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픈 영웅주의자들 광장을 욕보이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4.09.17 16:47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간 베스트’는 하루 동안 추천을 많이 받은 사진을 따로 모아둔 갤러리 이름이었다. 일베에 자신의 글이나 사진이 오르면 어설픈 영웅 심리가 생긴다. 이를 잊지 못해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내용이 올라왔다. 사실을 왜곡하거나 타인을 공격하는 내용으로 변질됐다. 상식에 반하는 언행이 계속되자 일베를 청소년 유해 사이트로 지정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일부 과격한 일베 회원은 검찰에 기소되는 일도 생겼다. 일베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사회 지도층은 말을 섞기 싫다며 애써 일베를 외면한다. 일베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커지고 있다. 

추석 연휴가 시작된 9월6일 인터넷 사이트 ‘일간베스트’(약칭 일베) 회원 100여 명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유족들이 단식농성을 벌이는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여 피자·치킨·라면·도시락·햄버거 등을 먹고 노래를 불렀다. 일부는 단식농성장을 오가며 음식을 먹고 농성자들이 보란 듯 인증 사진도 찍었다. 온라인에서의 활동이 오프라인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일베 회원들은 “공원에서 음식을 먹는 게 무슨 잘못이냐”며 “광화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달라”고 주장했다.

9월6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진상규명 특별법 단식농성장 앞에서 일베 회원들이 피자와 치킨을 먹고 있다. ⓒ 오마이뉴스
취지야 어떻든 자식을 잃고 극한의 슬픔에 빠진 유족들의 단식농성장 앞에서 ‘폭식 행사’를 벌인 행위는 비인간적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장에는 추석을 맞아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추석상이 차려져 있었다. 일부 일베 회원과 시민들 사이에 승강이가 벌어져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다. 현장을 지켜본 직장인 주 아무개씨(38)는 “민주사회에서 자기주장을 자유롭게 펼칠 권리가 있지만, 그로 인해 타인이 받게 될 상처를 헤아리지 않는 점은 문제”라며 “정도가 지나치면 아무리 취지가 좋아도 사회적 공감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일반인 가운데는 일베 회원을 벌레(일베충)에 비유하기도 한다. 주부 성 아무개씨(50)는 “광화문광장을 시민에게 돌려달라는데, 세월호 유족도 시민이고 광장에서 농성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단식농성장 앞에서 음식을 먹는 행위는 벌레만도 못한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일베의 뿌리는 디지털 사진 동호회 성격의 인터넷 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다. 1999년 개설된 이 사이트는 댓글이나 조회 수가 많은 사진을 ‘일간 베스트’라는 게시판에 따로 모았다. 회원들은 자신의 사진이 일간 베스트에 꼽히면 자부심을 느꼈다. 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사진과 글이 게시되기 시작했고, 디시인사이드는 운영 규칙에 어긋난다며 부적절한 사진과 글을 삭제했다. 이에 반발한 일부 회원이 2010년 따로 떨어져나가 만든 사이트가 지금의 일베다.

“재미만 추구하는 삼류 커뮤니티 불과”

일베는 2012년 대선을 분기점으로 보수 성향을 드러내면서 회원 수 100만명에 이르는 대형 사이트로 탈바꿈했다. 일각에서는 일베를 보수단체로 정의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한 심리학 교수는 일베를 “비하, 지역감정, 여성 혐오, 냉소, 재미만 추구하는 삼류 커뮤니티에 불과하다”며 “아무 생각 없이 욕설과 주장을 배설하는 곳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일베 게시글에는 존칭어가 없다. 이 사이트의 공지사항에는 “일베의 독특한 문화 중 하나인 회원 간 반말 문화는 인터넷 공간에서 사회적 지위나 성별, 나이를 떠나서 편하게 의견을 게재하자는 뜻에서 만들어졌다. 사회적 이슈나 정치적 성향에 대한 의견을 게재하는 데 프레임이 만들어져 있다면 자율성은 그만큼 침해를 받게 될 것은 당연하다”는 반말 사용 이유가 설명돼 있다.

민주사회에는 표현의 자유가 있으나 그것이 타인에게 모욕적이고 심지어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수준이라면 사회적 갈등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일베의 일부 게시글은 단순 재미 수준을 넘어 이념 갈등, 욕설, 여성 비하, 지역감정 등을 조장한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예컨대 무책임하고 이성적이지 않은 사고방식을 가진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김치년’이라는 말은 여성 혐오에 가깝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김치는 한국의 전통음식이고, 여기에 여성을 낮춰 부르는 ‘년’을 붙임으로써 모든 한국 여성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호남 지역 사람을 홍어로 비하하며 지역감정을 부추기거나 특정 인물을 폄하하는 내용도 있다. 예를 들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노알라(노무현과 코알라의 합성어), 김대중 전 대통령을 슨상님, 박원순 서울시장을 원숭이에 빗대 박원숭이라고 희화한다. 일베 회원의 단어 패턴을 분석한 일베리포트(2011년 7월~2013년 5월)에 따르면, 가장 많이 사용된 주제어는 씨X, 존X 같은 욕설(5417개)이었다.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해 희생자와 가족들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된 20대 일베 회원 2명이 지난 7월10일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 참배한 후 사죄하고 있다. ⓒ 5·18기념재단
‘유해 사이트 지정’ 서명운동 잇따라

반말·욕설 등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글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아 ‘일간 베스트’에 자신의 글이 오르면 우쭐하는 자아도취 이른바 ‘어설픈 영웅 심리’에 빠진다. 그러나 행동으로까지 이어지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살인 현장 사진’ 파문이다. 올해 6월 ‘긴급속보 사람이 죽어 있다’는 제목의 사진이 일베에 올랐다. 가정집으로 보이는 곳에 흰색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쓰러져 있고 그 여성의 머리 주변에는 빨간색 액체가 흘렀고 깨진 화분이 주변에 흩어져 있었다. 이 사진은 사람의 관심을 끌기 위해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일부 네티즌의 신고로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기까지 했다.

최근 일베를 청소년 유해 사이트로 차단해달라는 서명운동이 잇따르고 있다. 2012년 길을 가던 초등학생을 때리고 일베 만세를 외친 남성이 동영상을 일베에 올려 물의를 빚었다. 다음 등 포털 사이트에서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일베를 유해 사이트로 지정해야 한다’는 서명운동이 진행되기도 했다. 지난해 전 프로야구 선수 조성민씨의 자살 소식에 일부 일베 회원은 유가족에 대한 악성 댓글을 달아 물의를 빚었다. 울랄라세션 소속의 가수 임윤택씨가 위암으로 사망하자 그를 조롱하는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때도 일베를 유해 사이트로 지정해달라는 서명운동이 다시 진행됐다.

일부 게시물에 도를 넘는 측면이 있고, 관련 신고가 꾸준히 들어오지만 커뮤니티 성격의 사이트인 데다 관리자가 수시로 부적절한 게시물을 삭제한다는 이유로 방심위는 현재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러자 법에 호소하는 단계로 접어드는 국면이다. 올 7월 일베 회원 2명은 국립 5·18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하고 반성했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매도하고, 당시 계엄군에 의해 살해돼 길거리에 방치된 시신이 부패하는 남새를 홍어 삭힌 냄새와 비슷하다며 조롱한 것과 관련해 검찰이 일부 일베 회원을 기소한 직후였다.

세월호 참사 이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는 일부 네티즌을 ‘노 전 대통령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식사했다’는 허위 사실 및 사진을 유포한 혐의로 고소했다. 온라인에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병언 회장이 삼계탕을 먹고 있는 사진’이라는 제목으로 해당 사진이 빠르게 유포됐다. 공개된 사진 속 인물은 유 전 회장이 아닌 참여정부 당시 경제보좌관을 지낸 조윤제 서강대 교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창원지검은 해당 사건을 배당받아 경찰에 수사 지휘를 내렸고 경찰은 해당 사진이 일베에서 유포된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일부 일베 회원은 언론을 통해 “(글이나 사진이) 반(半)장난이고 표현의 자유이므로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상식에 반하는 글에 공감하고 이를 더 자극적으로 재생산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집단 무의식에 빠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일부의 극단적인 행동은 그들과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강한 배타적 성향을 보이고, 그들의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비칠지에 대해 무책임하며, 생각하는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과잉행동을 보이는 것”이라며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동정심이나 공감 능력을 상실해 타인의 시선에 대해 거리낌 없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는 반사회적 인격장애의 행동 유형과 유사한 패턴이라고 볼 수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경우에는 반복적으로 범법행위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으며, 자신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위해를 입힐 수 있음에도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관심 따위에는 무감각한 성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반사회적 행위 묵인해선 안 돼”

상황이 심각해지자 한 네티즌은 올해 2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재를 요청했다. 그는 국제청원운동 사이트(avaaz.org)에 청원서를 올리고 일반인의 서명을 받고 있다. 이 네티즌은 청원 이유를 밝힌 글에서 “각종 사이버 테러와 전체주의, 독재 찬양, 역사 왜곡, 고인 모독, 여성 비하, 차별 조장, 지역감정 조장, 범죄 모의, 선거 개입, 정치 선동 등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악행들을 저지르고 있는 사이트가 유머 사이트로 포장돼 아이들도 아무 인증 같은 절차 없이 접속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며 “이는 곧 성인들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으며 이를 방치하는 것은 국가의 기반을 흔드는 반사회적 행위이므로 사회적으로 묵인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이를 막기 위해서라도 폐쇄 혹은 성인 인증 같은 실명 인증을 통해 제재를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베가 세간의 눈길을 끌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자신이 일베 회원임을 밝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연히 일베 회원으로 밝혀진 유명인 등은 손가락질을 받는다. 일베 회원이 일상에서 ‘일밍아웃’(일베+커밍아웃)을 하지 못하는 것은 글의 내용과 활동이 전반적으로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국민의 정서에 크게 어긋난다는 점을 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베 스스로 성숙한 모습을 찾아야 한다는 여론이 어느 때보다 높다.

일부 일베 회원은 타인을 향해 일방적인 비난을 쏟아내면서도 정작 자신들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데는 인색했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2012년 한 인터넷 매체 기자는 일베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일베 회원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한동안 집 주변에서까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스토킹을 당했고 협박성 전화에 시달렸다. 현재도 일베 회원들을 상대로 200건이 넘는 고소를 진행하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사회가 일베의 주장에 무관심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황상민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국민이 특정 단체의 주장에 관심을 둘 필요가 없다. 관심을 가지니까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옳은 것처럼 느낀다. 일부 언론도 특정 사이트에 올라온 가십성 글을 마치 중요한 문제인 양 부풀려 보도하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사회학자·심리학자·정신과학자·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까지 침묵해서는 곤란하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이들은 일베라는 말조차 입에 올리길 꺼린다. 어떤 말을 하든 일베와 얽혀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지식인은 목소리를 내고 지적해서 사회적 갈등 문제를 정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