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안 팔려도 돈 봉투는 수북하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8.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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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업계에서 바라보는 정치인의 기형적 출판기념회 행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라는 게 출판업계의 분석이다. 2007년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책을 제작하고 출판기념회도 진행했던 한 출판사 간부는 “정치인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책 제작과 출판기념회까지 모두 5000만원을 투자하고 최소 1억~2억원의 수익을 올린다”며 “힘이 센 국회의원일수록 수익은 많아진다”고 말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책이 출판되고 출판기념회가 진행되기에 손해를 볼 수 없는 구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일까. 한 출판사 사장은 “정치인의 책 제작과 출판기념회는 책 판매나 자신의 홍보 수단이 아니라 돈을 모으기 위한 것이다. 그런 사실은 출판업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입을 뗀 뒤 정치인의 책 제작과 출판기념회 진행 과정을 설명했다.

지난 2월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한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서 참석자들이 돈 봉투를 넣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서점 판매 실적은 대부분 0~2권 수준

정치인의 책 발행은 일반적인 방식과 사뭇 다르다. 일반 작가는 출판사와 인세 계약을 맺은 후에 책을 쓴다. 출판사는 그 원고를 받아 책으로 내고, 책이 팔리는 만큼 일정 비율의 인세를 작가에게 지급한다. 정치인의 책 출판은 첫발부터 다르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책 제작비는 출판사의 몫인데, 정치인은 자신이 직접 제작비를 댄다. 이를 ‘자비 출판’이라고 하는데, 필요한 부수에 대한 제작비 일체를 출판사에 주고 나중에 책을 모두 가져가는 방식”이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서점에서 판매할 목적이 아니라 출판기념회 행사 하루에 소진할 책이라서 제작 부수도 500~1000부 정도로 일반 작가의 초판 발행부수보다 적다. 바쁜 정치인이 자료를 모으고 진득하게 앉아 집필하는 등 수개월에서 1년 이상 책 출간 준비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대부분 대필 작가를 섭외한다. 정치인은 제작비와 대필 작가 비용을 통째로 출판사에 주고 책 제작을 의뢰한다. 출판사 관계자는 “대필 작가도 급수가 있는데 가장 글발이 좋은 A급 작가는  3000만원을 받고, 일반적으로는 1000만원 안팎”이라며 “어차피 독자가 읽어주길 바라는 책이 아니라서 대필 작가의 손을 빌린다”고 말했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책 제작과 대필 작가 비용을 더하면 평균 3000만원이다. 정당마다 다른데 새누리당 의원들은 제작비와 대필 작가 비용을 넉넉하게 준다고 한다. 그렇다고 출판업계가 정치인의 책 출판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형 출판사는 정치인의 책 출판 의뢰를 거부하기도 한다. 대부분 영세한 출판사들이 수입을 목적으로 정치인의 책을 제작하는데, 그나마 그 출판사도 책에 출판사 이름 대신 브랜드를 만들어 붙인다. 한 출판사 사장은 “2000만~3000만원 수입 때문에 정치인의 책 제작을 맡기는 하지만 솔직히 정치인 책 출판은 내키지 않는 일”이라며 “유명 작가의 책도 아니고 책 자체가 서점을 통해 일반인에게 판매하는 걸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어서 출판사 홍보나 경영에 도움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간혹 서점에서 팔리는 정치인의 책이 있기는 하다. 시사저널은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의뢰해 최근 2년(2012년 8월~2014년 7월) 동안 국회의원이 출간한 도서의 판매량을 파악했다. 의원들이 쓴 수많은 책 가운데 그나마 출판기념회 행사장을 벗어나 서점에까지 나온 책은 13명의 의원이 펴낸 14권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새누리당 김태호 의원이 6월 출간한 <태호처럼>으로 341부가 판매됐다. 지난해 11월 출간한 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의원의 <당신은 아직 지지 않았다>는 48권 판매됐다. 나머지 의원의 책은 대부분 1~2권이 고작이거나, 아예 한 권도 팔리지 않은 책도 3권이나 됐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진행 방식도 일반 작가와 다르다. 보통 출판기념회는 출판사가 장소와 진행을 맡는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출판사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정하고 진행한다. 과거에는 호텔 연회장을 빌려 식사를 겸했지만 최근에는 국회 등에서 간단한 다과 정도로 그친다. 임차료는 약 1000만원 선이다. 행사 진행에 필요한 아르바이트 인력도 대폭 줄이거나 지인들의 자원봉사로 충당한다. 인건비도 과거보다 줄어 약 500만원에서 해결할 수 있다. 출판기념회 장소와 일정이 정해지면 이를 알리기 위해 광고를 하는데 500만원가량의 개인 비용을 쓴다. 출판사 관계자는 “책 광고는 출판사의 몫이지만 정치인은 광고도 개인적으로 한다”며 “책을 내세워 자신의 얼굴을 알리고 출판기념회 일정을 홍보하는 목적”이라고 말했다.

5000만원 들여 2억 이상 거둬

책 제작부터 출판기념회 진행까지 드는 전체 비용은 5000만원을 넘지 않는다는 게 출판업계의 추산이다. 출판기념회를 열어 1만5000원짜리 책 500권을 정가에 판매하면 수익은 750만원이고, 1000권이면 1500만원이다. 순전히 책값만 받아서는 적자다. 그러나 국회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책을 사러 가는 사람은 없다. ‘예스24’에 따르면, 2013년 한 해에 출판된 책 10권은 모두 하반기에 나온 책들이어서 국정감사 기간(10~11월)과 겹친다. 이 기간에는 주로 국정감사의 피감기관·기업 등이 출판기념회에 참석하는데 여기서 책 한 권을 받고 돈 봉투를 건넨다. 그 봉투에 얼마가 들었는지는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 안다.

출판업계는 그 액수가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수천만 원까지라고 보고 있다. 마치 결혼식에서 축의금을 받고 답례품을 주듯이 정치인 출판기념회도 돈 봉투를 받고 답례품으로 책을 준다. 일반 작가의 출판기념회는 책을 정가에 팔고 그 내역을 작가와 출판사가 공유한다. 그러나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출판사와 무관하게 개인적으로 치르는 행사여서 수익금은 모두 정치인의 호주머니로 들어간다.

이런 이유로 정치인의 출판기념회는 감시의 사각지대라는 비판을 받는다. 출판기념회의 책값은 공식 후원금과 달리 누가, 얼마나 냈는지 신고할 의무가 없다. 그 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도 알 수 없다. 이런 점 때문에 출판기념회가 불법 정치자금의 전달 통로이고 정치인의 사(私)금고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정치인들은 현행법상 정치자금 모금 한도(연간 1억5000만원)로는 사무실 운영도 힘들다는 식으로 항변한다. 책도 매년 내는 것이 아니라 임기 중에 한두 차례이고, 정치자금법이 엄격해 정치인들이 마음 놓고 돈을 끌어모을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출판기념회뿐이라는 것이다.

정치인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던 시민 이홍성씨(60)는 “출판기념회에서 정치인은 책이나 비전을 얘기하지 않고 쇼를 했다”고 꼬집었다. 정치인의 출판기념회에 쏟아지는 눈총이 곱지 않자 올해 초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정가에 팔고 수입과 지출을 선관위에 신고하도록 한 ‘국회의원 윤리실천 특별법’까지 발의됐지만 현재까지 국회에 묵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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