청장은 임기가 8개월여밖에 남지 않았다. 이 청장의 경우도 전임자인 김기용 청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김 전 청장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 5월 경찰청장에 임명됐다. 김 전 청장에 대해서는 재임 기간 동안 무난하게 조직을 이끌어왔다는 평가와 함께 박근혜정부에서도 유임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더구나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찰청장의 2년 임기를 보장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김 전 청장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연루된 별장 성접대 의혹 사건의 여파로 임기 1년도 채우지 못하고 전격 경질됐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이 청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공약을 다시 한 번 어겨가며 경질 카드를 빼드는 데 부담을 느낄 수 있다.

경질설이 돌았던 이성한 경찰청장. ⓒ 시사저널 임준선
집권 후반기 위해 히든카드 아껴두기도

역대 정부를 보면 정권 말기 마지막 검찰총장과 경찰청장에 가장 많은 신경을 쓴 것을 알 수 있다. 정권 교체기에 가장 아껴둔, 믿을 만한 인사로 ‘히든카드’를 빼내든다는 말이다.

이전 정권인 이명박(MB) 정부의 경우, 마지막 경찰청장에 MB의 최측근인 이강덕 당시 서울경찰청장을 앉히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조현오 전 청장은 이 전 서울청장을 배려한 ‘징검다리 청장’이라는 얘기까지 돌 정도였다. 검란 파동으로 비록 조기에 물러났지만, 임기 말 임명된 한상대 전 검찰총장도 MB의 고려대 후배로 MB 정권이 공을 들인 인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자신의 임기 마지막 4·5년 차를 사시 동기(17회)인 정상명 검찰총장과 함께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정권 말 히든카드를 위해 현 수뇌부를 유예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김진태 총장의 임기는 내년 12월까지고, 이성한 청장의 경우 내년 3월까지다. 둘 모두 임기를 채울 경우, 차기 검·경 수뇌부가 사실상 박근혜정부의 집권 후반기를 책임지게 된다.

검·경 수뇌부 경질론이 한창일 당시, 검·경 안팎에서는 차기 수장에 대한 하마평이 무성했다. 그중 가장 유력한 인물로 검찰에서는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이, 경찰에서는 강신명 서울지방경찰청장이 거론됐다. 김 지검장은 대구 출신으로, 수원지검장에 재직할 당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을 맡았다. 이 사건은 국정원 대선 개입 논란으로 정권에 대한 비난 여론이 쏟아지던 당시 박근혜정부에 ‘단비’가 됐던 사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김 지검장이 박 대통령의 ‘수첩’에 이름을 올렸다는 얘기가 무성했다. 김 지검장은 지난해 12월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 검찰 ‘넘버 2’인 서울중앙지검장에 임명됐다.

김수남 서울중앙지검장, 강신명 서울지방경찰청장 ⓒ 연합뉴스
강신명 서울청장은 경남 합천 출신으로, 박근혜정부 출범 후 청와대 사회안전비서관으로 재직한 바 있다. 진보당은 강 청장 임명 당시 “1991년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개편된 이래 청와대 비서관에서 서울지방청장으로 승진한 경우는 단 두 번에 불과하다. (강 청장 임명으로) 경찰이 ‘청와대의 시녀’가 되지 않겠느냐는 세간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말 잘 듣는 검·경 수뇌부, 경질할 이유 없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민주주의법학연구회(민주법연), 참여연대 등은 지난 6월 초 대검찰청 앞에서 ‘권력 앞에서 힘 한번 쓰지 않는 정치검찰을 규탄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김진태호(號)가 정치검찰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진태 검찰총장 취임 이후 검찰이 수사한 채동욱 전 검찰 총장 불법 사찰,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 조작 사건 등에는 ‘봐주기 수사’ 의혹이 꼬리를 물었다. 모두 수사 결과에 따라서는 현 정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건들이다.

반면 검찰은 청와대가 추진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는 전력투구하고 있다. 검찰은 박근혜정부가 강조한 4대악(성폭력, 학교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척결을 위해 형사부 기능을 대폭 강화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지난 2월,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조직폭력배 척결에 나서기도 했다. 그나마 조폭 수사에 대한 성과가 나오기도 전에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에 전력할 수밖에 없었다. 유 전 회장 일가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 역시 박 대통령의 뜻을 고스란히 반영한 것이다.

김 총장에 대한 평가는 전임자였던 채 전 총장과 비교되지 않을 수 없다. 채 전 총장의 경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 원전 비리 수사, CJ 수사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처리했다. 특히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해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기소 방침을 놓고 청와대와 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성한 경찰청장의 경찰도 검찰과 다르지 않다. 경찰의 오래된 숙원은 수사권 독립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 이명박 정부 말기부터 경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조현오 전 청장 시절(2010년 8월~2012년 4월)에는 경찰의 수사력을 증명하기 위해 권력형 비리를 쫓는 범죄정보과를 신설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역시 후보 시절 “경찰 수사의 독립성을 인정하는 방식의 수사권 분점을 통한 (수사와 기소의) 합리적 배분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대통령직인수위의 ‘공약 이행 로드맵 및 입법 추진 계획’을 보면, 애초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구체적 이행 계획이 전무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시사저널 2013년 5월8일자(1229호) ‘경찰 수사권 독립은 애당초 없었다’ 기사 참조). 그럼에도 이 청장 취임 후 공약을 이행하지 않는 박근혜정부에 대한 볼멘소리도, 수사권 독립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거의 들을 수 없다. 범죄정보과 역시 유명무실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형 비리를 쫓는 대신 4대악 척결에 ‘올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현재 검·경은 VIP(박근혜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와대로서는 검·경 수뇌부를 바꿀 필요가 전혀 없는 것이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수뇌부가 올랐을 때 (청와대가) 얼마나 고생하는지는 채 전 총장을 통해 충분히 배우지 않았겠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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