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하게, 광대하게’의 유혹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4.10.3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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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계절이 엇갈리는 환절기에는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난감해지곤 합니다. 거리를 걷다 보면 10월 말인데도 반팔 소매 차림으로 지나가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젊음이, 혹은 건강함이 잠시 부러워지기도 하지만, 그 모습은 대체로 풍경 속에 녹아들지 못한 채 튀어 보입니다. 철이 바뀌면 그 철에 맞는 옷차림을 하는 것이 아무래도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일 것입니다.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를 거스르는, 혹은 순리를 거스르는 흐름은 당대의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 공권력의 최전선에 서 있는 검찰과 경찰의 움직임도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수상합니다. 우선 경찰이 그렇습니다. 박근혜정부 들어 6475명이나 보강된 경찰력이 시위 진압에 집중되는 사이 범죄 검거율은 오히려 하락했습니다(시사저널 제1305호 사회면 ‘시민 보호는 뒷전, 정권의 호위무사 됐다’ 참조). 검찰은 또 어떻습니까. “대통령에 대한 모독적인 발언이 그 도를 넘었다”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이 나오기가 무섭게 ‘사이버 허위사실 유포 대응 방침’을 밝혀 단박에 논란의 중심으로 올라섰습니다. 국민 다수가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를 감청한다는 사실에 놀란 일부 이용자들이 너도나도 사이버 망명길에 오를 정도였습니다. 검찰은 영장을 발부받아 합법적으로 감청했을 뿐이며, 정치적 의도도 없다고 해명했지만 ‘사이버 검열’ 문제를 둘러싼 논란과 불안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습니다.

권력자나 권력기관이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 애쓰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국민을 위해 더 좋은 일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방법입니다. 거만한 권력일수록 좀 더 ‘은밀하게, 광대하게’ 정보를 빼내고 싶다는 유혹에 빠져들기 쉽습니다. 그런 탓에 힘을 앞세워 무리한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투명하게, 무리 없이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결국 권력의 능력일 텐데 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바일 메신저에는 온갖 사적인 얘기들이 무제한으로 오릅니다. 그런 사이버 세계에서 단지 범죄 혐의자와 문자 주고받기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기록물을 염탐당하는 것은 영혼을 스캔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일입니다. 그 대화 내용에는 당사자의 세계관이나 인생관이 고스란히 담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헌법 17조에 보장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무력화시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당사자들은 완강히 부인하고 있지만, 최근에 나타난 일련의 흐름은 우리가 예전에 경험했던 공안 정국의 어둡고 불편한 기억을 끄집어내게 만듭니다. 시간이 억지로 되돌려져 국민들이 또다시 감시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면 우리가 그토록 피땀 흘려 지켜낸 민

주주의가 더없이 억울하고 무참해질 일입니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한국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와 같은 외국 언론들의 평을 우리가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 국민은 모두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헌법에 의해 보호받고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지는 못할지언정 불안하게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정부가 있다면 그 정부는 이미 자격 상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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