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굴러간다”
  • 조철│문화 칼럼니스트 ()
  • 승인 2014.10.02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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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보다> 펴낸 소설가 김영하

김영하 작가가 서점가로 돌아온 모양이다. 지난 몇 년간 <오빠가 돌아왔다> 등 소설이 영화화되면서 극장가에서 화제를 모았던 터라 그렇다. 최근 <보다>라는 산문집을 내고 낭독회를 여는 등 다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서울 종로구 동숭아트센터에서 열린 낭독회에서 그는 “어릴 적부터 본다는 것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본다는 것은 훈련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상과 다른 것들이 현장에 반드시 있다. 작가·소설가·시인은 잘 보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늘 보는 것이 아닌 것을 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김 작가는 2008년 뉴욕으로 떠났다가 2012년 한국으로 돌아왔다. 작품을 쓰기 위해 단순하고 소박하게 살기를 원한 그는 부산으로 거주지를 정했다.

ⓒ 문학동네
사회 안으로 탐침 깊숙이 찔러 넣고 ‘통찰’

지난해 그는 뉴욕타임스 인터내셔널판의 고정 칼럼니스트로 활약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했는데, 작품 활동을 방해하는 느낌이라 지난 5월부로 이것도 그만뒀다고 한다. 다만 집요하게 팩트인지 아닌지 물고 늘어지는 편집자의 정성에 탄복했다고 한다. “문장이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계속 수정을 요청해왔다.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소설가로서 내 스타일대로 글을 쓰는 나는 괴로워서 그만뒀다.”

그는 “세상은 이렇게 보이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굴러가고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은 그들이 증명하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돼야 사회가 잘 굴러가는데, 그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사회는 시스템에 오작동이 생기거나 하는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산문집 <보다>는 ‘보다-읽다-말하다’로 이어지는 3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다. 이후 김 작가는 석 달 간격으로 책과 독서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산문집 <읽다>와 공개 강연을 풀어 쓴 글을 담은 산문집 <말하다>를 펴낼 계획이다. 물론 소설도 쓰고 있다. “올해는 물리적으로 한 권을 완성할 시간이 남지 않았다. 집에는 쓰다 만 소설이 수두룩하다. 그중 하나가 완성된다면 내년 말쯤 나오지 않을까 한다.”

김 작가는 <보다>를 통해 한국 사회를 잠깐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느낀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소설가가 원래 그런 직업이라고 믿었다. 국경 밖에서 가끔 전파를 송출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면 그것으로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 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 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보는 것, 듣는 것, 경험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김 작가는 한국 사회를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보았다. 경제적으로 빈부격차가 심한 사회가 됐다는 인식을 뛰어넘어, 우리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구석구석까지 사회적 불평등이 침투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특히 <보다>의 맨 앞에 놓여 있는 ‘시간 도둑’에서 그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는 절대적 조건으로서의 ‘시간’ 역시 사회적 불평등 현상으로부터 예외가 아님을 간파했다. 그는 우리가 익숙하게 만나는 풍경, 지하철 안에서 무가지 대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사람의 모습으로부터 계급·계층에 따라 불균등하게 형성돼가는 시간을 발견해낸다.

“이제 가난한 사람은 자발적으로 자기 시간을 헌납하면서 돈까지 낸다. 비싼 스마트폰 값과 사용료까지 지불한다. 반면 부자들은 이들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시간과 돈을 거둬들인다. 어떻게? 애플과 삼성 같은 글로벌 IT 기업의 주식을 사는 것이다. 그들은 클릭 한 번으로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시간을 헐값으로 사들일 수 있다.”

좀 더 미세하게 우리 사회 들여다보다

김 작가는 가난한 이들이 빼앗긴 게 시간뿐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그는 부자들이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소유’를 ‘소유’하며 “이제 빈자의 마지막 위안까지 탐내기 시작했다”고 탄식한다.

“억만장자 니콜라스 베르구엔은 아이폰과 정장 세 벌, 그리고 전용기만 소유한다. 그는 전 세계 특급 호텔을 전전하며 유명 기업을 ‘간접적으로 소유’한다. 우리나라 부자도 다르지 않다. ‘전세(傳貰)’ 귀족은 고가의 주택에 살지만 소유하지는 않으며 무소유에 걸맞게 대부분 차도 갖고 있지 않다. 재벌 일가는 회사를 직접적으로 소유하는 대신 최소한의 지분으로 교묘하게 지배한다.”

김 작가는 소설가답게 좀 더 미세하게 우리가 사는 사회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이를테면 유니클로·자라 등이 유행하는 패스트패션 시대를 이야기하면서 옷 대신 그 자리에 책을 놓고 책이라는 상품의 미래를 묻는다. 그는 누구도 값을 내리라고 요구하지 않는 명품 시계와 비교하며 “책이 필수품이기에 가격 항의에 시달린다”고 분석한다.

오랜 소설 쓰기를 통해 단련된 관찰력으로 5년 만에 펴낸 이번 산문집에서 그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예리하고도 유머러스한 통찰을 보여준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보고 겪은 일을 ‘진심’을 담아 전하기만 하면 상대에게 전달되리라는 믿음 속에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진심은 진심으로 전달되지 않는다. 진심 역시 ‘잘 설계된 우회로’를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 그게 이 세상에 아직도 이야기가, 그리고 작가가 필요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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