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면세 담배 불법 유통 "'큰 업자'들이 컨테이너에 보관하다 남대문에 넘겨"
  • 김지영·조해수·엄민우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8.23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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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부대에서 소매상인까지 경로 추적

‘면세 담배’가 일반인들에게 음성적으로 불법 유통되고 있다는 소문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이쯤 되면 검찰이든 경찰이든 사정 당국이 대대적인 단속을 통해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웬일인지 소문은 무성한데 근절은 되지 않고 있다. 시사저널 특별취재팀이 입수한 여러 제보에 따르면, 오히려 그 단위와 방법은 더 커지고 교묘해지고 있다. 국내 뒷골목 시장에서 한두 보루가 몰래 거래되는 수준이 아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검찰 수사를 통해 대략 200여 만갑에 달하는 면세 담배가 유출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그 많은 면세 담배는 어떻게 유통되는 것일까. 시사저널은 시중에서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면세 담배의 불법 유통 경로를 역추적했다. 그 결과 면세 담배를 유출한 최종 공급자 중 한 곳이 미군기지 내 스낵바(PX)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면세 담배를 주로 피우고 있는 사람은 역시 노년층이었다. 한 제보자는 취재팀에 “노인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공원에 가면 아마 면세 담배를 쉽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울 종묘공원에서 삼삼오오 모인 노인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시중 가격보다 20% 이상 싸게 판매

8월21일 오전 10시30분쯤 서울 종묘공원.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빗속에도 노인들은 종묘공원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노인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취재진은 노인들과 이런저런 대화도 시도하고 때로는 실례를 무릅쓰고 담배를 청하기도 하면서 담뱃갑을 살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아예 “담배를 좀 싸게 구하고 싶은데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보았다. 한 노인이  “왜 담배 피우려고? 이거 펴!”라며 허리춤에 찬 손가방 지퍼를 열었다. 거기서 나온 답뱃갑은 KT&G 제품 ‘에쎄’였다. 그런데 그 옆면에 적힌 작은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DUTY FREE’. 면세용 담배였다.

건네주는 담배를 입에 물었다. 시중에서 파는 담배맛과 똑같았다. “이거 어디서 사셨어요?” 기자가 재차 묻자 그 노인의 얼굴에서 금세 강한 경계감이 드러났다. “그건 왜?” “시골에 계신 아버지 사다 드리려고요.” 진짜냐고 재차 묻는 노인의 말투에서 여전히 경계심이 느껴졌지만, 다소 젊어 보이는 기자의 외양에서 단속 나온 경찰은 아닐 것이라는 짐작을 한 듯 설명을 해줬다.

“난 또, 잡으려고 한 줄 알았네. 저기 신설동 풍물시장 알지? 한 보루에 2만원이면 살 수 있어. 난 20년째 이것만 피워. 한 번 가서 몇 보루씩 사다놓고 펴. 예전엔 여기서 까치 담배(한 개비씩 낱개로 파는 담배)로 살 수 있었는데 요샌 단속이 심해서 여기선 안 팔아. 옛날엔 여기서 (면세) 소주를 1000원에도 팔고 그랬는데 요샌 하도 단속이 심하니깐 다 없어졌어.”
한 보루에 2만원. 시중에서 판매되는 담배보다 20%나 싸다. 곧장 그 노인이 알려준 풍물시장으로 향했다. “나 같은 잡상인은 큰 업자 얼굴도 몰라”

불법 유통된 면세 담배를 구입할 수 있는 서울 풍물시장. © 시사저널 임준선

낮 12시30분쯤 풍물시장 앞. “진품명품! 골동품을 삽니다. 010-XXXX-XXXX.” 거센 빗속에서도 시장 앞에 선 트럭에서 골동품을 옮기느라 짐꾼들은 바삐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공원 벤치에 누워 자는 노숙인도 몇 명 보였다. 유행이 지난 듯한 옷, 총기류, 목걸이와 반지를 좀 더 싸게 사려고 흥정하는 아주머니와 상인들. 비가 오는데도 풍물시장은 활기를 띠고 있었다.

담배를 파는 표시가 있는 2층 가게로 갔다. 1.5평 정도 되는 작은 공간이었다. 매대 왼쪽에는 비타민과 여러 건강식품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 유리찬장이 보였다. 그곳에는 에쎄·레종·더원 등 국산 담배가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에쎄 하나 주세요.” 60대로 보이는 여성이 담배 진열장 위로 손을 뻗어 담배 한 갑을 줬다. “얼마예요?” “2500원.” 이상했다. 시중에서 파는 담배와 가격이 같았다. 담뱃갑을 살펴봤다. 일반 담배였다. 다시 공원으로 가서 노인들을 접촉하는 과정에서 “보루(10갑이 들어 있는 통) 단위로 구입해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잠시 후 다시 그 가게에 가서 “에쎄 한 보루 주세요”라고 하자, 가게 아주머니는 유리로 된 담배 진열장이 아닌 진열장 아래에 있는 나무로 된 수납장 문을 드르륵 열었다. 그곳에는 기자가 사려고 한 ‘에쎄’뿐 아니라 다른 국산 담배가 보루로 포장돼 쌓여 있었다. 아주머니는 에쎄 한 보루를 꺼내 까만 비닐봉투에 넣어주었다.

“얼마예요?” “2만원.” 종묘에서 만난 노인이 말한 것과 가격이 같았다. 검은 비닐봉투에 들어 있는 담배 보루를 뜯었다. ‘DUTY FREE’가 담뱃갑 옆면에 적혀 있었다. 면세 담배였다. 그 시장 안에서 면세 담배를 파는 곳은 이 한 곳만이 아니었다. 한 생활잡화 가게에 가서 이런저런 물건들을 구입하며 주인과 친해진 후 “국산 면세 담배를 사고 싶다”고 넌지시 말하자, 가게 주인은 “저쪽으로 가봐”라며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던 한 남성을 가리켰다.

그 가게에는 담배를 판다는 어떤 표시도 돼 있지 않았다. 그에게 “레종 담배 한 보루를 달라”고 하자 자연스레 선반 아래 어디선가에서 면세용 ‘레종’ 한 보루를 꺼내 검은색 비닐봉투에 담아줬다. 역시 가격은 2만원이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물건을 사왔던 것처럼 “요새 물건은 좀 잘 들어오느냐”고 묻자, 그는 최근 들어 ‘물건’을 구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단속이 심해지고 다들 잡혀갔다”고 설명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의 여파가 미친 듯했다.

60대 후반으로 보이는 이 남성은 이 시장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해왔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내놓은 상품은 비타민 제품 등이지만 면세 담배도 몰래 취급한 지 꽤 오래됐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특히 미군부대 등에서 빠져나온 담배의 유통 경로를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어 담배 트럭 3대가 미군부대로 들어가면 그중 1~2대는 그냥 밖으로 나오는 거여. 그렇게 나온 담배들은 ‘큰 업자’들이 컨테이너 등에 보관하다가 남대문 등에 도매로 넘겨.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이 남대문 가서 조금씩 사와서 파는 거지. 남대문에서 전국으로 나가기도 하고…(중략)…요즘엔 단속 때문에 큰 업자들도 바짝 엎드려 있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들여오는 가격도 비싸지고 해서 나도 예전만큼은 싸게 못 팔아.”

그는 ‘레종’ 담배의 경우 1만9000원에 들여와 2만원에 판매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큰 업자에 대해서 묻자 “그 사람들은 컨테이너로 물건을 취급하는 사람들인데 나 같은 잡상인을 상대하겠느냐”고 말했다. 풍물시장 상인들은 말 그대로 면세 담배 유통업자 중 가장 작은 규모로 판매하는 상인이었다. 대규모 구입보다는 보루 단위로 면세 담배를 죽 피워왔던 노인들을 상대로 판매하는 수준이었다. 좀 더 큰 규모의 판매처는 남대문시장이라는 얘기가 많이 들렸다. 취재진은 이번엔 남대문시장으로 향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서울 남대문 수입상가. 이곳 업자를 통하면 면세 담배를 대량으로 살 수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한 번에 5박스 이상 대량 구매도 가능

8월21일 오후 4시30분쯤 남대문시장. “언니 몇 개 팔았어? 난 오늘 20만원도 못 팔았어. 비가 와서.” 비 때문인지 매상이 떨어졌다는 상인들의 볼멘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면세 담배를 취급하는지 구체적인 사전 정보 없이 무작정 남대문시장에 왔지만, 면세 담배를 파는 곳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장 내 여러 업소에 들러 면세 담배를 대량으로 파는 곳을 묻자 대부분은 “모른다”며 경계하는 듯했지만, 몇몇 업소에서 장소를 알려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한 상인의 설명대로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취재진은 한 수입상가 내에 있는 상점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담배를 파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무로 만든 매대는 길이가 1m쯤 됐다. 화장실 옆 벽면을 활용해 파는 만큼 매대는 일반 책상 크기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상인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에게 수입 담배를 하얀색 봉투에 담아 건네주고 있었다.

“에쎄 한 보루 주세요.” 기자는 풍물시장에서처럼 똑같이 물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그런 거 없어”였다. “더원이나 레종도 없어요?” “우리는 국산 담배 취급 안 해.” 상인은 마치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럼 말보로나 한 보루 주세요.” 상인은 매대 아래 나무로 만든 서랍장 문을 열었다.

서랍장 안을 보자 국산 담배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짓이었다. 서랍장 안에 쌓인 수입 담배 틈 사이로 KT&G의 에쎄가 눈에 띄었다. “있으면서 왜 없다고 하세요? 그거 주세요!”라고 기자가 말하자 상인은 “2만원만 줘. 원래 2만1000원인데”라며 에쎄 한 보루를 건넸다. 역시 풍물시장 상인처럼 까만 비닐봉투에 담았다. 바로 직전 20대 청년에게 하얀색 봉투에 수입 담배를 담아주던 모습과는 달랐다.

풍물시장에서 만났던 상인들에 따르면, 남대문에서는 도매로도 구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취재진은 남대문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한 상인에게 “어디서 면세 담배 대량 구매가 가능하냐”고 묻자 “수입상가에 가면 덩치 큰 아저씨가 파는 가게가 있어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거기가 원래 담배를 파는 곳이냐”는 질문에 “당연히 아니지. 다 몰래 쟁여놓고 팔지. 그러면 단속에 걸리게? 원래 수입 과자 파는 곳이야. 나도 거기서 보통 10보루씩 사가지고 와”라고 말했다.

국산 면세 담배를 취급한다는 상인에게 도매 구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남대문도 역시 검찰 수사의 칼바람을 느끼고 있었다. 시사저널이 이번 취재로 단독 확인한 미군 부대 압수수색 사실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알고 있었다. “요즘 단속이 심해서 물건도 끊겼다. 이번 건이 지나가고 몇 달 후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지금 난리 났다.” 그와의 대화에서 한 가지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곳에서 대량으로 박스 구매가 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용산 미군부대 출입문. © 시사저널 임준선

“박스째 사려면 미군부대로 가보든지”

취재진은 남대문 수입상가를 방문해 면세 담배를 대량으로 판매한다는 업자가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갔다. 건강식품 등을 판매하는 곳이었다. 주인인 50대 남성에게 “담배를 박스째로 구매하고 싶다”고 하자 “여기서 가만히 앉아서 기다려라”고 한 후 다른 상인을 불러와 기자를 소개시켜줬다. 그 상인은 기자에게 “얼마까지 구입하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최대한 많이 하고 싶다”고 답했다. 그러자 “요즘 검찰 수사로 물량이 부족해 많이 줄 수는 없고 최대 한 박스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다. 한 박스는 50보루 물량이다. 여기에 덧붙여 그는 최근 대대적인 수사로 물건을 구하기 힘들어 에쎄 한 보루당 가격도 기존 1만9000원에서 2만500원으로 올렸다고 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면세 담배 수사가 시장 가격도 올려놓은 것이다.

남대문시장이 면세 담배를 도매로 구입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일까. 혹시 다른 루트는 없을까. 또 다른 남대문 상인은 말했다. “박스로 사려면 미군부대로 가야지. (허가)증 있지? 아는 사람에게 빌려서 하면 돼. 봉고차 같은 걸 몰고 가서 박스로 가져오면 돼. 거기 있잖아. 다 거기서 가져와.” ‘거기’에 대해서 묻자 그는 기자를 붙잡고 나지막이 말했다. “이태원에서 반포대교 가는 방향 지하차도 나오지. 지하차도 지나면 바로 사거리 나오잖아. 거기서 왼쪽을 보면 바로 피엑스 나오거든. 거기로 가면 돼.”

미군부대에서 유출됐다는 제보로 시작된 면세 담배 불법 유통 경로 취재는 이렇게 미군부대로 다시 이어졌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면세 담배 도소매 상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미군부대로 들어가는 국산 면세 담배가 불법 유통되는 담배의 주요 공급원 중 하나인 것은 확실해 보였다. 사상 최초로 이뤄지고 있는 검찰의 미군부대 압수수색을 통해 ‘큰 업자’들까지 잡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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