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를 디자인하라] 대한민국 ‘정부3.0’ 소리만 요란했지 닫혀 있다
  • 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4.10.30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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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특별취재팀, 공공데이터 선진국 현장을 가다

지난해 6월 정부3.0 비전 발표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규정된 정부3.0은 국민 맞춤형 서비스였다. 그런데 현실은 여전히 혼돈스럽기만 하다. 철학적 혼란과 운영의 난맥이 뒤섞여 있다. 공무원들은 가치를 알 수 없는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고, 민간 사업자들은 “쓸모없는 데이터만 넘쳐난다”며 외면한다. 핵심은 ‘어떻게’로 모인다. 국민에게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고 경제적 효과까지 거두겠다는 정부의 선언이 현실화하려면 어떤 실천이 뒤따라야 할까. 시사저널 ‘정부3.0 특별취재팀’은 앞으로 한 달여 동안 우리가 처해 있는 냉정한 현실을 돌아보고 공공데이터 선진국인 영국·호주·미국 등 현지 취재를 통해 해답을 구해보려고 한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요즘 경진대회 준비에 한창이다. ‘정부3.0’ 사업의 컨트롤타워인 안전행정부는 최근 전국 지자체와 부처들을 상대로 정부3.0 우수 사례 경진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본선은 11월5일 열리는데, 이를 위해 사전 심사 성격의 예선이 진행됐다. 부서별로 기존에 있던 사례를 포장하거나 새로 서비스를 만드는 등 바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그렇게 전국 각지에서 치열한 예선을 뚫고 선정된 사례들은 장관상이 걸려 있는 안행부의 본선에 추천된다. 경진대회뿐만이 아니다. 정부3.0을 주제로 수많은 회의가 열리고 있고, 공무원들의 실적 관리도 이뤄진다.


박근혜정부의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인 ‘정부3.0’은 순항하고 있을까. 지난해 해외에서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졌다. 2013년 11월 월드와이드웹재단(World Wide Web Foundation)은 세계 77개국을 대상으로 오픈데이터 지표(ODB)를 조사했다. 오픈데이터 지표는 각국 정부가 공공데이터를 민간에 얼마나 개방하는지를 측정하는 평가다. 정책 준비성(readiness), 실행력(implementation), 영향력(impacts)을 평가해 점수화했다. 1위 영국의 점수 100.00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미국(93.38점)이 2위, 스웨덴(85.75점)이 3위에 올랐다. 한국의 점수는 54.21점으로 영국의 절반에 불과했다. 준비성(77.19점)에서는 좋은 점수를 얻었지만, 실행력(54.90점)과 영향력(24.56점) 점수가 형편없었다. 종합 순위는 세계 12위. 강도 높게 추진된 ‘정부3.0’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증거였다. 현장에서는 네 가지를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문제점 1. 체질 전환 어려운 공무원 조직

“정부3.0은 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공무원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공무원의 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혁신 노력은 겉모습으로 끝나고 만다.” 정부3.0 추진위원회의 간사를 맡고 있는 오철호 숭실대 행정학부 교수의 지적이다.

물론 공무원들도 할 말이 많다. 아래로부터 위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 이뤄지는 정책이다 보니, 애플리케이션(앱) 하나 개발하지 않은 부서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아이템 발굴부터 모두가 다 비전문가인 공무원 개인 혹은 부서의 몫이다. “국민의 수요를 반영해서 해야 하는데, 일단 3.0이라는 목표가 세워진 후 위에서 떨어진다. 서비스를 제공해도 국민 체감이 어떨지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다”(문화체육관광부의 한 서기관)라는 고백이 뒤따른다.

민간 빅데이터업체 ㄴ사의 임원은 자신이 보고 느낀 정부의 공공데이터 개방을 “급박해 보였다”는 한마디로 정리했다. 제대로 된 데이터 거버넌스(관리 방식)가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는 “빅데이터 교육을 받지 않은 공무원 개인의 판단에 따라 수많은 데이터 중에 공개될 것이 결정된다. 이 부분을 따로 다루는 거버넌스를 두지 않으면 공무원들은 공공데이터를 제공하는 일을 하나 더 추가되는 일 정도로 여기게 된다. 정부3.0 사업에 힘을 쏟고 있지만 성공하기 어렵다”고 충고했다.

비슷한 지적은 공무원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앞선 문광부 서기관은 “이걸로 인해 업무 프로세스도 좋아지고 과거와 다른 생산적인 일들이 벌어진다는 걸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중장기적으로 접근해야지 갑자기 뚝딱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게 주변의 생각”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문제점 2. 부처 간, 민간과의 높은 칸막이

관세청과 국세청은 세금을 다루는 곳이다 보니, 고액 상습 체납자 명단을 각각 보관하고 있다. 그런데 명단 중에 겹치는 사람이 10명 있었다. 고작 10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의 체납액은 총 550억원이 넘는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10월14일 국정감사 자료에서 밝힌 내용이다. “개인 상세정보를 파악하면 중복 체납자가 더 있을 것”이라는 게 김 의원의 설명이다. “공개와 공유로 부처 간 칸막이를 낮춰 맞춤형 대국민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이 머쓱해지는 장면이다.

공공데이터 프로젝트에 경험이 많은 기업들은 이런 칸막이를 고민하게 된다. 빅데이터 융합 솔루션업체인 위세아이텍 관계자는 “담당자들은 자신의 부처 내 업무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자기 부처 업무만 너무 깊숙이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것과 연계하는 일, 즉 타 부서나 민간에 있는 데이터와 접목시켜서 하는 데는 제약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전진한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소장은 “데이터로 서비스를 하는 것은 키워드가 중심이 돼서 접근해야 하는데 부처별 각개격파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처 간 칸막이만 문제가 아니다. 민간과의 칸막이도 높다. 전 소장은 “공공데이터 개방이 잘 이뤄지고 있는 서울시는 다양한 민간 그룹이 자문에 참가하고 있다. 그에 비해 정부 쪽은 다양성이 떨어지면서 민간과의 접점이 적다. 대부분 교수들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했다.

2013년 6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정부3.0 비전 선포식’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제점 3. 단기적인 양적 성과에만 집착

지난해 6월 ‘정부3.0 비전 선포식’이 있고 난 뒤부터 공공데이터의 개방은 급속하게 늘어났다. 공개된 오픈 API(직접 응용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개발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플랫폼)는 2013년 10월 116개에 불과했지만, 1년 후인 올해 10월 679개로 급증했다. 데이터 세트(컴퓨터가 처리할 수 있는 데이터 파일) 역시 같은 기간 1344개에서 1만1047개가 됐다.

정부는 공공데이터를 개방했을 때 나타나는 대국민 효과를 산출하라고 담당자에게 요구한다. ‘이런 데이터나 앱을 제공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을지 제출하라’는 식이다. 미래창조과학부의 한 사무관은 “공공데이터를 제공했을 때는 질적인 효과도 나타난다. 그런데 그걸 숫자로 내놓길 원한다. 예컨대 민원인의 불편이 해소되는 무형의 효과에 수십억 원의 효과가 있다는 식으로 내놓길 원하니 곤란한 점이 많다”고 말했다.

예산의 압박도 이겨내야 한다. 올해 예산을 확보해 내년에 시행하는 아이템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예산이 없어도 정부3.0 실적을 위해 뭔가를 만들어야 할 경우, 기존 사업을 정부3.0으로 포장해 제출하는 경우도 있다.

안행부가 운영하는 공공데이터 포털(www.data.go.kr)에 문서 형태의 첨부 파일이 많은 것도 양적 성과를 중시한 결과다. 사소한 일 같지만 사용자 편의로 따지면 형편없다. 문서의 데이터를 엑셀에 입력하는 작업을 한 번 더 거쳐야 한다. 실적 위주의 개방, 주먹구구식 데이터라고 비판받는 부분이다.

문제점 4. 외부에서 쓸 만한 데이터의 부족

분명 양적 개방은 늘어났다. 오철호 교수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는 데이터 부분에 치중했다. 지난해 같은 경우 ‘투명한 정부’를 위한 데이터 개방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정부3.0 사업이 ‘데이터 개방’으로만 비치고 있다는 점이다.

월드와이드웹재단이 한국 정부의 공공데이터 개방을 평가하면서 지적한 ‘약한 영향력’은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작다는 뜻이다. 그만큼 외부에서 데이터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질의 문제다.

안행부에서는 중앙 및 지방 정부 부처마다 빅데이터 담당관 등을 두라고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창조행정담당관’ 등의 직책이 부처 내에서 정부3.0 컨트롤타워를 담당한다. 정부 부처와 프로젝트를 해본 N사 상무의 이야기다. “공공데이터 중에서 어떤 데이터를 개방해야 하는지 판단이 안 되는 상황이다. 품질이 떨어지는 의미 없는 데이터도 상당하고, 관리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데이터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도 많다. 공무원들도 데이터 개방을 하긴 해야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힘들어 한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줄 수 없겠느냐고 묻는다.”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때”

한국의 공공데이터 개방은 선진국에 비해 6년 정도 뒤처진 상황에서 출발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많이 따라붙었다고 볼 수 있다. 오철호 교수는 지금은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할 때라고 진단한다. “1년간 양적 개방을 했는데 실질적으로 소비자가 원하는 것인지, 가치 창출이 가능한지 우리 스스로 컨트롤해봤다. 이를 바탕으로 이제는 양에서 질로 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오 교수의 설명이다.

칸막이 문화를 무너뜨리기 위해 범정부 클라우드 시스템도 도입한다. 한 부처의 자료를 해당 부처 사람만 볼 수 있었던 관행을 깨고 클라우드 컴퓨팅 기술에 의해 어느 부처든 자료를 공유할 수 있게끔 하자는 것이다.

정부 부처 내에서만 고려해서도 안 된다. 민간과의 연계는 공공데이터 개방의 핵심이다. 담당하는 공무원이 스스로 욕심이 날 만큼 가치 있는 데이터를 민간에 제시할 수 있어야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 공공데이터 분야에서 우리랑 비슷한 수준이라는 호주에서는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 5000여 명의 연구 인력이 있는 싱크탱크인 호주연방과학원(CSIRO)은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유익한 데이터를 공급하고 있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을 읽은 민간에서는 이미 시장성을 파악해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대학들은 빅데이터 활용 전문가인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양성하는 학과를 앞 다퉈 개설했다. 기업들은 벌써부터 ‘인재 모셔가기’ 경쟁을 벌이면서 공공데이터의 민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 정부3.0은 세 가지 단계별 목표를 가지고 있다. 투명한 정부, 서비스 정부, 유능한 정부다. 이를 바탕으로 신뢰받는 정부가 되는 게 최종 도달점이다. 1년간 이뤄진 데이터의 양적 개방이 ‘투명한 정부’를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하고 있다면 그 다음 단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우리가 앞으로 영국·호주·미국 등 공공데이터 개방에서 앞서 있는 나라의 발자취를 뒤쫓는 이유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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