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은 안전한가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4.11.19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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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가면 어머니는 새벽부터 마을회관 앞으로 서둘러 나가곤 하셨습니다. 그곳엔 아주머니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러면 트럭이 나타나 아주머니들에게 뭔가 들어 있는 상자를 나눠줬습니다. 앞에 선 사람에게는 두 개씩 주기도 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상자를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선 것입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도라지가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동네 아주머니들은 도라지 껍질을 벗기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라지 껍질을 한 상자 벗기면 5000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손놀림이 빠른 사람은 하루 1만원을 번다고 하더군요. 서울로 돌아올 때 어머니는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식당에 가거든 도라지 반찬은 절대 먹지 말라고. 도라지에 얼마나 표백제를 퍼부었는지 껍질을 벗겨 며칠을 둬도 하얀색 그대로라는 겁니다. 그것은 중국산 도라지였습니다. 시골 아주머니들이 껍질을 벗긴 도라지는 전국 곳곳 식당으로 팔려나갔습니다. 식당 사장님들께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는 그 이후 음식점에서 도라지 반찬을 먹지 않습니다.

요즘 한의원들이 장사가 잘 안 된다고 합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사람들이 보약을 먹지 않아서라고 하더군요. 한 한의사는 한약재를 믿지 못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산 한약재가 들어오면서 보약에 대한 믿음이 깨졌다는 것입니다. 중국산 한약재를 끓인 탕약이 중금속 덩어리라는 얘기가 나도는 판이니 그럴 만도 합니다.

어느 음식점이나 벽에 식재료 원산지 표시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김치가 중국산이라고 적혀 있으면 젓가락이 잘 가지 않습니다. 위생 상태는 괜찮은지 의심부터 듭니다. 중국 업자들이 고춧가루를 붉게 염색하고, 무게를 부풀리려고 꽃게에 납을 넣는 장면이 머리에 콱 박혀 있는 것입니다.  

한·중 FTA 협상이 타결됐습니다. 벌써부터 중국과 교역을 하고 있는 업체들은 주판알 퉁기기에 바쁩니다. 경제적 이해득실이 중요하지만 우리의 식탁 안전을 지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중국산 농수산물과 가공식품이 물밀듯 들어올 겁니다. 당장 관세가 20%에서 18%로 낮아지는 김치

가 음식점 식탁을 점령할 것입니다. 지금도 음식점 김치의 80% 이상은 중국산이라고 합니다. 관세가 낮아지거나 없어지는 들깨·참깨도 중국산으로 대체될 것입니다.

한·중 FTA가 발효되면 중국산 식품에 대한 소비 양극화가 심해질 겁니다. 요즘도 일반 주부는 중국산 식품을 바구니에 담지 않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서민들은 상대적으로 값싼 중국산을 사서 먹습니다. 중국산이 범람할 경우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입니다. 먹거리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입니다. 관계 당국은 한·중 FTA 발효에 앞서 철저한 검역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납을 넣은 조기, 대장균이 득실거리는 김치가 우리 식탁에 올라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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