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올려 달라네…이민이라도 가야 하나”
  • 조유빈 기자 (you@sisapress.com)
  • 승인 2014.11.0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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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셋값 폭등에 대출받고 이사하고 고달픈 세입자들

서울 시민의 60%가 전·월세로 산다. 치솟는 전셋값은 남의 얘기가 아니다. 가을 이사철이 되면서 “전셋값이 미쳤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집주인이 “올리겠다”고 말하면 이사 가지 않는 한 어쩔 수 없이 올려줘야 한다. 법적으로야 계약 기간이 끝날 때까진 버틸 수 있지만 지금 추세라면 어차피 계약 기간이 끝날 땐 더 오를 것이다. 전셋값을 겨우 맞춰 입주했던 세입자들은 갑자기 수천만 원을 끌어와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김 아무개씨(34). 방 3개짜리 다가구주택에 6년째 1억원 전세로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집주인으로부터 2000만원을 올리겠다는 통보가 왔다. 매매가가 1억4000만원인데 전셋값이 1억2000만원이라니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아이들 학교 배정과 직장 출퇴근 문제 탓에 어쩔 수 없었다. 원래 전셋값으로 근처에서 다른 전세를 구하기는 더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 대출을 받아 2000만원을 올려 내야 했다.

10월31일 서울 신천역 근처의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아파트 전세 시세가 적혀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경기도 용인시에 살고 있는 A씨는 2년 전에 전셋값을 30% 올려줬다. 그런데 재계약을 앞두고 집주인은 또 30%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결국 무리해서 집을 사버렸다. 집주인이 올린 전셋값과 매매가의 차이가 별로 안 나기 때문이었다. 두 딸의 피아노 교육을 시키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취득세·등록세 등 세금까지 나가게 돼 여간 부담스럽지 않았다. 1억원이 넘는 빚까지 짊어지게 됐다. 내 집을 장만했다는 행복은 간데없이 빚 갚을 걱정만 쌓였다.

전셋값 인상 통보 전부터 전전긍긍

경기도 광명시에 사는 B씨도 ‘하우스 푸어’가 됐다. 45평 아파트를 2억원 전세로 살던 그는 2년이 지나 전세금 1억2000만원을 올리겠다는 집주인의 통보를 받았다. 감당하기 어려워 저렴한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지만 출퇴근을 하는 데 두 시간씩 걸렸다. 결국 살던 아파트로 1년 6개월 만에 돌아왔다. 그런데 전셋값은 4억5000만원으로 뛰어 있었다. 3년 6개월 만에 전셋값이 무려 2억5000만원이나 오른 셈이다.

결국 그는 은행 대출을 받아 같은 아파트 작은 평형을 5억원에 샀다. 그는 “2년마다 쫓겨나느니 집 크기를 줄여서라도 안심하고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집주인으로부터 ‘전세금을 올려 내라’는 요구를 받은 세입자들의 선택은 보통 세 가지다. 무리를 해서 집을 사거나, 더 싼 전세를 찾아 이사를 가거나, 울며 겨자 먹기로 집주인의 요구를 수락하는 경우다. 3억원이 넘는 전셋값을 내고 사는 세입자들은 대체로 전세금을 올려줄 바에야 무리를 해서라도 내 집을 사는 게 유리하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1억~2억원대 전세 세입자들은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대출을 받아 전셋값 인상분을 메우거나, 전세금 일부를 보증금으로 걸고 월세로 전환하는 ‘반전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그 돈으로는 집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전셋값이 두려워 재계약 전부터 전전긍긍하는 사람도 많다. 이 아무개씨(36)는 아파트 전세 계약 만기를 두 달 앞두고 재계약서를 미리 다시 썼다. 부동산중개소에서 만기가 되는 12월이 되면 전셋값이 1억원 이상 오를 것이라고 말해줬기 때문이다. 더 오르기 전에 계약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6000만원을 올려주기로 하고 주인과 재계약에 합의했다. 그는 “그동안 모아왔던 적금을 깨 6000만원을 올려줬지만 자꾸 치솟는 전셋값을 보니 그나마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전국세입자연합회는 “기한이 남았는데도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려달라는 요구를 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세입자들이 ‘전·월세상한제’에 대해 종종 문의해온다”고 전했다. 얼마 전에는 서울 강남구의 3억원짜리 전세 아파트에 사는 한 세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고 했다. 그는 “올해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될 것 같으냐”고 물었다. 집주인이 전셋값을 대폭 올리려고 해 걱정된다는 것이다. “제도 도입이 무산된 것 같지만 시간이 가면 결국 되지 않겠느냐”는 세입자연합회 관계자의 답변에 그는 낙담하며 “우리나라에선 결국 안 되나 보다. 이민이라도 가야겠다”는 말을 남긴 채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전세 시장에 미처 발을 들이지 못하거나 집주인의 요구로 전세에서 월세로 전환한 세입자들도 어려운 상황이긴 마찬가지다. 서울 노원구의 C씨(60) 부부는 보증금 1500만원에 월세 70만원을 내고 장애가 있는 아들과 함께 방 두 개짜리 주택에 살고 있다. 130만원이 채 되지 않는 수입으로 월세를 감당하는 것도 힘든 판국에 월세를 올리겠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관리비를 포함해 20만~30만원을 내고 살 수 있는 공공임대주택을 구하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 신청을 한다고 해도 언제 기회가 올지 모른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의 공공임대주택 대기자는 10만명을 넘는다.

“전세값 올리겠다”는 시점 살펴야

‘을’인 세입자 입장에서 집주인의 전셋값 인상 통보는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무조건’은 아니다.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2조에서 임대료 인상률을 5%로 제한하고 있고 계약 체결 후 1년, 임대료 인상을 하고 나서 1년이 지나야 인상이 가능하다. 또 주택임대차보호법 제6조 1항에 따르면 집주인이 임대차 기간이 끝나기 6개월 전부터 1개월 전까지의 기간에 계약 해지 또는 계약 조건 변경을 통지하지 않으면 동일한 조건으로 다시 임대차 한 것으로 본다. 계약 종료 1개월 전까지 집주인이 전셋값 인상에 대해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면 기존 계약이 연장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전셋값을 올려주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집주인이 ‘전셋값을 올리겠다’고 하면 그 시점이 언제인지 꼭 살펴야 한다.

나날이 고공행진하는 전셋값 통제가 필요하다는 세입자들의 목소리가 높지만 전·월세상한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현 정부가 이 제도를 수용할 가능성도 낮아 보인다. 10월30일 정부는 ‘서민 주거비 부담 완화 대책’을 발표했다. 김재정 국토교통부 주택정책관은 “전·월세상한제 도입과 전세 임대차 기간을 3년으로 확대하는 것은 단기적 전세금 상승뿐 아니라 전세 주택 유지·관리에도 문제가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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