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개방, 피하는 것만이 능사 아니다”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8.05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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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 이상 고관세율 유지가 관건…쌀 관세화 관련 10문10답

고(故) 박완서 소설가는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에서 농사를 가리켜 땅에 대한 최고의 경배라고 표현했다. 땅에 대한 경배가 농사라면 그중 최고의 경배는 쌀농사가 아닐까. 오죽하면 ‘八 + 八’ 로 구성된 쌀 미(米)자를 예로 들어 쌀 한 톨은 88번의 농부 손길을 거쳐야 나온다는 얘기가 전해질까. 그런 쌀농사가 최근 위기에 처했다. 정부가 지난 7월18일 쌀농사를 2015년 1월1일부터 관세화한다고 발표했다. 시대의 흐름상 쌀 관세화가 이제 불가피하다는 전문가들의 의견도 많다. 이웃나라 일본과 타이완의 예를 들어 쌀시장을 개방하지 않는 게 오히려 더 큰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당장 농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쌀 관세화와 관련된 핵심 쟁점 10가지를 짚어봤다.

농민 70% 이상, 쌀 관세화의 불가피성 이해

1. 쌀 관세화가 국내 쌀시장 전면 개방을 의미하나?

엄밀히 말하면 그렇다. 쌀 관세화란 외국 쌀을 수입하되 관세를 물린다는 뜻이다. 결국 누구나 관세만 물면 외국산 쌀을 국내로 들여올 수 있어 한국 쌀시장은 외국에 전면 개방되게 된다. 지금까지는 정부 외에는 쌀을 수입할 수 없었다. 199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결과 한국은 쌀시장 개방을 10년간 미뤘는데 그 조건으로 매년 외국 쌀을 5%라는 낮은 관세(TRQ·저율할당관세)로 수입해야 했다. 쌀 관세화가 되면 이 5% 저율 관세로 수입해야 하는 의무 수입 물량 외에 들어오는 수입 쌀은 관세를 부과받게 된다. 결국 핵심은 관세율이다. 수입 쌀에 부과되는 관세율이 높으면 수입 쌀이 비싸져 국내 농가를 보호할 수 있다. 반면 관세율이 낮으면 국산 쌀보다 싼 수입 쌀이 들어와 국내 농가가 큰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7월25일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남도연맹 소속 농민들이 정부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 앞에서 정부의 쌀 관세화 선언을 반대하며 정문을 막아선 경찰을 향해 쌀을 뿌리고 있다. ⓒ 연합뉴스

2. 쌀 관세화를 꼭 해야 하나? 거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반드시 쌀 관세화를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최근 필리핀이 그랬다. 필리핀은 2017년 6월까지 관세화를 하지 않기로 WTO(세계무역기구)와 협상했다. 하지만 그 대가가 컸다. 매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는 쌀이 두 배 이상(35만톤→80만5000톤) 늘어났다. 의무 수입 물량에 부과된 관세율도 40%에서 35%로 낮췄다. 관세가 낮아지면 수입 쌀 가격이 낮아져 수입 쌀의 가격 경쟁력은 높아진다. 그 밖에도 외신 보도를 보면 육류, 검역 조건 등에서 상당한 양보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필리핀이 선택한 안은 ‘웨이버’(Waiver·일시 의무면제)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일정 기간 동안만 규정 준수 의무를 면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이다. 문제는 웨이버를 신청한 국가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위해 필리핀처럼 큰 대가를 치러야 할 공산이 크다는 점이다. 만약 우리나라가 웨이버를 선택할 경우, 10년간 의무 수입 물량을 최소 1.5~2배로 늘려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4). 필리핀의 경우를 대입한다면, 올 의무 수입 물량인 40만8700톤은 내년부터 당장 80만톤으로 늘어난다.

이미 한국에 들어오는 의무 수입 물량은 전체 국내 소비량의 약 9%로 거의 경기도 쌀 생산량에 육박한다. 여기에 국내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현재 우리나라 쌀은 남아돈다. 현재 쌀 재고량은 80만3000톤(2013년)으로 보관비용으로만 3000억원대 예산이 든다.

의무 수입 물량이 늘어나면 그만큼 쌀 공급량이 많아져 국내 쌀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쌀농사를 포기하는 농가도 늘어날 것이다. 결국 웨이버든, 관세화를 한 차례 연장하든, 쌀시장 개방을 피하기 위해 의무 수입 물량을 더 늘리는 것은 국내 농가에 유리하지 않다. 한국보다 앞서서 타이완과 일본이 쌀 관세화를 선언하며 쌀시장을 개방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실제로 농민의 70% 이상이 쌀 관세화의 불가피성을 이해한 것으로 조사됐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3).


3. 쌀 관세화가 될 경우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할 쌀은 없나?

그렇지 않다. 관세화와 별개로 한국은 매년 40만8700톤의 쌀을 고정적으로 수입해야만 한다. 한번 정해진 의무 수입 물량은 관세화를 실시하더라도 항구적인 의무 사항으로 설정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1994년 UR 협정 이후 쌀 관세화를 10년 단위로 두 번 연장했는데, 그 조건으로 의무 수입량이 현재 40만8700톤까지 늘어났다.

정부, 개방 미루기만 하고 준비 소홀히 해

4. 쌀 관세화가 두 번 미뤄진 20년 동안
정부는 쌀시장 개방을 위해 어떤 준비를 해왔나?


정부는 UR 협정 이후 12년간 57조원의 재원을 투입했다. 이 중 절반 정도인 26조2700억원을 경지 정리, 수리시설 확충·보수 등 농업 생산 기반시설에 투자했다. 또 농가 소득 안정을 위해 목표가격제를 도입했다. 목표가격제란 정부가 정한 목표가격 이하로 쌀값이 떨어지면 쌀 가격의 85%를 정부가 농가에 보전해주는 제도다. 현재 목표가격은 쌀 한 가마니(80kg)를 기준으로 18만8000원이다.

 

5. 정부 대책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이 반발하는 이유는 뭔가?


그동안 시행된 정부 정책이 일관적이지 않고,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농가에 투입한 예산의 절반 이상을 생산성이 없는 농업 생산 기반 사업에 투자해 농가 부채가 늘어나는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목표가격제는 늘어나는 생산비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설정돼 농가의 실질 소득을 보장해주지 못한다. 현재 쌀 소매가격이 17만원대인데 이는 목표가격인 18만8000원보다 낮아 목표가격제로 소득을 보전받는 농가는 거의 없다. 최흥석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쌀시장 개방의 딜레마:시기별 정부대응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한국 정부의 쌀시장 개방 정책을 ‘지연’이라고 평했다. 단순히 미루기만 했다는 얘기다. 실질적으로 준비된 게 없이 내년부터 당장 쌀 관세화를 하겠다고 하니 농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6. 쌀 관세화가 되면 수입 쌀이 국내에 마구잡이로 밀려들어오게 되나?
그러면 소비자가 국산보다 싼 가격에 수입 쌀을 먹을 수 있나?


지금으로선 외국 쌀의 수입 물량과 가격을 예측할 수 없다. 정부가 수입 쌀에 부과할 관세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 발표대로 300~500% 이상의 고율 관세가 유지된다면 수입 쌀이 마구잡이로 들어올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본다. 농업 민간 싱크탱크인 ‘GS&J인스티튜트’는 최근 예상 수입 관세율을 560%라고 발표했다.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은 “향후 환율과 국제 쌀 가격 등이 지금과 같다면 560%라는 관세율이 나오고, 그럴 경우 미국·중국 쌀 가격은  한 가마니(80kg)에 약 48만~50만원 선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농촌경제연구원 김태훈 박사는 “현재와 같은 외부 환경 조건에서 관세가 만약 400%대라고 한다면 수입 쌀 가격은 약 40만원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현재 국산 쌀보다 2~3배가량 높은 것이다. 이 경우 국내에서 수입 쌀의 가격 경쟁력은 떨어져 대량의 쌀이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은 낮다.

7월23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에서 농민들이 정부의 쌀 개방 정책에 항의하며 트랙터를 이용해 약 0.2ha의 논을 갈아엎고 있다. ⓒ 연합뉴스
“법적으로 쌀 관세율 명문화 강제성 둬야”

7. 정부 발표대로 수입 쌀에 높은 관세율이 유지된다면
농가가 받을 타격은 크지 않을 수 있나?


결국 최소 400% 이상의 높은 관세율만 유지한다면 향후 5~10년 내에 농가가 받을 타격은 크지 않다. 일본과 타이완이 그랬다. 일본과 타이완은 고관세율을 유지한 덕에 의무 수입량을 초과해 수입 쌀이 들어온 경우가 거의 없다. 소비자 10명 중 4명 이상이 국산 쌀이 수입 쌀보다 품질 경쟁력이 높다고 평가한 점도 한국 농가에 이점이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13년 국민의식조사).

8. 300% 이상의 고율 관세 유지가 가능한가?
미국이나 중국이 쌀 관세를 낮추라는 압력을 가할 수 있지 않을까?


관건은 고율 관세를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다. 그렇다고 정부를 마냥 신뢰하긴 어렵다. 쌀시장을 외국에 개방할 경우 농업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가장 위협적이다. 그런데 이 두 나라는 한국의 가장 큰 교역 국가다. 쌀 관세율을 낮추지 않는다면 충분히 한국 주요 수출품인 자동차나 휴대전화 등으로 무역 보복을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미국과 중국에 무조건 높은 관세를 요구하기가 현실적으로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장경호 한국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이 “법적으로 쌀 관세율을 명문화하는 식으로 강제성을 둬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9. 만약 관세율이 낮아 싼값으로 쌀이 수입되면
국내 농가를 보호할 방법은 있나?


특별긴급관세(SSG)와 목표가격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있다. 특별긴급관세는 관세화 이후 대량의 수입 쌀이 유입될 경우, 이미 정한 관세율의 3분의 1만큼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하지만 특별긴급관세가 실질적으로 발동될 가능성은 낮다. 예컨대 2000년 중국산 마늘이 국내에 급증하자 정부는 특별긴급관세를 발동했다. 그러나 중국이 한국산 휴대용 무선전화기와 폴리에틸렌에 대해 ‘잠정 수입 금지 조치’를 취하자 발동을 중단했다. 게다가 특별긴급관세는 사후약방문 격이다. 수입 쌀이 대량으로 들어와 국내 쌀값이 폭락한 후에 특별긴급관세를 발동해봤자 농가가 입은 타격은 보전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목표가격을 인상하기도 어렵다. 국내 쌀 소비가 줄어드는 만큼 산업적 측면에서 국내 쌀 공급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목표가격을 올리면 현재 쌀 생산 농사의 감소 추이가 둔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10. 경제성 논리를 떠나 우리 쌀은 우리 손으로 지어야 한다는 국민 정서는?

한국의 식량 자급률이 떨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곡물 자급률은 1980년대 초반 50% 안팎에서 30여 년 만에  23.1%로 떨어졌다. 세계 5대 곡물회사가 가격 결정권을 쥐게 된다면 쌀시장 개방은 삶의 기반을 외국에 의존하게 만들 수 있다. 반면 관세화 후에도 식량 주권은 위협받지 않을 수 있다. 위급한 상황이 닥쳐 쌀이 부족하게 될 경우, 수입 쌀로 공급이 가능해 쌀 수급량에는 큰 문제가 없게 된다. 외려 국내 쌀 공급이 과잉된 현재처럼 농가 소득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쌀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져 식량안보가 더욱 흔들릴 공산도 크다.

 

 

도움말을 주신 분들 및 참고자료

이종혁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부장
손재범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사무총장
장경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부소장
김경규 농림축산식품부 식량정책관
이정환 GS&J인스티튜트 이사장
김태훈 농촌경제연구원 박사

 

GS&J인스티튜트 시선집중 제176호·181-2호(2014)
<쌀시장 개방의 딜레마: 시기별 정부 대응을 중심으로> (한국행정논집 제23권, 최흥석, 김은미, 2011 가을)
<일본·대만의  TRQ 초과 수입 실태와 시사점>(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동규, 송준호 2013.7)
<쌀 재협상 3년의 평가 및 관세화 대비 보안방안에 관한 연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2009)
<농업농촌에 관한 2013년 국민의식 조사결과>(한국농촌경제연구원)
<관세와 유예종료 설명자료>(농림축산식품부, 2014.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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