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론 못 이기니, 한번 쪼깨서 해볼까”
  • 김현│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4.09.17 16:4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상돈 영입 파문으로 친노·비노 갈등 격화…일각에선 ‘전략적 분당설’도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내 중도 온건 성향 의원들의 움직임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7·30 재보선 패배로 박영선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한 이후 당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친노(親盧) 진영을 중심으로 한 강경파 의원들과의 대척점에 서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서다. 당내 중도 온건파로 분류되는 이들은 “지금은 움직여야 할 때”라는 공감대 속에 당의 노선과 정책적 지향을 둘러싸고 강경파와의 일전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재보선 참패로 중도 온건 성향 지도부였던 김한길·안철수 공동대표 체제가 붕괴되면서 ‘참패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강경파 기세에 눌려 그동안 중도 온건파는 위축된 모습이었다. 그러나 대표적 강경파로 분류됐던 박영선 원내대표가 지난 8월4일 비대위원장 직을 수락한 뒤 첫 일성으로 ‘낡은 과거와의 단절’ ‘투쟁 정당 이미지 탈피’를 내놓는 등 협상파로의 변신을 꾀하면서 중도 온건파들의 입지가 넓어지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유성엽·민홍철·최원식 의원(맨 앞부터)이 8월28일 박영선 원내대표에게 장외투쟁 중단을 요구한 후 원내대표실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중도 온건파 배후에 안철수·김한길 거론

중도 온건파들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게 된 계기는 박 원내대표가 8월26일 강경파 주장에 떠밀려 원내외 병행 투쟁이라는 명분 아래 장외투쟁에 돌입하면서부터다. 4선의 김성곤·김영환 의원과 3선의 박주선·조경태·주승용 의원, 초선인 황주홍 의원 등 중도 온건파 15명은 장외투쟁에 돌입한 당일 ‘국회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됩니다’라는 성명을 내고 장외투쟁 행보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통상 개별적인 입장만 밝혀오던 이들이 연판장을 돌려 성명을 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중도 온건파에 속하는 한 초선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당내 강경파가 세월호 특별법 합의를 두 번이나 추인 불발시키면서 박 위원장을 흔드는 것을 보면서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라며 “장외투쟁 반대 성명을 낸 것은 앞으로 당의 노선과 관련해 치열한 투쟁을 하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말했다.

중도 온건파의 중심엔 이른바 ‘민주당의 집권을 준비하는 모임’(민집모)이 자리하고 있다. 장외투쟁 반대 성명을 냈던 15명 중 상당수도 민집모 회원이다. 현재 민집모 회원은 김동철·김승남·김영환·노웅래·문병호·민홍철·신학용·안민석·오제세·유성엽·이상민·이언주·이종걸·이찬열·전정희·정성호·조경태·주승용·최원식·황주홍 의원 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체로 지난해 민주당의 5·4 전당대회 당시 당내 비주류였던 김한길 대표 체제 등장에 기여했던 인물들이다. 이들 대다수는 민주당과 안철수 의원 측의 통합으로 탄생한 새정치연합에서 주요 당직을 맡았었다.

이로 인해 강경파 일각에선 현재의 중도 온건파 움직임의 배후에 김한길·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강경파로 분류되는 한 초선 의원은 “김·안 전 공동대표가 대표직 사퇴 이후 중도 온건파로 분류되는 의원들을 개별적으로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중도 온건파의 움직임은 김·안 전 공동대표와의 교감 속에서 이뤄진 게 아니겠느냐”라고 날을 세웠다.

중도 온건파 진영에선 손사래를 치고 있다. 중도 온건파로 분류되는 한 중진 의원 측은 “최근 김 전 대표와 안 전 대표를 모두 만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재 당이 가고 있는 방향이 잘못됐다는 공감대 아래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지, 두 대표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거나 하는 것은 억측”이라고 말했다.

중도 온건파가 최근 연쇄적으로 회동을 가지면서 조직화하려는 양상도 감지된다. 한 중진 의원 측은 “그간 언론에 다소 돌발적인 발언들이 나가면서 중도 온건파 전체의 목소리로 잘못 알려진 측면이 있어 메신저 역할을 할 사람들을 정할 계획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선 내년 전당대회를 겨냥한 중도 온건파들의 세력화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현재 다소 ‘모래알’처럼 흩어져 있긴 하지만 모임이 ‘개방성’을 띠고 있어 전대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세력을 일순간에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오른쪽)와 문재인 당 원전대책특위 위원장이 9월4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본부에서 2호기 순환수 펌프 시설 사고 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현재로선 분당 명분도 동력도 부족”

이에 따라 향후 당내 강경파와 중도 온건파 간 갈등은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당의 노선을 둘러싼 갈등은 당내 해묵은 친노와 비노(非盧) 진영 간 갈등으로 전이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박영선 원내대표가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했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를 국민공감혁신위원장으로 영입하려고 하는 것이 양측 간 갈등의 촉매제가 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이 교수 영입 추진 과정에서 친노 진영의 좌장인 문재인 의원의 행보를 놓고 강경파와 중도 온건파 간에 설전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박 원내대표 측은 이 교수 영입과 관련해 문 의원과 상의를 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문 의원 측은 직접적인 협의는 없었다고 반박했다. 한 중도 온건파 의원은 “박 원내대표가 사전에 문 의원과 충분히 상의를 했다면, 문 의원이 친노 진영 의원들을 설득해줘야 제대로 된 지도자 아니냐”며 “그런 식으로 비겁한 행보를 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한 친노 진영 의원은 “문 의원은 반대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 식의 주장에 대해선 대꾸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고 밝혔다.

이 교수 영입이 무산될 경우 박 위원장의 리더십이 붕괴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새정치연합은 리더십 공백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 간 갈등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전망에 당내에선 “이대로 당이 깨지는 게 아니냐” “차라리 분당을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푸념 섞인 말들이 나오고 있다. 한 당직자는 “당내 계파갈등으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는커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 정당이 돼가고 있는 것 같다”며 “지난 10년간 합치는 전략으로 해선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한 번 깨서 이기는 전략도 고려할 필요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연장선상에서 당내 일각에선 분당 후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선거연대와 통합 등을 추진하는 ‘전략적 분당 가능성’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진 현실화 가능성이 작다는 분석이다. 김철근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분당을 하기 위해선 동력이 필요하다. 누군가 명분을 갖고 깃발을 들어야 하고, 조직적인 움직임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로선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