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출근 자체가 공포다
  • 허남웅│영화 평론가 ()
  • 승인 2014.09.1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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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선 감독의 <마녀> “올해 가장 볼 만한 공포영화”

<마녀>는 올해 한국 영화계가 생산한 가장 볼 만한 공포영화다. 올여름 개봉했던 두 편의 한국 공포영화 <소녀괴담>과 <터널 3D>가 왜 그렇게 시시했는지를 역으로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마녀>의 배경이 되는 곳은 일반 사무실이다. 신입사원 세영(박주희)은 팀장 이선(나수윤)에게 보고서를 제출했다가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며 호되게 질책을 당한다. 평소 세영에게 감정이 좋지 않았던 이선은 정해진 시간 안에 보고서 건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엄포를 놓는다. 이에 자극받은 세영 역시 자신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면 이선의 손을 자르겠다고 역으로 내기를 제안한다.

팀장 체면에 거절할 수 없었던 이선은 세영의 제안을 받아들이지만 곧 곤란한 상황에 놓인다. 세영이 시간에 맞춰 깔끔하게 일을 처리했던 것. 이선은 내기가 장난이었던 양 그대로 퇴근하려 하지만 세영은 가위를 손에 들고 이선의 손가락을 자르려 한다. 이에 공포를 느낀 이선은 도망치듯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던 중 낌새가 이상해 불을 켜보니 맞은편에서 세영이 가위를 들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사무실은 직장인들에게 일상적인 장소지만 한편으로 가장 꺼려지는 곳이기도 하다. <여고괴담> 시리즈가 여학생을 주인공 삼아 성적 향상을 강요당하고 자칫 왕따로 몰릴 수 있는 학교를 공포의 장소로 묘사했던 것처럼 <마녀>는 업무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직장인을 내세워 사무실을 끔찍한 공간으로 그려낸다. <마녀>를 연출한 유영선 감독은 “출근하는 것 자체가 공포인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장르적으로 배치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연출의 변을 밝힌다.  

관객이 영화에 몰두할 수 있는 중요한 조건 중 하나는 감정을 이입할 대상이다. 특히 공포를 제공하는 게 목적인 공포영화라면 인간이 가질 법한 두려움을 자극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동안 한국의 공포영화는 두려움과 놀람을 구분하지 못한 채 자극적인 묘사에만 열중해 관객의 관심을 끄는 데 실패했다. 귀신을 보는 특별한 능력을 지닌 남학생이 등장하는 <소녀괴담>이나 쉽게 가보기 힘든 폐광촌을 배경으로 한 <터널 3D>는 설정 자체가 이미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어 신체에 상해를 가하거나 사운드를 갑작스럽게 키우는 묘사 위주로 놀람을 주는 데 급급했다.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포

그에 반해 <마녀>는 직장을 다니는 이들이라면 공감할 법한 설정으로 공포심을 건드린다. 업무로 능력을 인정받고 싶은 사원에게는 상사가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으며 자신에게 호의적이지 않은 선배에게는 마음속으로나마 복수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찬 것이 대다수 직장인이 가진 양면성이다. 그와 같은 공포심을 기본 설정으로 삼은 <마녀>는 일개 사원인 세영을 전면에 내세움으로써 끝내는 상사를 향한 복수의 판타지를 실현해 보인다.

세영이 자신을 괴롭힌 팀장 이선에게 복수를 가할 때 사용하는 가해 도구 역시 사무실에서 쉬이 볼 법한 가위, 압정, 커터칼과 같은 문구 종류다. 퇴마사가 등장해 부적에 불을 붙이거나 방독면을 착용하고 무지막지한 도끼를 휘두르는 공포영화의 묘사가 단순한 볼거리로 휘발하는 것과 달리 <마녀>의 도구들은 관객들에게 영화가 그리는 공포를 진짜로 느끼게끔 만드는 효과로 작용한다. 누구나 문구를 다루다 실수로 다쳐본 적이 있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미장센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마녀>의 오프닝 타이틀은 핏빛 자욱한 화면 일색인 대개의 공포영화와 다르게 강변북로가 놓인 한강의 수면 위로 제목 ‘마녀(魔女)’를 반사해 분위기를 고조한다. 마녀는 흔히 사람에게 해악을 주는 마력을 가진 여자를 비하해 부르는 말인데, <마녀>에서는 후배 사원인 주제(?)에 상사에게 대드는 세영을 지칭한다. 아닌 게 아니라, 아무리 팀장인 이선이 도가 지나치게 잘못을 꾸짖어 나무랐더라도 정색을 하고 대드는 세영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났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이 일을 계기로 회사에 무서운 신입이 들어왔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세영은 사무실 내에서 고립되기 시작한다. 동료들은 점심시간에 피자를 시켜서는 의도적으로 세영을 부르지 않는다. 팀장의 손가락을 자르겠다고 미친 척 달려드는 세영을 되바라지게 바라봤던 관객의 입장에서는 어느 순간부터 누구의 잘못인지, 아니 누가 더 마녀 같은지 판단하기 힘든 지경에 놓이는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주된 의도일 것이다. 세영이 반(反)사회적인 행동을 하는 건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마녀였기 때문이 아니다. 세영은 아픈 언니 때문에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아픈 성장기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가족에게, 학교 친구에게, 회사 동료에게 늘 사랑을 갈구했지만 돌아오는 건 무관심과 타박뿐이었고 그에 대한 원망이 축적되면서 주변 사람을 향한 세영의 행동은 엇나가기 시작했다. 결국 세영을 향한 가족과 친구와 동료의 악감정이 세영의 비뚤어진 행동에 투영돼 마녀라는 형태로 나타난 것일 테다.

ⓒ 무비꼴라쥬
마녀는 우리 모두의 비뚤어진 자화상

바로 그것이 <마녀>의 오프닝이 한강변에 주목하는 이유다. 흔히 우리가 ‘한강의 기적’이라고 의미를 부여하는 경제 발전은 인간적인 가치를 희생하면서 얻어낸 결과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살아보겠다는 신념 하나로 초고속 성장을 이뤄낸 배경에는 도덕과 상식이라는 가치 파괴로 얻어낸 물질만능주의가 놓여 있다. 사실 <마녀>의 오프닝에 보이는 강변북로 뒤로는 한국 사회의 초고속 성장을 상징하는 고층 아파트가 즐비하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잃은 사랑의 가치는 얼마나 클 것이며 그에 적응하지 못해 비뚤어진 사람 또한 그 수를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세영은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이 가져온 한강 수면 위에 비친 검은 그림자이면서 우리 모두의 비뚤어진 자화상인 셈이다.

이와 관련해 유영선 감독은 언론 시사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꽤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최근 한국의 공포영화가 겪는 부진에 대해 정곡을 찔렀다. “모든 장르의 영화는 결국 사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정서적인 부분을 소홀히 하다 보니 공포영화 장르가 사장된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러한 문제점을 바꿔보자는 사명감으로 <마녀>를 만들었다.”

아주 중요한 말이다. 지금 한국 영화 시장에서 공포영화는 이벤트 수준으로 전락했다. 여름 시장에 가장 먼저 개봉해야 흥행을 한다는 법칙 아닌 법칙이 한 줌도 되지 않는 이 시장을 지탱하는 동아줄이 됐다. 공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신체를 훼손하는 등 인간을 도구화하는 연출과 이야기가 한국 공포영화로부터 관객을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웬만해서는 공포영화로 투자를 받기가 힘든 게 작금의 현실이다. <마녀>만 해도 불과 3000만원의 제작비로 만들어졌을 정도다. 물론 많은 돈이 투입된다고 좋은 공포영화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제작비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사람이라는 가치를 다시금 돌아보게 할 때, 한국의 공포영화는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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