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로비 ‘사고 친’ 정치인 더 있다
  • 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08.14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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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사정 바람에 여의도 뒤숭숭…여권 실세 이름 나돌아

‘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관피아 척결’로 시작된 검찰 수사가 여의도 정치권을 덮치며 정치권 사정 정국으로 번졌다. 검찰의 ‘닭 잡는 칼’이 ‘소 잡는 칼’로 급선회한 변곡점은 7·30 재보선이다. 재보선 후 갑자기 속도를 내는 검찰 수사에 대해 일각에선 의혹 어린 시선을 보내지만 검찰이 이미 예정된 수순을 밟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시사저널은 약 한 달 전 “7·30 재보선이 끝난 후 철피아와 관련해 정치권 유력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것”이란 내용을 보도했다(1291호 ‘철피아 게이트, 8월 정치권 덮친다’ 기사 참조). 이런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야당을 향한 입법 로비 의혹 사건까지 터지면서 검찰의 사정 칼바람에 여의도 정가가 얼어붙고 있다.

지난 5월 김진태 검찰총장은 ‘관피아 척결’ 전국검사장회의에서 강력한 수사 의지를 내비쳤다. ⓒ 뉴시스
여당 실세 광역단체장 이름도 거론

검찰은 재보선 전부터 정치권 사정을 차곡차곡 준비해왔다. 수사 시점을 선거 이후로 잡은 것은 ‘선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이번 정치권 수사에서 여당 의원 소환에 이어 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도 함께 진행하는 것이 일종의 ‘균형 맞추기’란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엔 이러한 검찰 내 분위기도 배경이 된다. 입법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야당 중진 의원들에 대한 소환 통보와 관련해 야당 일각에선 “조현룡·박상은 의원 수사에 대한 균형 맞추기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정치권 사정은 크게 ‘철피아’(철도 비리)와 ‘해피아’(해양항만 비리)를 중심으로 한 ‘관(官)피아’와 ‘입법 로비’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다. 철피아와 관련해서는 조현룡 의원 수사가 가장 빠르게 진행 중이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조 의원이 2008년 8월부터 3년간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때와 2012년 4월 이후 국회 국토교통위원으로 재직하면서 철도 부품업체 삼표이앤씨로부터 억대 금품을 받은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흘러들어온 돈이 여권 유력 인사에게 상납됐을 가능성과 경선 과정에서 쓰였을 가능성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에서는 조 의원의 선거 자금과 관련해 이번 수사 건과 별개로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한다. 국회 및 철도시설공단 등 복수의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그가 공단 이사장으로 재직할 당시 공단 내 최측근 인사 ㄱ씨가 철도 관련 업체를 돌며 총선 자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한 공단 인사는 기자가 ㄱ씨 이름을 대자마자 바로 그가 조 의원의 선거 자금을 만들었다는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나아가 당시 이명박(MB) 정권 실세와 조 의원이 가까웠던 사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조현룡 당시 이사장의 총선 출마와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말이 많았다. 그가 당시 MB 정권 실세 인사와 고등학교 동기동창이라는 점도 그중 하나였다. 그가 출마한 지역구는 3개 지역이 합쳐진 곳이라 선거 비용이 만만찮다고 들었다. 조 의원이 이사장을 지내던 시절 공단 내 측근이 3명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인 ㄱ씨가 업체를 돌며 자금을 마련했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본지는 해당 의혹에 대해 조 의원 측에 답변을 요구했으나 답을 들을 수 없었다.

현재까지 철피아 수사는 조 의원에게 집중되고 있지만 검찰은 충북 출신의 한 국회의원 역시 로비를 받은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여의도 정가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여러 이름이 나돌고 있다. 그중 대표적 인물은 여당 출신의 한 광역단체장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내부에서는 현 정권 실세인 그가 AVT사로부터 9차례 이상 대가성 로비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철도시설공단 내부 관계자는 “그는 공단의 한 고위 간부와 형제처럼 지낼 정도였으며 사적으로 수시로 연락하는 사이”라고 밝혔다.

철도 납품업체로부터 억대 금품 수수 혐의를 받는 조현룡 새누리당 의원이 8월6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입법 로비에서 자유로운 의원 아무도 없어”

특수1부에서 철피아 수사가 이뤄지고 있는 사이 특수2부에서는 입법 로비에 대한 수사가 한창이다. 철피아 수사와 달리 입법 로비와 관련해서는 특히 야권 의원들이 집중적으로 거론된다. 입법 로비는 정치권의 모든 비리를 하나로 묶어준다는 점에서 검찰 측이 특히 신경을 쓰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의 한 특수통 관계자는 “김형식 의원 건, 박상은 의원 건 등 정치권 비리는 입법 로비로 귀결된다. 뿐만 아니라 관련 법안들이 있으니 증거도 명확하고 수사도 쉽다”며 향후 입법 로비 수사가 더욱 크게 번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과거 대표적인 입법 로비 사건으로는 2010년 논란이 됐던 청목회 사건이 꼽힌다. 전국청원경찰 친목 모임인 청목회 회원들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에게 10만원 단위 소액으로 쪼개 후원금을 냈고, 이후 청원경찰법 개정안이 발의된 후 국회를 통과해 문제가 됐다. 이 과정에서 여야 의원 6명이 기소돼 벌금형 및 선고유예를 받았다.

현직 의원이라면 누구도 입법 로비 의혹에서 100%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인지 여의도는 수사가 진행되면서 바짝 긴장한 모습이다. 특정 위원회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관피아 논란과 달리 누가 그 대상이 될지 예측하기조차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회 법사위 소속 한 입법 전문 인사는 “입법 로비 수사라는 게 공식 후원금 말고 비공식적인 접촉을 다 잡겠다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입법 로비와 관련해 주목받는 이들은 일명 ‘오봉회’라고 불리는 사조직이다. 오봉회는 새정치연합 신계륜·김재윤 의원, 전현희 전 의원과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의 김민성 이사장 및 장 아무개 겸임교수 등이 만든 사적 모임이다. 검찰은 김 이사장이 이 모임을 이용해 의원들과 친분을 쌓고 교명 변경을 도와달라며 로비를 벌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억원대 뭉칫돈’으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새누리당 박상은 의원 역시 해양항만 분야의 입법 로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박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한국선주협회의 로비를 받고 협회 측에 유리한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려 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20년으로 묶여 있던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연장하는 내용으로 법을 개정하는 데 박 의원이 적극적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박 의원은 8월7일 검찰에 출두해 19시간 동안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여야 모두 서초동발 사정 태풍과 관련해  불편한 기색이 역력하다. 검찰 내부 사정에 밝은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유병언 수사 등으로 깎인 체면을 만회하기 위해 정치권을 노리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입법 로비가 불법과 합법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정치권에서 불만을 갖는 부분이다. 심지어 새누리당 소속인 김성태 의원도 “마구잡이식 로비 의혹 제기는 정당한 입법활동을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시민단체에서 오랜 기간 활동하며 정치권과 접촉해온 한 활동가 역시 “이익단체들의 입법활동 자체를 비리라고 한다면 이익단체들 다 없어지고 국회의원들이 다 알아서 법을 만들어야 되는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항변했다. 하지만 국민 편의와 관계없이 로비력 강한 단체 위주로 법이 개정되는 현 풍토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결국 입법 로비 관련 논란은 검찰이 얼마나 공정하고 현실성 있는 기준으로 수사를 하느냐가 판가름할 것으로 보인다.

 

X파일엔 대상자 수두룩… 어떻게 ‘요리’하지? 


 “심산유곡에서 수도하는 승려도 엮으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최소한 세 가지는 위반하게 돼 있으니까. 산림법, 예비군법이나 민방위법, 주민등록법은 기본이다. 하물며 일반인들이야 어떻겠는가. 걸면 다 걸린다.” 나중에 3부 요인 중 한 명이 됐던 검사 출신 정치인의 말이다. 1980년대 학원안정법 사태 당시 비밀 당·정 고위 회의에서 강경 주장을 폈던 그가 필자에게 학원안정법 추진을 낙관하면서 덧붙인 얘기다. 하기야 유사한 객담은 사정·공안의 핵심 인사들로부터 숱하게 들어온 것이고, 실제 우리 정치사는 이를 방증한다. 한마디로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칼자루를 잡은 집권자가 작심하고 잡아들이려 들면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아도 권력 주변에는 돈이 꼬인다. 이것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사회 현상이다. 가만히 있어도 위태위태한 마당에 정치인 자신과 부인·보좌관 등 측근이 이권에 눈길을 주면 사태는 심각해진다.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아슬아슬한 존재라는 금언 아닌 금언도 그래서 성립한다. 총리·장관 후보자들이 연이어 국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낙마할 당시, 같은 잣대를 들이댄다면 의원 300명 중 배겨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느냐는 반문에 거의가 침묵했던 게 우연이 아니다. ‘여자’는 차치하고, ‘검은돈’에서 자유로운 정치인이 과연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말이 정치 헌금이지, 대가성 재물에 발목 잡힌 정치인 수를 헤아리는 것 자체가 부질없는 노릇이다.

 칼을 쥔 측이 정치권을 ‘요리’할 바탕은 이렇게 생겨난다. 자의적 권력 행사에 대한 비판이 나오지만 비리 내역이 까발려지면 이내 사그라진다. 요리 대상은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고 권력에 도전하는, 정부 시책에 매사 시비를 걸고 나서는 상대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 물론 손을 보는 대상에 야당 인사가 많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직접 사법 철퇴를 맞고 정치권에서 퇴출된 인사는 빙산의 일각이다. “본인은 구린 짓 다 하고…”라며 ‘X파일’을 들이대면 찍소리조차 못 내고 꼬리를 내린 정치인이 부지기수다. 최근 30여 년 사이에 이렇게 사라진 정치인을 일일이 거명할 필요조차 없다. 

 “여기 20억은? 양재동 집은? 집안 거덜 나도 된다는 말이지요.” S국정원장이 여당 J씨에게 한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S원장은 청와대가 난색을 보이는데도 보궐선거 출마를 강행하려는 J씨를 주저앉히기 위해 만났고, 결국 청와대의 의지는 관철됐다.

 “2억은 그렇다 치고, 이 7억은 뭐요?  소리도 좋습디다.” 야당 K의원에게 로비 내역과 함께 내연녀와의 밀회 현장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이댄 경우다. 그 의원은 속이 쓰렸지만 검찰에 불려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며 조용히 뒷전으로 물러났다. 오래전 일을 예시한 소이는 ‘교통정리’ ‘길들이기’ 매뉴얼이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아서다.

“기획은 없다.” 야당 의원 수사 때마다 나오는 항변에 청와대에서 하는 소리다. 하지만 말짱 거짓일 게다. 생각이 제각기고, 이해가 얽히고설킨 수천만 국민이 어우러진 거대 조직을 경영하면서 기획이 없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기획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무책임·무능 그 자체다. 정치적 논란을 의식해 정치인의 비위를 외면하는 것은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다. 문제는 고의성, 좀 더 정확하게는 ‘악의(惡意)’ 여부다. 애당초 특정인과 특정 조직을 ‘잡기 위해’ 없는 사건을 조작하거나 실제 이상으로 확대해선 안 된다. 유사한 죄를 저지른 내 식구 허물은 눈감아주고 상대에게만 가혹하다면 표적 수사라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1980년대 이후 역대 정권의 사정(司正)에는 일정 패턴이 있었다. 집권 첫해 대대적 사정을 통해 정치권의 ‘군기’를 잡았고, 국민들은 여기에 환호하며 지지를 보냈다. 청와대는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금감원·공정위 등이 새 정부를 위해 맞춤형으로 정리한 자료를 십분 활용했다. 이후는 시국 상황에 따라 강도·수위를 조절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대개는 권력형 비리 파문으로 최고 권력 자체가 더 멍들면서 무위에 그쳤지만 어쨌든 기본 양태는 그랬다. 그런데 MB 정부는 이런 패턴마저 따르지 못했다. 집권 초기의 촛불시위 사태로 실기(失機)했기 때문이다. 시퍼런 서슬을 안팎에 과시할 호기를 놓친 MB 정부가 비틀거린 것은 당연했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임기 초반의 일대 사정은 없었다. 인사 파동이 겹치면서 MB 때처럼 실기했다. 호재여야 할 대규모 정부 인사가 악재로 둔갑하면서 사정 타이밍을 놓쳤다. 5년 단임 정부로선 대단한 패착이다. 7·30 재보선의 완승으로 세월호 참사 정국에서 헤어날 계기를 잡은 여권은 본격적인 민생·경제 회복에 나설 참이다. 동시에 확실한 정국 헤게모니 담보를 위한 사정 드라이브도 진행 중이다.    김현일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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