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판교의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최 아무개씨(41)는 상장지수펀드(ETF) 투자자다. 주가가 오를 것 같으면 지수 상승률의 두 배 수익을 낼 수 있는 레버리지 ETF를 샀다가 ‘꼭지’라고 판단되면 인버스(지수 하락 때 수익) ETF로 갈아타는 전략을 쓴다. 최근까지는 재미를 봤다. 코스피지수가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 불만이 있다. ETF 수익률이 가끔 지수와 반대로 움직인다는 것. 최씨는 “주가지수가 오르는데도 ETF 수익률은 오히려 마이너스를 기록한 날도 적지 않다. 그럴 때마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ETF를 놓고 이런 불만이 생기는 것은 기초자산(지수)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상품의 특성 때문이다. 예컨대 코스피200지수를 추종하는 ETF는 자산운용사들이 직접 다수의 종목을 선별해 담는 식이다. 편입 종목의 움직임에 따라 코스피200지수와 정반대 움직임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11월17일 상장지수증권(ETN· exchange traded note)이 등장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ETN은 기초자산인 지수의 움직임을 100% 복제하는 파생 금융상품이다. 2002년 선보인 후 18조원 규모로 성장한 ETF 시장을 위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초자산 가격 100% 복제하는 상품
ETF는 자산운용사가 발행하지만 ETN은 증권사가 자신의 신용을 바탕으로 발행한다는 점이 다르다. 또 ETF와 달리 만기도 있다. 보통 15~30년이다. 투자기간 동안 지수의 기초 수익률을 보장하는 일종의 채권(note)이란 얘기다.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이자만 없을 뿐이다.
이런 점에서 또 다른 증권사 상품인 주가연계증권(ELS)과 비슷한 구조다. 다만 만기 이전에 중도 환매할 수 없는 ELS와 달리 만기 전에도 얼마든지 사고팔 수 있다. 매도 시점의 기초자산 가격에 따라 수익을 내거나 손실을 볼 수 있다. ELS 투자자의 상당수가 손익 구조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불만을 표시하는 데 반해 ETN은 기초자산만 이해하면 되기 때문에 투자하기가 쉽다. ETN을 매수하고 매도하는 호가 단위는 5원이다. ETN의 과세 체계는 기본적으로 ETF와 동일하다. 매매할 때 증권거래세(0.3%)를 낼 필요가 없다. 국내 주식형 ETN이라면 매매차익에 대해서도 비과세된다. 국내 주식형을 제외한 나머지 ETN을 매도한 후 차익이 생겼다면 배당소득세(15.4%)를 내야 한다.
ETN의 역사는 해외에서도 오래되지 않았다. 2006년 6월 영국의 투자은행인 바클레이즈가 미국에서 일반 상품 지수를 기초로 발행한 것이 시초다. 세계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미국 ETN의 순자산은 277억 달러(올 9월 말 기준) 규모다. 독일·일본 등에서도 거래액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ETN의 상장 종목 수는 금세 늘어날 전망이다. 증권사들이 쉽게 설계할 수 있는 구조여서다. ETN에선 기초지수 구성 종목을 최소 5개만 편입하면 된다. ETF의 경우 10종목 이상 넣어야 한다. 훨씬 폭넓은 종류의 ETN이 나올 수 있는 배경이다. 다만 기초자산에 비해 두 배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레버리지형 등은 출시될 수 없다. 중(中)위험·중(中)수익 투자에 적합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11월에 첫 상장되는 ETN은 가장 단순한 구조의 상품들로 구성됐다. 투자자들이 쉽게 이해하고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전략형 8종과 배당형 2종 등 10종이다. 발행 금액은 4700억원 규모다.
대우증권은 변동성이 작은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삼은 ‘대우 로우볼’ ETN을 선보인다. 등락이 심하지 않은 종목들로만 구성해 시장 초과 수익률을 내는 게 목표다. 우리투자증권의 ‘옥토 빅볼’ ETN은 이와 반대다. 시가총액 상위 종목 중 6개월간 변동성이 큰 종목에 집중 투자하는 식이다.
중위험·중수익형 10개 먼저 상장
신한금융투자는 달러로 환산된 코스피200에 투자하는 ETN을 상장한다. ‘신한 K200 USD선물 바이셀’과 ‘신한 USD K200선물 바이셀’ ETN이 그것이다. 외국인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증시 상승과 함께 환율이 강세를 띠곤 하는데 이런 현상을 이용해 수익을 내는 방식이다. 현대증권의 ‘에이블 코스피200선물플러스’와 ‘에이블 퀀트 K150 비중 조절’ ETN은 국내 지수 선물과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삼는다.
배당형 ETN도 2종 출시된다. 삼성증권의 ‘프리펙스 고배당 유럽주식’ ETN(헤지형)은 유럽 주식, 우리투자증권의 ‘옥토 와이즈 고배당’ ETN은 국내 주식(우량 배당주 중에서 내부 유보율이 높은 15개 종목)을 기초자산으로 한다. 둘 다 배당의 안정성과 배당 수익률 상위 종목을 집중 편입한다.
ETN 출시 초기엔 중위험·중수익 위주의 안정적인 상품 위주로 선보이지만, 향후 원자재나 변동성 지수 등을 기초로 한 ETN 발행도 활발해질 것이란 게 한국거래소 측 전망이다.
ETN의 단점은 발행사에 대한 리스크다. ETF의 경우 자산운용사가 망해도 원금을 건질 수 있다. ETF가 엄연히 ‘펀드’인 만큼 자금을 무조건 외부 수탁 기관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ETN을 발행한 증권사가 부도를 내면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 증권사가 자기 계정으로 보유하고 또 운용하는 구조여서다.
자기자본이 1조원 이상이고 신용등급이 ‘AA-’ 이상이며 영업용순자본비율(NCR)이 200% 이상인 증권사에만 ETN의 발행 자격을 준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기 신용으로 설계하는 방식인 만큼 당국이 우선 우량한 곳만 발행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까다로운 ETN 발행 요건을 맞춘 증권사는 한국투자증권·KDB대우증권·삼성증권·신한금융투자·하나대투증권·우리투자증권·현대증권·미래에셋증권·대신증권 등 9곳이다.
그래도 ETN을 매매하기 전에 증권사 신용도를 들여다볼 필요는 있다. 따로 담보나 보증이 없기 때문이다. 장기 투자할 생각이라면 더욱 그렇다. 실제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했을 때 이 회사가 발행한 ETN은 휴지조각이 됐다.
ETN의 수수료는 ETF보다 다소 높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반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TF와 달리 헤지(위험 회피)를 위한 거래비용이 더 소요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