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간부들이 이 병장을 악마로 만들었다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4.08.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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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행 가담한 공범 유 하사…대대장 등 중간 간부는 직무유기

엽기적이고 조직적인 군대 내 가혹행위로 숨진 28사단 포병연대 윤 일병 사망 사건의 주범으로 의무반의 최고참인 이 아무개 병장(25)이 지목되고 있다. 이 병장은 동료들과 함께 윤 일병에게 가했던 엽기적이고 도를 넘어선 가혹행위 때문에 가해자를 넘어 ‘악마’로까지 지칭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군이라는 특수 조직 속에서 자행된 점을 감안할 때, 이 병장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사태의 본질을 흐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병들에 대한 관리·감독에 실패하고 오히려 군내 가혹행위를 방조한 상관과 군 내부의 시스템이 윤 일병을 죽음으로 내몬 또 다른 주범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군검찰 수사보고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군과 같은 폐쇄적인 조직에서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괴물의 탄생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을 알 수 있다.

의무반을 지옥으로 만든 유 하사

“우리 의무병은 정(情)이 있고 잘 뭉쳐야 한다.”

“선·후임 간 구타가 있어도 참견하지 않겠다. 구타는 있을 수도 있다.”

“윤 일병을 때려서라도 군기를 잡아라.”

8월5일 육군 28사단 보통군사법원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 주범 이 아무개 병장(행렬 선두)이 호송차로 이동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군검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숨진 윤 일병의 28사단 포병연대 본부포대 유 아무개 하사(24)는 피해자인 윤 아무개 일병(20)이 의무병 배치를 받은 직후, 선임병들을 모아놓고 위와 같이 말했다. 유 하사는 의무반의 의무지원관으로서 부하 병사의 병영생활 지도와 구타·폭언 등 가혹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도·감독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특히 의무반은 소속 본부와 200m가량 떨어져 있고 지난해까지 점호와 순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사각지대’였다는 점을 고려할 때, 유 하사의 역할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러나 유 하사는 다른 5명의 선임병들과 함께 폭력행위등처벌에관한법률위반(집단·흉기 폭행), 폭행, 폭행 방조, 직무유기 등으로 기소됐다.

의무지원관은 일반 군으로 치면 행정보급관처럼 일반 병사와 가장 빈번하게 접촉할 수 있는 간부다. 유 하사가 만약 윤 일병에게 지속적으로 가해진 폭력을 막고자 하는 최소한의 의지를 가졌다면, 죽음이라는 최악의 상황만은 피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유 하사는 폭행 방조, 직무유기는 물론 적극적으로 폭행에 가담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군검찰 초기 수사보고서에서 인정됐던 폭행 교사 혐의는 불기소처분이 됐다.

군검찰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유 하사가 윤 일병에게 가해진 폭행을 처음으로 인지한 것은 3월17일이다. 이날 윤 일병이 오른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는 모습을 목격했고, 다음 날 피의자인 지 아무개 상병(21)으로부터 이 사건의 주범 이 아무개 병장(25)이 윤 일병을 구타한 사실을 전해 들었지만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심지어 윤 일병이 3월28일 열린 부대 개방 행사에서 부모 면회를 신청했으나, 폭행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면회 신청을 묵살하기까지 했다.

유 하사의 방조 속에 가혹행위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다. 3월31일 선임병들은 윤 일병을 재우지 않고 밤새도록 경례·제식동작·도수체조 등을 시켰다. 심지어 유 하사 앞에서 윤 일병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유 하사는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대대장, 관계 참모에게 보고하는 등 조치를 전혀 취하지 않았다.

윤 일병에 대한 폭력이 일상화되면서 유 하사도 윤 일병에게 손을 대기 시작했다. 유 하사는 윤 일병의 행동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선임병들의 보고를 받고 윤 일병의 뺨을 때리는 것으로 폭행을 시작했다. 마침내 4월4일 밤에는 의무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전기스탠드로 방탄헬멧을 쓰고 있던 윤 일병의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이때 유 하사는 아무런 승인도 받지 않고 의무반 회식이라는 명목하에 페트병 소주가 포함된 영외 음식을 들여오던 중이었다.

유 하사가 윤 일병에게 가해진 폭력에 대해 입을 닫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한 달 이상 지속적으로 가해진 폭력을 아무도 몰랐다는 것은 선뜻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유 하사뿐 아니라 윤 일병이 속한 본부포대의 중간 간부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28사단 현장을 방문한 국회 국방위 소속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은 “1차적 책임은 본부포대 행정관과 매일 순찰을 다니게 돼 있는 주임원사에게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8월4일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국방부 브리핑룸에서 윤 일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분노 조절 못하는 이 병장 방치한 간부들

특히 윤 일병을 죽음으로 몰아간 주범인 이 병장의 경우 군 내부 검사에서 정신적 문제가 이미 지적되기도 했기 때문에 간부들의 세심한 관리·감독이 반드시 요구되는 상태였다. 군 인권센터가 공개한 이 병장의 적성적응도 검사표에 따르면 “스트레스 상황에서 화나 분노감을 조절하지 못하고, 공격적이거나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내적 우울감과 좌절감이 상승돼 있고, 군 생활에 대해서도 비관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나와 있다. 이어 “사소한 자극에 대해서도 불쑥 화를 표출하거나 폭발적인 행동을 할 수 있어 병사 자신이나 타인에게 해를 입힐 수 있는 충동적인 행동에 유의해야 한다”고 덧붙이고 있다. 이 병장 자신도 복무적합도 검사에서 “주위 사람들은 내가 군대에서 사고를 칠까 봐 걱정한다”며 “(학창 시절) 법적인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으며, 반이나 동아리에서 싸움을 자주 일으켰다”고 밝히기도 했다. 군 인권센터는 “이 병장의 기록을 공유하고 지휘·감독하는 대대장 등 지휘체계 선상에 있는 지휘관들에 대해 좀 더 면밀한 수사와 합당한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본부포대장 김 아무개 대위는 1차적인 지휘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을 해당 병사 및 의무지원관에게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동료 병사들의 무관심도 가혹행위의 일상화에 일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다. 의무반이 본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의무반을 드나드는 병사들이 윤 일병에 대한 구타 장면을 목격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윤 일병의 사망이 구타 때문이라는 것이 처음 알려진 것도 동료 병사의 보고 때문이었다. 같은 소속대의 보급병 김 아무개 상병이 평소 친분이 있던 피의자 지 상병으로부터 “윤 일병이 어리바리해서 군기를 잡을 목적으로 윤 일병의 입을 강제로 벌려 냉동식품을 먹이고, 돌아가면서 때리고, 토한 냉동식품을 강제로 핥게 했다”는 얘기를 들은 후 이를 포대장에게 보고한 것이다. 이 때문에  병사들 스스로가 동료를 생각하는 용기를 조금 일찍 가졌다면 윤 일병의 죽음을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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