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국론 분열? 또 머리띠 두르겠군
  • 이은선│매거진M 기자 ()
  • 승인 2014.10.0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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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 부산영화제 상영 논란

올해도 어김없이 부산국제영화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10월2일부터 11일까지 79개국 314편의 영화가 부산에서 상영된다. 국내 최대의 국제영화제인 만큼 언론과 관객의 관심이 뜨겁다. 올해도 영화제가 열리기도 전에 이런저런 뉴스거리를 쏟아내고 있는 영화가 있다. 바로 <다이빙 벨>이다.

이 영화는 세월호 침몰 사고에 관한 다큐멘터리다. MBC 해직기자로 진도 팽목항에서 세월호 현장을 중계했던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가 연출했고 안해룡 감독이 공동 연출자로 이름을 올렸다. 안 감독은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의 삶과 투쟁을 기록한 <아직도 아물지 않는 상처들>(2003년)과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7년) 등을 연출한 이력이 있다.

다큐멘터리 의 한 장면. ⓒ 시네마달
<다이빙 벨>이 상영되는 섹션은 ‘와이드 앵글’이다. 도전적인 탐색을 통해 세계 곳곳의 현실을 날카롭게 직시하는 작품을 소개하는 섹션이다. 경쟁과 쇼케이스 부문으로 나뉘는데 <다이빙 벨>은 ‘다큐멘터리 쇼케이스’ 부문 상영작이다. 영화제 기간 중 10월6일과 10일 두 번에 걸쳐 상영한다. 이 영화는 85분의 상영 시간 동안 72시간의 골든타임 동안 한 명의 추가 구조자 없이 가라앉아버린 세월호의 의문점을 보여주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알려졌다. 4월16일 오전 8시48분 이후 벌어졌던 사건의 전개 과정과 더불어 세월호 유족 인터뷰도 담겼다고 한다.

영화가 공개되는 것은 부산국제영화제가 처음인 까닭에 구체적인 내용을 언급하긴 어렵다. 이 영화의 배급사인 시네마달 측은 “세월호 사건과 관련한 의문점을 짚어보는 작품”이라며 “다이빙 벨은 세월호 사건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창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 그 자체가 중심이 되는 다큐멘터리는 아니다”고 밝혔다. 영화는 현장에서 이상호 감독과 안해룡 감독이 촬영했던 영상을 편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발뉴스의 영상 일부도 들어 있다. 시네마달 관계자는 영화를 이렇게 설명한다. “2009년 벌어진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2012년)처럼 현장이 아닌 재판 과정 등 이후의 상황을 통해 재구성하는 작품과는 성격이 다르다. 현장성을 기반으로 주류 언론이 다루지 않은 쟁점을 다루고 세월호와 관련한 의혹에 접근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서병수 시장 “정치적 중립 훼손 바람직하지 않다”

문제는 영화가 공개되기 전부터 상영 반대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9월15일 문화예술시민단체인 차세대문화인연대는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골자는 “표현의 자유는 존중해야 맞지만 일방적 시선으로 유가족을 더 힘들게 만들 수 있는 영화 상영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감독 개인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알리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한 셈인데 이들은 ‘국론 분열’이라는 극단적 표현까지 써가며 상영 취소를 요구했다. 이 단체는 지난 8월 영화인들이 세월호 유가족 지지 동조 단식에 들어가자 ‘오해받을 행동은 자제하라’며 반대를 표시하기도 한 대표적 보수 단체다. 이들은 영화제 측에 상영작 선정 기준을 공개하라는 요구까지 하고 나섰다.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부산 해운대구·기장군 을)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다이빙 벨>과 부산국제영화제에 맹비난을 퍼부었다. “(영화제) 프로그램을 선정하는 프로그래머 수준이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공개적인 딴죽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 의원은 “다이빙 벨은 전적으로 사기임이 밝혀졌고 그래서 유족도 격렬히 항의했다”며 “집행위원장 눈에는 사기꾼적 재능도 다양한 재능의 하나인가 보다”라는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하 의원의 멘션을 리트윗하며 “하 의원님 초대할게요”라는 짧은 답글을 남기는 것으로 응수했다.

9월24일 오전에는 일부 세월호 희생자 유족이 기자회견을 통해 상영 반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들은 “다이빙 벨은 단 한 구의 주검도 수습하지 못한 채 현장에서 유족을 우롱했다. 제품 실험으로 끝난 다이빙 벨을 다큐로 제작해 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말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반인 유족 대책위원회 정명교 대변인은 “이종인 대표도 사과하고 물러났던 것이 다이빙 벨”이라며 “무슨 염치로 이 영화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영면을 방해하는 영화 상영을 금지해달라는 것이다. 성명을 발표한 일반인 유가족 대책위원회는 영화가 상영되면 법적 조치도 불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에 앞서 22일에는 한국대학생포럼이 공식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의 비난은 부산국제영화제를 향한다. ‘영화제에서 정치색이 짙은, 게다가 왜곡 선동적 요소가 큰 영상물을 상영할 수 있게 허락한 주최 측의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은 “위원장과 프로그래머가 책임지고 상영을 취소하기를 요구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영화제 측 “상영 취소는 없다” 못 박아

이러한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인 서병수 부산시장의 발언이다. 영화제 관계자 측에 확인한 결과 서 시장이 영화제 측에 공식적으로 상영 금지를 요청한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한 언론과의 접촉에서 “영화제의 발전을 위해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작품을 상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개인적 입장’을 밝힌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이런 얘기가 어디에서 나오는지 알 수 없다”며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영화제 홍보 관계자는 “조직위원장이 공식적으로 상영 중지를 요청한 적은 없다”며 “부산시의 입장이라는 것 또한 어디에서 흘러나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미 예매 사이트가 열렸고 영화가 매진을 기록할 것 같다. 상영을 원하는 관객이 있는데 어떻게 상영 자체를 취소할 수 있겠느냐”며 사실상 상영 취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영화계 안에서는 최근 광주비엔날레에서 걸개그림 <세월오월> 전시가 거부당한 것과 마찬가지 상황이 벌어질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평론가는 “새로운 영화를 발굴하고 상영을 결정하는 것은 영화제의 당연한 권리”라며 “영화가 공개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내용을 미리 예측하고 상영 중단을 촉구하는 것은 폭력적인 처사”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화제에서 상영하는 좋은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 왜 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둘러싸고 여기저기에서 이렇게까지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인지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부산국제영화제 입장에서는 이 논란이 달가울 리 없다. 실제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가 자랑스럽게 밀어붙인 것 중 하나가 ‘다양한 한국 영화의 발견’이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부터 미국 배급을 염두에 둔 애니메이션 <올모스트 히어로>, 마트 여성 노동자의 파업을 다룬 <카트>, 트랜스젠더의 인권 문제를 그린 <하프(half)> 등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는 영화부터 내용이나 주제 그리고 형식 면에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 신선한 영화가 여럿 포진돼 있다. 보석 같은 영화를 만났을 때 관객이 느끼는 ‘발견의 기쁨’으로 가득해야 할 영화제가 본격적인 문을 열기도 전부터 진통을 겪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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