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사건 / 세월호 참사 5위…재난이 남긴 충격
  • 김지영 기자 (abc@sisapress.com)
  • 승인 2014.09.0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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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풍백화점 붕괴 10위…한국전쟁, 5·18광주, 5·16쿠데타, 4·19혁명 1~4위

모든 시간이 같은 시간은 아니며, 모든 땅이 같은 땅이 아니다. 분명 대한민국 5000만 국민은 2014년 오늘을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오늘’은 개개인 삶의 형태에 따라 수천, 수만 개의 기억으로 분절된다. 문화평론계 한 원로 인사의 말대로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인 법이다.

당장 광화문 일대로 눈을 돌려보면 이 말의 의미는 더욱 명확해진다.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 모이는 할머니들에게 오늘은 일제 강점기에 멈춰 있고, 광화문 한복판에서 진실 규명을 외치는 세월호 유가족에게 오늘은 지난 4월16일이다. 한 시대의 역사란 동시대를 사는 수천만 명의 ‘오늘’이 응축된 거대한 기억의 덩어리인 것이다.

ⓒ 해양경찰청 제공·시사저널 포토
그렇다면 2014년 ‘오늘’을 사는 사람들은 어떤 기억을 갖고 있을까. 어떤 ‘오늘’을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을까. 시사저널이 각 분야 전문가 1000명에게 물었다.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은 무엇인가.

본지는 5년 전인 2009년에도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이번 조사에서 1~4위에 오른 사건은 5년 전과 똑같다. 한국전쟁, 5·18 광주민주화운동, 5·16 군사정변, 4·19 혁명 순이었다.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4대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그 아래에는 순위에 다소 부침이 있었지만, IMF 외환위기와 10·26 박정희 시해 사건, 6월 민주항쟁, 88 서울올림픽 등이 10위권 내에 자리했다.

세월호 참사·삼풍백화점 붕괴 새롭게 진입

5년 전 순위에 있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와 12·12 군사반란은 올해 조사에서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12·12 사태는 공동 11위, 노 전 대통령 서거는 14위에 그쳤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사건은 세월호 침몰과 삼풍백화점 붕괴였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재난을 역사적 사건으로 꼽는 비율이 크게 높아졌다는 사실이다. 5년 전과 비교해 여러 재난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사건’으로 지목됐다. 특히 지난 4월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는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사건 5위에 올랐다. 5년 전 조사에서 5위에 오른 사건은 87년 6월 민주항쟁이었다. 올해 조사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더불어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10위를 차지했다. 10위권 밖에서도 성수대교 붕괴(19위), 대구 지하철 참사(22위) 등 재난사고가 비중 있게 순위에 올랐다.

대한민국 국민 10명 가운데 6명가량은 한국전쟁을 여전히 우리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58.9%의 지목률을 나타냈다. 5년 전(47.0%)에 비해 더 높아졌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소련을 등에 업은 북한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했다. 이후 3년여의 전쟁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 집계된 전사자는 유엔군·한국군 18만명, 북한군 52만명, 중공군 90만명 등 약 160만명에 달한다. 민간인까지 포함하면 사상자는 훨씬 늘어난다.

한국전쟁이 이 땅에 남긴 보이지 않는 상흔은 더 컸다. 북한이라는 실질적인 공포는 한국인에게 강한 레드 콤플렉스를 심었다. 전쟁의 포연이 멈추자 사람들은 생기는 대로 아기를 낳았다. 베이비부머들이 그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난 세대다. 국가가 돌보지 못했던 베이비부머들은 자력갱생으로 살아남았고, 이들이 만든 ‘욕망의 전차’는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늘도 있는 법, 이들의 은퇴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후 한국은 ‘실버쇼크’를 눈앞에 두고 있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시민의 힘으로 실질적 민주주의를 구축한 몇 안 되는 국가다. 사진은 1987년 6월 민주항쟁.한국전쟁은 광복 이후 대한민국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으로 꼽혔다.이산가족, 레드 콤플렉스 등 한국전쟁이 남긴 보이지 않는 상흔은 크다. ⓒ 연합뉴스
‘박정희 시대’가 남긴 슬픈 유산들

광복 이후 대한민국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핵심은 18년 동안 이어진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느냐다. 이번 조사에서 10위권 안에 든 굵직한 사건들도 대개 ‘박정희 시대’와 맞물려 있다.

‘박정희 시대’의 서막을 알린 사건은 1961년 5월16일에 발생했다. 이번 조사에서 3, 4위에 오른 5·16 군사정변(29.4%)과 4·19 혁명(20.4%)은 유시민 전 장관의 표현대로 ‘난민촌(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다. 스스로를 국부(國父)로 지칭한 이승만 전 대통령은 한국전쟁의 상흔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했다. 절대 빈곤에 빠진 국민 경제를 개선하지 못했고 3·15 부정선거로 스스로 민주적 정당성마저 저버렸다. 그 결과로 4·19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다. 

하지만 4·19 혁명은 미완의 혁명이었다. 민중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새 정부(장면 내각)를 세웠지만 민중은 혁명을 완성할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바뀐 것은 대한민국이 아니라 자유당 정권에서 민주당 정권으로 교체됐다는 사실뿐이었다. 장면 정부는 무능했고 국민 경제는 파탄 났다. 이 틈을 파고든 것이 박정희 소장을 중심으로 한 군부 세력이었고, 그가 무장병력을 이끌고 한강을 건너 정부청사와 언론기관 등 주요 시설을 점령한 것이 5·16 군사정변이다. 이 쿠데타는 4·19 혁명과는 다르게 성공했다. 18년 ‘박정희 시대’를 연 것이다.

이제 ‘재난 이후 민주주의’ 고민할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한민국을 ‘전쟁 난민’에서 ‘아시아의 잠룡’으로 부활시켰다. 역사적으로 전례 없던 짧은 시기에 이룩한 성과였다. 하지만 화려한 만큼 어두운 부분도 있었다. 대기업 중심의 독과점 시장 질서는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기제가 됐다. 수출 중심 전략은 내수 시장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벽이 됐다. 몇몇 재벌 기업에 경제력을 집중시키는 한국형 경제 성장은 결국 양극화를 키웠고, 이는 IMF 외환위기 때 재벌 해체 과정에서 대량 해고라는 사회적 재앙을 낳았다. 한국 경제사에서 처음으로 노숙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신분’을 낳은 1997년의 IMF 경제위기는 이번 조사에서 6위(12.9%)에 랭크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이 이룬 바로 그 성공 때문에 희생됐다. 물질적 풍요를 바라는 대중의 욕망에 기대 유지됐던 ‘박정희 시대’는 대중이 절대 빈곤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자 다른 욕망으로 대체됐다. 민주주의가 그것이다.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박 전 대통령은 ‘독재자를 처벌’하는 총탄에 쓰러졌다. 10·26 박정희 시해 사건은 이번 조사에서 7위(10.3%)에 올랐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민주화 운동도 박 전 대통령이 시해된 후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것을 경계한 시민군의 항쟁이었다. 5·18 민주화 항쟁은 이번 조사에서 39.9%로 2위에 올랐다. 5년 전 조사에서도 39.6%로 2위였다.

지난 4월16일 300여 명의 목숨을 앗은 세월호 참사와 ‘박정희 시대’와의 간극은 크다. 하지만 둘 사이의 접점은 ‘박정희 시대의 경제 성장’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재벌 기업에 모든 자원을 집중시키는 시스템이었고, 이때 공고화된 재벌 체제는 오늘날  ‘재벌 공화국’으로 이어졌다.

“이제 권력은 기업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식대로 오늘날 재벌의 영향력은 국가의 통제 범위를 넘어섰다. 국가의 감시에서 벗어난 기업은 부실 공사, 부정부패를 키웠다. 1994년 10월21일 아침 출근길에 한강 성수대교가 무너진 것도, 1995년 6월29일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삼풍백화점이 주저앉은 것도 그렇게 초래된 비극이었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선령이 20년이 넘은 선박을 수입해 운영한 것도, 담을 수 있는 짐보다 더 많은 짐을 실은 것도 국가가 규제를 풀고 감시를 소홀히 해서 일어난 일이다.

지금까지 민주화와 산업화가 대한민국을 규정하는 키워드였다면 세월호 참사가 대한민국의 세 번째 전환점이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쩌면 개개인이 재난을 기억하는 것으로 거대한 비극과 지독한 국가의 무능에 맞서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구축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숙제였다면 이제는 ‘재난 이후 민주주의’를 고민해야 할 때는 아닌지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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