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억은 기본, 유력 정치인은 축하금 수십억”
  • 이승욱·노진섭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08.28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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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잔치’로 변질된 정치인 출판기념회 실태

“정치와 돈을 어떻게 떼놓고 생각할 수 있나. 그래서 정치인은 누구나 구치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존재나 다름없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국회의원의 금품 관련 비리 사건이 터지면 으레 회자되는 이야기다. 정치인과 돈은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관계라는 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인 셈이다. 그만큼 정치인은 자신의 정치행위를 위한 ‘실탄’인 돈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출판기념회 성금을 경조사비로 여기는 관행

이는 ‘시대의 양심’으로 평가받는 김근태 전 민주당 의원(2011년 작고)조차 정치인을 옥죄는 검은돈의 유혹에서 온전히 자유롭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김 전 의원은 2000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 과정에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에게 2000만원을 받았다고 양심고백을 했다. 본인의 양심고백으로 인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2003년, 기자들과 만난 그는 “간밤에 잠도 안 오고 ‘내가 이 쓴 잔을 들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만 나왔다. 지금대로라면 정치가 주기적으로 돈 때문에 파국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괴로운 심경을 토로했다.

ⓒ 일러스트 김세중
정치인과 돈의 숙명적인 딜레마가 다시 여의도 정치권을 옥죄고 있다. 검찰이 입법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출판기념회 축하금 관행을 문제 삼고 나온 것이다. 검찰은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의 청탁 의혹을 받고 있는 신 의원을 수사하면서, 그의 대여금고에서 1억원대 뭉칫돈을 발견했다. 검찰은 이 뭉칫돈 중 3000만~4000만원은 지난해 9월5일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신 의원 출판기념회(<신학용:상식의 정치>) 당시, 한국유치원연합회 관계자 등으로부터 책값 명목으로 받은 돈으로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4월 신 의원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으로 유치원 경영주에게 유리한 법률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이에 따라 검찰은 당시 출판기념회 축하금의 대가성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신 의원 측은 “대여금고의 돈은 올해 2월 차남 결혼식 때 받은 축의금과 지난해 받은 책값을 함께 보관한 것”이라며 “유치원 법안도 업계의 오랜 숙원 사항이라서 발의한 것이지 로비와 무관하다”고 반박했다.

검찰의 수사망이 입법 로비를 통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에 이어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 축하금으로 뻗치자 정치권이 술렁이고 있다. 이미 정치인의 비자금 창구로 인식되고 있는 출판기념회인지라, 이로부터 자유로운 국회의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는 의정 활동 중 중요한 관례 행사로 자리 잡고 있다. 8월21일 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자체 조사해 발표한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개최 실태 자료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4년 7월까지 출판기념회를 1회 이상 개최한 19대 국회의원은 192명, 총 개최 횟수는 279건이었다. 전체 국회의원 중 64%가 평균 1.4건의 출판기념회를 가진 셈이다.

입법 로비 연루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영장이 기각된 8월21일 밤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을 나서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연례행사로 굳어졌지만, 출판기념회는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현행 선거법상 현직 국회의원 등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선거전 90일 이전에만 개최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제약이 없다. 특히 출판기념회에서 지인들로부터 받는 축하금의 액수나 수수 대상 제한 등과 관련한 특별한 법 규정은 없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정치권에서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는 일종의 경조사로 여겨졌고, 출판기념회를 통해 국회의원이 거둬들인 돈은 축하금, 즉 경조사비(慶弔事費)로 이해됐다.

제도적 미비로 인해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에서 얻은 수입금은 사실상 의원 자신과 핵심 보좌진만 알 뿐 정확한 액수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출판업계와 정치권 안팎의 증언에 따르면, 출판기념회 축하금은 1인당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특수 관계라면 축하금은 최소 500만원”

대기업 계열사에서 대관(對官) 업무를 맡고 있는 한 인사는 “출판기념회 참석자가 정치인과 단순한 지인 관계라면 20만~30만원 선에서 축하금을 챙겨주지만, 업무적으로 특수한 관계라면 최소 500만원 정도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2013년 11월29일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의 벽에 국회의원 출판기념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잔뜩 붙어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국회의원의 저서를 펴낸 경험이 있는 출판업체 한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출판기념회를 하면 1억~2억원은 기본이고 국회의원의 역량에 따라 많게는 수십억 원의 수입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 2007년 3월, 대선 출마를 앞두고 있던 이명박 후보의 출판기념회에서는 수십억 원 이상을 거둬들였다는 것이 출판업계에서 나오는 이야기다. 기자와 만난 한 출판사 간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시 유력 대선 후보여서 참석자가 대단히 많아 저서만 2만부가 나갔다”며 “2만명이 그 자리에 참석했다면 순수한 책값(1만2000원)만 계산해도 수입금이 2억4000만원이다. 그런데 대통령 후보의 출판기념회에 책값만 들고 오는 사람이 있겠나. 10만원 돈 봉투로 치면 20억원이 수입금이고, 10만원과 100만원 돈 봉투를 각각 절반으로 보면 110억 원의 수입도 가능하다. 책을 받지 않고 돈만 내고 간 사람까지 더하면 수입은 훨씬 더 큰 규모일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정치인의 역량에 따라 편중 현상도 나타난다. 여당 중진 국회의원실 한 보좌관은 “국회의원도 선수(選數)나 직책에 따라 출판기념회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라며 “선수가 높을수록 주요 직책을 맡은 경험이 있고 인적 네트워크도 풍부해 당연히 출판기념회는 성황을 이룰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알짜 상임위에 속한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는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다. 특히 국가 예산을 주무르는 국회 예산결산위원회 위원장들의 출판기념회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9월 이군현 당시 예결위원장은 서울과 자신의 지역구에서 연이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당시 국회 내에서는 이 전 위원장의 출판기념회 수입이 3억원이니, 5억원이니 하는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가 나돌았다.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가 여론의 눈총을 받으면서 축하금을 주고받는 수법도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청목회 사건 당시 ‘쪼개기 후원금’을 내는 방식처럼 쪼개기 수법이 출판기념회에도 적용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검찰은 최근 신학용 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도 이 수법이 동원된 것으로 보고 수사하고 있다.

출판기념회에서 홍보비 등의 명목으로 거액의 뭉칫돈을 건네왔던 기업체의 수법도 교묘해지고 있다. 기업체 간부가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 것 자체가 눈총을 받는 데다 기업 내부적으로도 국세청 세무조사나 자체 감사 등에 비용 처리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국회 대관 업무를 맡고 있는 기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에는 기업의 회계 처리가 투명해지면서 직접 돈을 주기보다는 출판사를 통해 책을 대량 구매하고 세금계산서를 받는 형식을 취한다”며 “책을 대량 구매했다고 해서 실제로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일부만 수령하고 나머지는 아예 가져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행 정치자금법 비현실성 지적도

정치권 일각에서는 현행 정치자금법이 비현실적이라고 항변한다. 2004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정치자금법 개혁안을 통해 강화된 정치자금법이 출판기념회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일명 ‘오세훈법’으로 불리는 당시 법 개정은 법인과 단체의 고액 기부를 막기 위해 이뤄졌다. 하지만 의원별 후원금액을 1억5000만원으로 제한(전국 선거가 있는 해의 경우 3억원)하면서 출판기념회라는 편법이 더 기승을 부리게 됐다는 지적도 있다. 재산이 충분한 국회의원을 제외하면, 세비(연간 1억3000만원)와 법정 지원금(정책개발비, 홍보물 발간비 및 발송비 등), 후원금 등만으로는 의정 활동과 지역 사무실 운영 비용 등을 메울 수 없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야당의 한 초선 비례대표 의원은 “초선으로서 재선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출판기념회마저 없애는 것은 공정한 룰이 아니다. 현행 정치자금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 각종 부조리를 낳는 근원이다. 후원금 한도를 올리되 검은돈이 유입되는지를 투명하게 감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치자금법 개선이 이뤄져야 출판기념회 관행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관행을 이유로 법·제도 개선에 미온적인 정치권의 행태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15대 국회에서 정권 실세 의원을 보좌했던 한 국회 보좌관은 “당시 출판기념회를 열고 나중에 정산을 하는데 한 봉투에서 1000만원권 수표가 나와 놀랐다. 영감이 권력 실세라는 사실을 그때 새삼 느꼈다. 당시는 출판기념회는 물론이고 정치자금법도 감시가 느슨한 상황이어서 돈이 수표로 오가기도 했다. 그렇다 해도 지금과 달라진 것이라곤 수표가 사라졌다는 것뿐이다. 20년 가까이 흘렀는데도 스스로 관행을 깨지 못한 채 개선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정치인과 돈의 딜레마를 양심고백한 고 김근태 전 의원은 2003년 7월 서울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의 최후진술에서 ‘원칙 없는 야만의 사회’를 지적했다. “재판장님, 이 재판이 반드시 밝혀주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사회적 위선’과 대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모두가 다 아는 비밀인 불투명한 정치자금을 둘러싼 참으로 비현실적인 ‘제도적 기만’과의 싸움에 제가 나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가치의 이중성’과 ‘사회적 위선’을 극복하지 않는 한 우리 정치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양심고백이 나온 지 10년이 흘렀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검찰 수사의 표적이 되고 여론의 비난을 받으며 어두운 수렁 속에 갇혀 있다.

 


“나는 책값 투명하게 받는다” 


정치인들의 출판기념회가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면서 비난을 피하기 위한 고육책이 등장하고 있다. 정치인 스스로 투명성을 제고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다.

김승수 전 전북 정무부지사는 지난 2월 전북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투명 아크릴 모금함을 설치하고 책값으로 1만원짜리만 받았다. 6·4 지방선거 때 광주시장에 출마하려 했던 이병완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3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출판기념회를 열어 책 홍보만 하고 책 구입은 서점을 이용해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7·14 새누리당 전당대회에 출마했던 김상민 의원은 지난 5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 신용카드 결제기를 비치해 수익금과 세금을 투명하게 공개해 눈길을 끌었다. 2011년 6월부터 올해 3월까지 총 6차례의 출판기념회를 연 것으로 알려진 이명수 새누리당 의원은 국회의원 재산 신고 당시 지적재산권 항목으로 출판기념회 수입을 공개하고, 국세청에 종합소득세 신고를 해 별도의 세금을 내기도 했다.


 
 

검찰 수사 표적 되자 뒷북치는 정치권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대한 비난 여론이 확산되면서 정치권이 뒤늦게 출판기념회 관행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8월20일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출판기념회를 통한 자금수수는 정치자금법 위반이자 탈세”라며 “선출직 국회의원이나 고위공직자는 출판기념회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주호영 정책위의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출판기념회에 관한 규정을 공직선거법에 넣고 구체적인 절차는 국회 규칙이나 ‘령’으로 정하는 등 엄격한 잣대를 출판기념회에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정치권의 움직임과는 별도로 그동안 숨죽이고 있던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개선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중앙선관위는 추석 직후인 9월15일 선관위원 전체회의에서 출판기념회 개선 방안을 최종 확정한 후 9월 정기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특히 그동안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 정치자금법상 국회의원의 후원금 한도도 손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치권 안팎의 개선 노력이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새누리당은 지난 황우여 대표 체제 당시 ‘출판기념회 준칙’ 제정을 추진해 개최 제한(임기 중 2회, 정기국회 시 개최 불가)과 참석 인원 제한(500명) 등을 정한 바 있지만, 당내 준칙 수준에 불과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난 2월 새정치민주연합(당시 민주당)이 사실상 당론으로 정해 국회에 발의한 국회의원윤리실천특별법안(도서 정가 구매, 수입·지출 중앙선관위 신고)도 지금 반 년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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