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를 디자인하라] 정부와 시민 사이 ‘틈’을 줄여라
  • 영국 런던=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4.10.30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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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정부, 민간의 ‘공공데이터’ 공개 요구 적극적으로 수용

“틈을 조심하라(Mind the gap).” 영국의 지하철역에서 늘 들을 수 있는 안내 방송이다.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에 발이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얘기다. 그런데 이 방송은 이제 막 질주를 시작한 ‘정부3.0’ 열차 안에서도 울려 퍼져야 할 듯하다. 공공데이터를 공개하는 공급자인 정부, 이를 열람하고 이용하는 소비자인 시민, 둘 사이의 ‘틈’이 벌어지지 않는 것이 결국 ‘열린 정부’ 정책의 성패를 판가름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열린 정부’들이 필수적으로 마련하는 것이 ‘공공데이터 포털’이다. 전자정부와 시민이 만나는 온라인 광장이다. 정부는 이곳에 공공데이터를 업로드하고, 시민은 이곳에서 데이터를 검색하고 열람한다. 미공개 자료에 대한 공개 요청도 이곳에서 이뤄진다. 공공데이터 공개 및 이의 활용을 근간으로 하는 ‘열린 정부’ 정책의 기본이자 핵심이다. 한국 정부도 이미 정보공개 포털(data.go.kr)을 개설해 운영 중이다.

영국 정부가 운영하는 공공정보 포털. 시민들의 데이터 공개 요청 처리현황이 자세하게 제공된다.
민간 전문가 15명이 정부-시민 중재

하지만 업계 관계자 및 포털 이용자 사이에서는 여러모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진 방식 면에서 국민의 요구를 반영하지 못하는 쪽으로 드라이브가 걸렸다”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가진 정보를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공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포털에 올라오는 데이터 중에는 일반 문서 형태가 많아 거의 활용할 수가 없다. 데이터를 재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공개해야 한다는 이의제기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같은 말들이다.

영국은 어떨까. 지난 2010년 1월, 공공데이터 포털인 ‘범정부 통합정보 공개 공유 서비스(data.gov.uk)’가 공식 개설됐다. 영국 정부는 현재까지 포털에 1만5000여 개의 데이터세트(dataset)를 저작권 문제에서 자유로운, 재사용이 가능한 형태로 공개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데이터를 공개하는 정부와 이를 이용하는 시민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다양하게 구축했다는 점이다. 자칫 데이터 공개에 소극적일 수 있는 공무원들을 견제하고 압박할 수 있는 장치, 데이터의 소비자인 시민들의 수요 및 요구 사항을 폭넓게 수용할 수 있는 통로를 갖췄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2012년부터 시작된 ‘오픈데이터 사용자 그룹(Open Data User Group·ODUG)’ 활동이다. ODUG는 민간의 데이터 관련 전문가들로 구성된 모임이다. 영국 정부의 위촉을 바탕으로 오픈데이터 요청 및 공개 과정을 중재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경제학자, 데이터 전문가, 관련 기업 CEO 등 15명의 전문가가 공개 지원을 통해 선발된다. 소속 구성원은 1년 단위로 활동한다.

ODUG 구성원들은 시민들이 요청한 공공데이터에 대한 수요를 종합하고 확인해 정부에 전달한다. 일반 시민들은 정부의 어떤 부서에 요청해야 원하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이러한 시민과 정부 사이를 중재하는 것이 ODUG의 역할이다. 이 과정은 포털에 투명하게 공개된다. 요청한 데이터가 어떤 부처 소관인지, 진행 상황은 어떠한지가 대외적으로 공표되는 것이다. 여러 요청 중 우선적으로 공개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데이터세트에 대해 정부에 자문을 제공하는 역할도 수행한다.

시민에게 오픈데이터 정책의 가치를 알리는 일도 한다. 오픈데이터를 활용해 어떤 혜택이 발생했는지 사례 모음집을 주기적으로 발간한다. 최근 공개된 오픈데이터가 어떤 것이며, 이것이 어떻게 재사용돼 시민에게 유익한 정보로 거듭났는지를 설명한다. 이를 ODUG 블로그에도 공개적으로 게재해 모든 사용자가 자유롭게 댓글을 달 수 있도록 한다.

정보공개 포털이 개설되고 1년여가 지난 2011년, 영국 정부는 ‘오픈데이터 현실화(Making Open Data Real Consultation)’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공공데이터를 활용하는 다양한 영역의 이용자들로부터 500여 개의 의견을 청취한 후 주요 사항에 대해 일일이 답변해 공개했다. 별도의 사이트(‘Show Us a Better Way’)를 개설해 시민의 아이디어 수렴과 활성화를 위한 기금 조성 및 포상제를 실시하는 점도 눈에 띈다. 다수 중앙정부 부처에서는 각각 ‘부문 투명성위원회’를 설립해 기업과 시민사회 대표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정보공개 포털을 이용하는 영국 시민의 지속적인 요구 사항은 공개 데이터의 질을 높여달라는 것이다. 영국 정부는 이런 요구에 대해서도 끊임없이 대응해나가고 있다. 영국 내각 실무자 올리버 버클리(Oliver Berkeley)는 “현재까지는 링크를 거쳐 데이터가 있는 곳으로 넘어가는 식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향후에는 그러한 절차 없이 바로 이용이 가능하도록 API 형식을 적극 활용해 공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시사저널 이규대
ODUG 의장으로서 당신의 역할은 무엇인가.

나는 정부 소속 공무원이 아니다.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 오픈데이터 정책 추진 과정에서 영국 정부는 민간의 기업 관계자, 기술 전문가, 데이터를 활용하는 시민 등과 충분히 교류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런데 자체 역량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공개 모집을 거쳐 내가 그 역할을 맡게 됐다. 한쪽에서는 정부와, 또 한쪽에서는 데이터 사용자들과 함께하며 중간에서 이 둘 사이의 의사소통을 중재하고 있다. ODUG 구성원 및 업무를 돕는 사람은 모두 자원봉사자들로, 데이터 업계 종사자이거나 관련 단체에서 활동하는 이들이다.

따로 급여를 받지 않으면서도 열정적인 활동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인가.

오픈데이터에 관심이 많은, 여러 현명하고 흥미로운 사람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인 매력이다. 우리가 한 일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생시킨다는 점, 모든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일을 하고 있다는 데서 느끼는 자긍심도 크다.

영국 정부를 상대해 주로 어떤 활동을 진행하나.

대개 우리는 정부 관계 부처에 즉시 정보를 공개하도록 권고한다. 그 정보를 공개해 얻을 수 있는 혜택이 무엇이며, 염려되는 위험은 무엇인지 함께 조언한다. 공공데이터 포털에 가보면 각 데이터 요청별로 우리가 제시한 권고 사항들이 그대로 공개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독립된 단체라서 직설적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의장인 내가 정부 소속이 아니라는 점도 독립성에 큰 도움이 된다. 우리는 공무원이 아니기에 무슨 말이든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한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열린 정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투명성이 커질수록 정부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참여 역시 늘어나게 된다. 이는 그 어떤 정부나 국가에도 큰 혜택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공공 서비스의 능률적 운영, 아울러 경제 전반의 혁신 및 성장도 기대할 수 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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