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를 디자인하라]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가 금융 사기범 잡는다
  • 호주 시드니·캔버라=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4.11.0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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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 전문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육성하는 호주 대학들

빅데이터는 마치 요리 재료와 같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로는 가치를 발휘하지 못하지만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면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니게 된다. 요리 전문가가 요리사라면, 빅데이터 부문에서 그 역할을 하는 이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다. 널려 있는 데이터들을 분석해 위험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게 해주는 ‘현대판 노스트라다무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빅데이터를 개방하는 것을 넘어 제대로 활용하게 하려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키워야 한다. 맥킨지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까지 미국에서만 19만명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부족 현상이 생길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호주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호주 정부가 ‘데이터 마이닝(광산)’을 만들기 위해 한창인 지금, 대학들은 앞 다퉈 데이터 사이언스 과목을 개설하고 광물을 캐낼 광부들을 키우기에 여념이 없다. 빅데이터 및 열린 정부 부문에서 호주는 미국보다 늦었지만, 인재 양성에서만큼은 뒤지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정부는 비전을 제시하고 민간은 그것을 보고 미래를 준비하는, 자연스러운 민관 협력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데이터 광부’들을 양성하는 호주의 시드니 대학과 UTS(Univercity Technology of Sydney·시드니기술대학)를 찾아 학생과 교수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드니기술대학(UTS) 데이터 사이언스 학과 학생들과 교수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 시사저널 엄민우
졸업하자마자 억대 연봉…모셔가기 경쟁

시드니 대학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는 비즈니스 스쿨 산하에 있다. 여러 분야 중 특히 비즈니스 부문에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소양을 집중적으로 키우기 위해서다. 데이터 사이언스는 어떻게 보면 통계학과 유사하지만 기본 성격 자체가 다르다. 시드니 대학 데이터 사이언스 부문 학과장을 맡고 있는 리처드 거레이츠 교수는 데이터 사이언스가 통계학과 다른 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통계학은 이론에 중심을 두고 기존 데이터로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학문이지만, 데이터 사이언스에서는 과거 분석이 아니라 미래 예측이 중요한 의제다. 예컨대 바이러스가 창궐하면, 기존 학문은 원인이 뭔지를 분석하지만, 데이터 사이언스는 환자 분포 등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연구한다.”

위험을 예측하고 분석한다는 면에서 경제학과 유사해 보이지만 큰 차이가 있다. 시드니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윌슨은 “경제학은 최대 70개의 변수로 가정을 해서 미래를 예측하지만, 우리는 무한정의 변수를 넣을 수 있어 가장 현실적인 예측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구글 번역기를 예로 들었다. 일정한 규칙 모델을 바탕으로 한 문장을 다른 국가의 문장으로 해석하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면 이상한 비문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데이터 사이언스 식으로 작업을 하면 실제 언어 샘플들을 수천만~수억 가지 무한정으로 집어넣고 그것을 바탕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오류가 날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학문 자체가 실용적 측면이 강하고 미래 전망도 밝기 때문에 눈치 빠른 기업들은 이들을 채용하려고 혈안이다. 특히 위험 분석에 관심이 많은 금융권에서 눈독을 들이고 있는데, 취업하자마자 받는 연봉이 15만 달러(약 1억6000만원) 이상이고 미국 기업의 경우 이를 훨씬 넘는다고 한다. 호주의 높은 물가 등을 고려하더라도 적은 액수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학생이 기업을 찾아다니는 게 아니라 기업들이 학생들을 먼저 찾는다는 것이다. 시드니 대학은 IBM 등 세계적인 기업들과 산학 협력도 활발히 벌인다. 시드니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클라우디아는 “산학 협력을 통해 학점도 받고 배운 것을 어떻게 적용할지 익힌다”고 말했다.

특히 UTS는 호주에서도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와 관련해 산학 협력 및 인재 양성에 가장 적극적인 곳으로 꼽힌다. 2012년부터 매년 시드니와 수도 캔버라에서 ‘빅데이터 서밋’을 개최하고 있다. 빅데이터 분야와 관련해 세계 각지에서 저명한 인사들이 연사로 참여하고 정부 부처 관계자들도 나와 정책 방향 등을 설명한다. 올해도 전 야후 부회장이자 ‘빅데이터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우사마 파야드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 CDO, 호주 국세청 부청장 등이 연사로 참석했다. 한 대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치고는 규모가 엄청나다. 내년엔 ‘KDD 2015 컨퍼런스’라는 행사를 개최하는데 구글 등 세계적인 IT기업들이 스폰서를 맡겠다고 나섰다.

왼쪽 사진 = 시드니 대학 데이터 사이언스 학과 교수(맨 왼쪽)와 학생들. 오른쪽 사진 = 시드니 기술 대학의 리 박사가 개발한 금융 사기 적발 시스템.
빅데이터 통해 실시간 사기 거래 적발

이곳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박사 학위를 받은 리 박사가 한 금융회사와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보면, 해당 학문을 전공한 이들에게 기업들이 군침을 흘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리 박사는 온라인뱅킹 등 은행 거래를 할 때 데이터를 분석해 위험 거래 여부를 미리 알려주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하루 수백만 건의 거래가 이뤄지는 은행 거래 중 온라인 사기 등 위험성이 있는 거래 200~300개를 자동으로 찾아내 분류한다. 리 박사는 기업 이름 등을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해당 데이터를 기자에게 보여주며 “이 중에서 실제로 2~3건은 사기 거래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해당 시스템은 실제 거래 시의 행동 프로파일 데이터 등 수십만~수백만 가지의 변수를 바탕으로 이상 거래를 가려낸다. 정확도가 높은 만큼 고객사의 만족도도 높다.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에 대한 수요는 눈치 빠른 금융권에서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 대한 연구 모델도 개발 중이다.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하기 위해 인도에서 UTS로 건너온 셰믹은 중환자에 대해 의사들이 긴급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델을 개발하려 한다. 환자들이 병원에 오면 혈액검사 등을 통해 상태를 파악하고 어떻게 치료할지 등의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초를 다투는 중환자의 경우 좀 더 빠른 판단을 요한다. 셰믹은 이런 중환자가 실려올 경우, 혈액검사 등으로 신체 정보들을 수집해 데이터 모델에 집어넣으면 즉시 어떻게 대처할지 알려주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최근 들어 국내에서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와 관련한 컨퍼런스가 열리는 등 관심이 커지고 있다. 몇몇 대학에서 이와 관련한 학과를 개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제대로 된 교육과정은 없다. 정부3.0과 관련해 자문위원을 맡은 교수들은 대부분 실제 데이터 사이언스와는 거리가 먼 행정학과 출신들이다. 그럼에도 스스로를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있다. 산업계

와 연계해 활동하며 새로운 모델을 개발하고 있는 호주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호주의 사례는 우리가 해당 분야에 제대로 첫 단추를 끼우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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