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송원에게 돈 떼인 재벌 여럿 있다”
  • 김지영 팀장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4.09.24 13:2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술계 유명 인사 “모 재벌은 수십억 못 받아 전전긍긍”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62)가 9월16일 또 구속됐다. 이번엔 1조원대 기업어음(CP) 사기 발행으로 구속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부인 이혜경 부회장과 엮였다. 이 부회장이 법원의 가압류 직전에 빼돌려 팔아달라고 맡겼던 미술품 10여 점 가운데 2점을 몰래 팔아 15억원을 횡령했다는 것이다.

홍 대표가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6년 전인 2008년 삼성특검 때부터다. 삼성 비자금을 미술품으로 세탁해줬다는 의혹이었다. 이후에도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그것도 언론의 ‘문화면’이 아닌 ‘사회면’ 기사에 등장했다. 2011년엔 오리온그룹 비자금 세탁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 그림 로비 사건과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가 갑자기 취하한 사건 등으로도 이목을 끌었다. 지난해엔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1000억원대 미술품 거래를 대행하며 법인세 30억원을 탈루한 혐의가 제기돼 불구속 재판을 받고 있었다. CJ 사건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던 지난해 1월 기자와 만난 홍 대표는 “내가 삼성하고 거래를 하다 보니 이렇게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것이다. 세무조사도 마찬가지다”라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9월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 출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홍송원, 재벌가 숟가락 숫자까지 안다”

미술품을 매개로 ‘재벌가-홍송원’ 커넥션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깊은지는 당사자들 외엔 알 길이 없다. 워낙 은밀하게 미술품과 거액이 오고 갔기 때문이다. 삼성·오리온·CJ·동양 네 곳만 ‘일부’ 드러났을 뿐이다. 본지가 입수한 ‘서미갤러리 통장 내역서’에 따르면, 대상그룹·신세계그룹·아모레퍼시픽·SPC 등과도 거래한 기록이 나와 있다. 갤러리업계 관계자들은 “갤러리에서 공식적인 거래는 통장에 거래 내역이 남는다. 하지만 통장에 기록되지 않는 비공식적인 거래가 중요한 거래다”고 말한다.

홍 대표가 거래했던, 혹은 거래하고 있는 재벌가가 광범위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검찰도 다른 재벌과의 ‘그림 커넥션’에 주목했다. 홍 대표는 지난해 1월 기자에게 “내가 검찰 조사를 받으러 갔을 때 ○○그룹 (회장의 가족인) ○○○씨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근 만난 미술계의 유명 인사는 기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홍송원 대표한테서 돈을 못 받은 재벌이 여럿 있는 것으로 안다. 한 재벌은 그림을 팔아달라고 맡겼는데 홍 대표가 그 그림으로 대출을 받는 바람에 그림값 수십억 원을 못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재벌은 그림값의 출처가 구리니까 신고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홍 대표에게서 돈을 못 받은 재벌들에 대해, 이 인사는 “나하고도 알고 지내는 (재벌) 집안들이어서 말해주기 힘들다”고 했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과거 홍송원 사건을 수사했던, ‘독종’으로 불리는 ○○○ 검사도 홍 대표를 수사하면서 학을 뗐다고 하더라. 내공이 장난이 아니라고 했다”며 “서미갤러리가 그림을 담보로 여기서 대출받아 저기에 갚는 식으로 워낙 복잡했다고 한다. 그만큼 돈이 없었다는 얘기다. 자식들한테 재산을 물려주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홍 대표가 갤러리를 운영하는 자식들에게 ‘변칙 증여’한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홍 대표는 2005년 8월 서울 종로구 가회동 자신의 땅에 건물을 신축해 장남이 운영하는 ‘원앤제이 갤러리’를 만들어줬다.

본지가 입수한 국세청 자료(2011년 작성)에 따르면 ‘홍 대표는 장남 회사를 5년 동안 매출 910억원, 2010년 당기순이익 60억원의 탄탄한 중견 기업으로 만들어준 사실이 있다’고 적시돼 있다. 

재벌가와 끈끈하면서도 은밀하게 거래하고 있는 홍송원 대표가 누구인지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와전되거나 왜곡된 사실도 있다. 본지 취재 결과, 이화여대 사회체육학과 출신인 홍 대표는 1989년부터 화랑을 운영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고만고만한 화랑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미술계 유명 인사는 “홍송원씨는 1997년까지만 해도 국제갤러리 건물 5층 카페에서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었다. 그때는 홍씨가 누구인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중에 (국제갤러리) 이현숙 대표로부터 홍씨가 (카페를) 그만두고 갤러리를 차렸다고 들었다. 1980년대부터 화랑을 운영했다는 것은 잘못 알려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11월1일 국회에 출석한 이혜경 동양그룹 부회장. ⓒ 시사저널 박은숙
홍송원 “난도질당해서 살길이 없다”

이 인사에 따르면 홍씨가 미술계에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 시점은 1990년대 말부터다.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재벌이나 부유층과 거래를 트면서 급성장했다. 대부분 베일에 가려진 은밀한 거래였다.

그랬던 홍 대표가 크게 주목받은 것은 앞서 언급한 2008년 삼성특검 때부터였다. 2011년 오리온 비자금 사건이 터질 때까지만 해도 미술계에서 홍 대표를 연민하는 기류가 강했다고 한다. 갤러리업계의 한 관계자는 “오리온 사건 때만 해도 화랑계에서 홍 대표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복역 후 (집행유예로) 출소한 그해 서미갤러리가 (국세청에) 신고한 세금이 1200억원이나 됐다. 국제갤러리 600억원, 가나아트 400억원에 비해 2~3배나 많은 세금을 신고한 것이다. 그러면서 미술계 인사들 사이에서  동정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홍 대표가 재벌가와 급속도로 가까워진 이유는 무엇일까. 홍 대표에 대해 비교적 잘 아는 미술계 인사는 “(홍 대표가) 재벌가의 입맛에 딱 맞는 그림을 귀신같이 구해서 갖다줬다”며 “심지어 재벌가에서 잘 쓰는 로열코펜하겐 등 명품 도자기와 1000만원짜리 스푼 세트 등을 (외국에서) 들여와 팔기도 했다. 홍 대표가 어느 재벌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훤히 알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라고 말했다. 

화랑가에서 서미갤러리에 대해 나오는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엄밀히 따져 ‘갤러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갤러리계 인사들은 “서미는 갤러리가 아니다. 미술 대중화와는 아주 거리가 멀다”고 입을 모은다. 미술계 유명 인사는 “국제갤러리·가나아트 등 다른 갤러리는 전시회를 자주 한다. 하지만 서미는 1년에 한두 번 하는 게 전부다. 홍송원은 최상위 몇 퍼센트의 클라이언트(고객)들과만 거래하는 사람이다”고 말했다.

한 대형 갤러리 관계자는 “오리온 사건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CJ 사건 등에도 연루된 것을 보면서 ‘홍송원은 안 끼는 데가 없어’라는 말들을 한다”며 “(재벌) 사건마다 연루돼 있는데 누가 홍송원과 거래를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지난해 8월20일 홍송원 대표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난도질당해서 살아갈 길이 없다. 도마 위에서 다져지고 다져졌다”는 극한 표현까지 썼다. 그는 “사람들하고 얘기할 힘도 없다. 언론·검찰·국세청이 숨을 못 쉬게 한다”며 “김 기자가 나랑 1년만 같이 생활하면 나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