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현역’이 편의점 카운터 일을 한다
  • 이애림│일본 통신원 ()
  • 승인 2014.09.1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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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노인 노동 확대 정책…기업들도 동참해 고용 늘려

일본 편의점 로손(LAWSON)에서 만나는 흔한 풍경 중 하나가 노인들이 유니폼을 입고 일하는 모습이다. 백발의 노인들은 상품을 진열하고 매장의 청결을 유지하고 카운터 업무까지 척척 해낸다. 젊은 아르바이트생들도 있지만 그들과 전혀 다를 바 없다. 로손사(社)는 3년 전부터 노인 채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본 노동인구의 변화를 고려해 노인 고용을 시작했는데, 결과를 살펴보니 연령이 높은 점원일수록 재직 기간이 길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노인 고용에 더욱 발 벗고 나섰고 현재 전체 직원 중 약 8%를 노인으로 채웠다.

노인들이 편의점에서 일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로손사는 편의점이 ‘또 다른 경력의 출발 장소’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노인들을 위한 별도 포스터를 제작하는 등 다양하게 홍보 활동을 펼쳤다. 신입 직원 연수에서도 그들을 배려했다. 편의점에서 가장 복잡한 카운터와 전산 업무 교육을 할 때는 다른 연령대보다 더욱 천천히 시간을 들였다. 반대로 커뮤니케이션 교육은 연륜에서 나오는 노하우를 존중해 시간을 대폭 단축시켰다. 매뉴얼북도 글자 크기를 확대해 읽기 쉽도록 만들었다. 같은 장·노년층이라도 50대·60대·70대 간 차이가 있기 때문에 연령을 세분화해 교육했다. 

일본 오사카의 한 공장에서 정년을 넘긴 노인들이 일을 하고 있다. ⓒ REUTERS
노인 고용이 실시된 이후 점주들의 입에서 점점 긍정적인 반응들이 나왔다. 어떤 점포에서는 20대보다 노인들을 더 채용하고 싶다고 했다. “노인들은 학생과 프리랜서 등에 비해 일에 대한 책임이 강하기 때문에 근무 태도가 굉장히 좋다” “지각과 결근이 적고 자기의 역할을 다한다. 그런 모습은 다른 젊은 직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한 점포는 “고객 중에는 점원들 가운데 노인이 더 이용하기 편하다고 하는 분도 있다. 친근한 느낌에 단골이 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고 답변했다. 로손사는 앞으로 전체 직원의 30% 정도가 노인층 직원으로 꾸려질 날이 멀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노인은 책임감 강하고 근무 태도 좋다”

보통 65세 이상 노인 비율이 전체 인구의 14~21%일 경우 ‘고령화 사회’라고 부른다. 전체 인구의 21%가 넘으면 ‘초(超)고령화 사회’가 된다. 일본은 1994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가 됐다. 불과 13년이 지난 2007년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서며 우리보다 앞선 길을 걷고 있다.

‘국립 사회보장·인구문제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인구는 점차 줄어도 고령화율은 점점 상승하고 있다. 2025년에는 그 비율이 약 30%, 2060년에는 40%에 달할 것이라는 게 연구소의 진단이다.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일본인 세 명 중 한 명꼴로 노인인 세상이 오는 셈이다. 특히 도시의 고령화 속도는 다른 곳보다 훨씬 빠를 것으로 전망했다. 비도시 지역의 고령화는 상상하기 쉽지만 바쁘게 움직이는 경제 중심지인 도시가 고령화되는 모습은 쉽게 와 닿지 않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금 도쿄의 풍경만 봐도 그날이 멀지 않았다는 게 느껴진다. 한낮에 동네와 상점가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는 노인이다. 커피숍에 앉아 있는 사람도, 스포츠클럽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도 노인이 다수를 이루자 오히려 이 연령층만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그러다 보니 고령층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사회적 관심사가 됐다. 일본 노인들 중 ‘일을 할 수만 있다면 언제까지라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36.8%나 된다.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남성의 경우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여성의 경우 ‘일하기 편한 환경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양쪽 모두 ‘수입’을 가장 우선시한다. 일본인의 은퇴 후 수입은 한국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지만 그럼에도 ‘계속 일하고 싶다’고 희망하는 고령층이 늘어나자 기업과 정부의 발걸음도 빨라졌다. 도쿄 대학 고령사회종합연구기구의 아키야마 교수는 “기업과 정부 등이 모두 협력하는 형태로 정년 후 고령 노동 희망자들의 세컨드 라이프를 충족시키면서도 도시와 근교의 지역적 과제를 해결하는 모델과 아이디어가 강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일단 로손사처럼 노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도쿄에 위치한 적지 않은 패스트푸드점이나 도시락집 등에서는 주방 담당자로, 혹은 판매원으로 일하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새삼스럽지 않다. 작은 기업만 호응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에서도 일할 기회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기술을 보유한 노인들은 정년 연장, 재고용 제도 등을 통해 계속 현역으로 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는다.

여기에는 노인을 적극적으로 고용하는 기업에 주는 정부의 혜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주로 세제 혜택이다. 예를 들어 65세 이상인 종업원 급여 합계액은 기업의 과세 기준이 되는 종업원의 급여 총액 산정에서 제외된다. 종업원 수의 합계에서 임원 이외의 65세 이상 노인을 제외했을 때 100명 이하일 경우에도 감세 혜택을 준다. 이런 세제 혜택으로 기업은 노인의 임금 부담으로 발생하는 걱정거리를 덜어내고 좀 더 적극적으로 노동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65세 이상 종업원 급여는 세금 공제 혜택

이런 기업들은 후생노동성이 제공하는 ‘노인을 배려한 직장 개선 매뉴얼’을 숙지하고 따라야 한다. 이 매뉴얼은 직무 배치에서 노인들을 판단하는 법, 기억 능력에 관해 배려하는 법, 젊은이들과의 협력에 대해 배려하는 법, 민첩성 저하로 생길 수 있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안전성을 확보하는 법, 심리적 스트레스에 대해 배려하는 법 등을 담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따라오는 체력적·심리적 능력 저하를 기업이 이해하도록 돕는 작업이다.

노인들의 노동은 정부가 단지 복지 차원에서 실시하는 일이 아니다. 인구는 점차 감소하고 연령층 분포도 역피라미드 모양으로 변하고 있는 일본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가 연금 문제의 해결이다. 연금을 받아야 할 고령층은 늘어나고 연금을 내는 젊은 층이 줄어들면서 후생 연금의 지급 개시 연령은 2025년부터 60세에서 65세로 변경된다.

연금 지급 시기와 맞물리면서 노인 노동 문제 해결은 정부의 필수 과제가 됐다. 그래서 2006년부터 후생노동성은 65세까지 안정된 고용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에 세 가지 중 하나의 제도를 의무화하도록 했다. 정년제 폐지, 정년 연장, 계속 고용 제도가 그것이다. 그 결과는? 2012년 통계를 보면 14만개 기업 중 이 의무화에 동참하고 있는 기업은 97.3%에 달했다. 희망자의 정년연장(65세 이상)을 인정한 기업은 48.8%였는데 이중 70세 이상으로 정년을 확대한 곳도 18.3%에 달했다. 계속 고용 제도를 도입한 기업에서는 정년이 된 사람 중 73.6%가 고용을 유지하는 등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사활을 건 정부, 거기에 호응하는 기업의 모습에서 고령화 사회 선배 격인 일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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