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가 동부하이텍 실제 인수자?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4.11.05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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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진 전 부회장이 인수한 아이에이, 우선협상자로 선정

김동진 전 현대차그룹 부회장은 한때 ‘정몽구의 오른팔’로 불렸다. 2000년 현대차그룹에 입사해 10년 가까이 현대자동차의 대표이사를 맡았다. 정몽구 회장이 해외 투자와 같은 큰 그림을 그리는 동안 김 전 부회장은 재정·생산·영업 등 안살림을 맡아왔다. 2006년 터진 현대차 비자금 사태 때는 구속된 정 회장을 대신해 그룹 경영을 총괄하기도 했다. 김 전 부회장에 대한 오너 일가의 신뢰가 남달랐다는 얘기다.

김 전 부회장은 2010년 코스닥 상장 업체 아이에이(옛 씨앤에스테크놀로지)의 지분을 매입해 회장을 맡았다. 아이에이는 비메모리 반도체 설계 전문기업(팹리스)이다. 초대 벤처기업협회장을 지낸 서승모 전 대표가 1993년 회사를 창업했다. 2000년을 전후로 ‘닷컴 버블’이 꺼지면서 수많은 벤처기업이 도산하거나 유명무실해졌다. 서 전 대표는 ‘벤처 빙하기’ 때도 살아남은 몇 안 되는 벤처 1세대 중 한 명이다. 

김동진 아이에이 회장은 10년 가까이 현대차 대표이사를 맡았다. ⓒ 뉴스뱅크 이미지
아이에이 회장 취임 1년 만에 흑자

하지만 회사 실적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세계 최초로 지상파 DMB용 수신 칩을 개발했지만 수익으로 연결시키지 못했다. 서 전 대표는 2010년 3월 자동차 전문가인 김동진 전 부회장을 회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아이에이는 자동차용 반도체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했다. 김 전 부회장의 노력으로 현대차 협력업체로도 선정됐다. 2011년 아이에이는 코스닥 상장 10년 만에 처음으로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아이에이는 최근 동부그룹 재무 구조 개선 차원에서 매물로 나온 동부하이텍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동부하이텍은 시스템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 전문 업체다. 지난해 4937억52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팹리스 업체인 아이에이가 인수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도 아이에이는 현대차그룹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며 “동부하이텍을 인수하면 현대차와 공동 개발한 차량용 반도체를 자체적으로 생산·납품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동부하이텍 인수전은 당초 중국 파운드리 업체인 SMIC와 아이에이-애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컨소시엄(아이에이 컨소시엄), 베인캐피탈-UMC 컨소시엄, 한앤컴퍼니 등 4파전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최종 입찰 단계에서 나머지 세 곳이 포기했다. 결과적으로 아이에이 컨소시엄 한 곳만 동부하이텍 입찰에 참여했다.

매각 주간사인 산업은행은 결과 발표를 미뤄왔다. 10월13일 본 입찰이 끝나고 보름이 넘었음에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다. 아이에이 측도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우리도 언론 보도를 보면서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동부그룹에서 회사 매각과 관련된 내부 절차를 진행하다 보니 발표가 늦어졌다”고 말했다. 10월31일 아이에이가 동부하이텍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연 매출 400억원대의 ‘다윗’이 5000억원에 이르는 ‘골리앗’을 집어삼킨 셈이 됐다.

재계 일각에서는 김 전 부회장의 뒤에 현대차그룹이 있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2010년 김 전 부회장이 아이에이로 옮겨가고 얼마 안 돼 회사 주가가 급등했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들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사실상 해외 업체 몇 곳이 독식하고 있다. 제품을 개발하고도 상용화하기까지 오랜 기간이 걸리기 때문에 국산화가 쉽지 않다”며 “결국 현대차가 아이에이를 인수할 것으로 보고 주식 투자자들이 선제적으로 대응한 것”이라고 말했다.

10월31일 아이에이 컨소시엄이 동부하이텍의 우선협상자로 선정돼 주목받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서승모 전 대표와의 법정 다툼 결과 주목

실제로 아이에이는 2012년 4월 각자대표였던 서승모씨의 배임 혐의가 드러나면서 위기에 빠졌다. 서 전 대표의 횡령액은 자기자본 127억원의 70.73%(90억원)에 달했다. 주식 거래가 중지됐고, 아이에이는 상장 폐지 위기에 몰렸다. 소액주주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이때 구원투수로 나선 곳이 현대차그룹 계열사인 현대오토론이었다. 아이에이는 현대오토론이 인수한 150억원 규모의 전환사채(CB)로 인해 상장 폐지를 면할 수 있었다. 주식으로 전환하면 15.4%에 해당한다. 김동진 전 부회장(14.22%)을 제치고 현대오토론이 최대주주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서승모 전 대표도 2012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전 부회장이 우리 회사를 현대차 계열사로 만들어준다고 했다”며 “경영권 프리미엄으로 나에게 500억원을 주면 250억원을 다시 돌려주기로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서 전 대표는 H증권에 개설된 A사 명의의 계좌에 있는 아이에이 주식 65만주가 김 전 부회장의 차명이라고도 주장했다. 서 전 대표는 2012년 5월 김 전 부회장을 검찰에 고소했다.

김 전 부회장은 지난 2월 서 전 대표를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서 전 대표가 2012년 고소한 사건이 검찰에서 무혐의로 판명나면서 무고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김 전 부회장은 고소장에서 “아이에이를 현대차 계열사로 만들어주겠다고 제의했다는 서 전 대표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며 “의도적으로 나를 훼손하기 위해 언론사에 허위사실을 제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산 순위 국내 2위 재벌그룹 실세에서 벤처기업가로 변신한 김동진 전 부회장이 어떤 행보를 보일지 재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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