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시사저널 보도로 이혼했다” 억지 주장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4.11.23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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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관련 기사 보도 전 이혼 신청…논리적으로 앞뒤 안 맞아

 

시사저널이 3월23일 보도한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기사와 4월8일 보도한 ‘“정윤회가 승마협회 좌지우지 한다”’ 기사.

박근혜 대통령이 의원이던 시절 비서실장을 지낸 정윤회씨가 시사저널 보도로 인해 이혼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낸 정씨 측은 11월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첫 재판에서 “정신적 충격과 고통을 겪어오다가 가족의 최소한의 명예와 인간다운 삶을 지키기 위해 지난 5월 이혼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근거 없는 허위 보도로 온 가족이 고통을 받았고 아내와 딸을 위해 이혼했다”는 것이다.

시사저널은 그동안 소송 당사자로서 법적 대응 이외에 다른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정씨는 민사소송과 별도로 시사저널 기자 3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형사 고발했고, 해당 기자들은 서울중앙지검에서 관련 조사를 충실히 받았다. 시사저널 보도에 위법성이 있는지 여부는 사법부의 판단에 맡기는 게 옳다고 여겼다. 지금도 이러한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

정씨 부부, 3월27일 이혼 조정 신청

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사실에 부합하지 않은 주장이 제기되고, 이러한 주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논란을 불러온 데 대해서는 추가 설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시사저널 보도 때문에 이혼을 했다는 정씨의 주장은 기사 보도 시점과 이혼 소송 시점만 따져 봐도 터무니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과관계가 제대로 성립되지 않는다.

시사저널은 3월23일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 기사를 보도했다. 복수의 여권 관계자로부터 ‘박지만 미행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었고, 이를 바탕으로 취재한 내용을 기사화했다. 박지만 EG 회장이 현직 대통령의 동생이고 정윤회씨가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거론돼 왔다는 점에서 단순히 개인 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정윤회·최순실씨 부부가 이혼한 사실은 7월 중순 동아일보 보도로 외부에 알려졌다. 이후 쏟아져 나온 언론 보도를 종합해보면 정씨 부부는 3월27일 서울가정법원에 이혼 조정 신청을 했다. 시사저널의 보도가 나간 지 나흘 뒤다. 이 기간 동안 시사저널 기사 때문에 당초 계획에도 없던 이혼을 결심했다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

이에 앞서 최씨는 58년간 사용해온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최씨 소유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통해 확인된 개명 날짜는 2월13일이다. 최씨의 개명과 이혼소송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최씨가 이름을 바꿔 소송 절차에 들어갔기 때문에 장기간 신분 노출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정씨 측이 이혼 사유로 ‘아내와 딸’을 거론했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3월23일 보도한 기사는 정씨에 초점이 맞춰졌지 아내와 딸에 관한 의혹 제기가 아니었다. 부인 최씨가 박근혜 대통령과 가까웠던 고 최태민 목사의 딸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정씨가 누구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이혼 신청 후 보도된 기사로 ‘가정 파탄’?

정씨 측이 ‘가정 파탄’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문제시한 기사는 ‘“정윤회가 승마협회 좌지우지한다”’(4월8일)와 ‘정윤회씨 딸,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 ‘특혜’ 논란’(6월20일) 기사로 보여진다. 대한승마협회 전·현직 고위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 승마 국가대표인 정씨의 딸이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의혹 제기였다. 그런데 해당 기사는 정씨 부부가 이혼 조정 신청을 한 이후에 보도된 것들이다. 정씨 측 주장은 앞뒤가 안 맞다.

정씨 딸에 대한 특혜 의혹은 승마계 내부에서 이미 제기돼온 사안이었다. 체대 교수 출신으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인 안민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시사저널 보도가 있었던 4월8일 대정부질문에서 ‘실세 특혜’ 의혹을 제기했다. 안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 최측근으로 통하는 정윤회씨의 딸이 승마 국가대표로 선발돼 특혜를 누린다는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다음 날인 4월9일에는 시사저널에 증언했던 승마협회 전직 인사들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정씨 측 주장처럼 ‘가족들의 사생활’도 아니고 ‘터무니없는 억측’도 아닌 것이다.

정씨도 승마계에서 자신과 관련해 이런저런 얘기들이 나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정씨는 4월4일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승마협회와 관련해 그동안 별의별 말들이 다 있었다. 지난해부터 얘기가 나왔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했는지는 확인해보면 다 알 수 있다”고 밝혔다. “내가 또 뭘 어떻게 했느니 얘기가 있더라” “또 무슨 얘기 나오니까 아예 피해 다닌다” “딸에게 누가 될까 봐 걱정돼 늘 조심한다” 등의 말도 했다.

정씨 측은 “사랑하는 딸의 심적 상처와 장래에 미칠 악영향에 대한 염려로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도 이 부분에 상당한 신경을 썼다. 관련 취재를 하면서 정씨의 딸이 연습과 경기를 하는 데 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했다. 정씨 딸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삼간 것은 물론 정치권에서 나온 ‘공주 승마’와 같은 표현도 사용하지 않았다.

정씨 측은  3월27일 보도된 ‘박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불리는 정윤회는 누구’ 기사와 관련해 “대부분의 사실관계에 대해 정치권에서 떠돈다는 낭설·의혹 또는 ‘여권 한 인사’라고 취재 근거를 들고 있으나 이는 취재팀의 자작으로 보여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시사저널이 스스로 지어낸 얘기가 아니라 취재 과정에서 실제 여권 인사들이 한 말을 인용한 것이다. 이 중에는 “2012년 대선 때는 캠프에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는 증언도 있다.

정씨 측은 또 “가족의 부동산 보유 상황, 기업의 사업 내용과 사업 계획 등 사생활까지 기사로 게재 발간·배포했다”고 주장했다. 시사저널이 기사에서 언급한 주요 부동산은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ㅁ빌딩과 강원도 평창군 용평면 도사리 일대 땅이다. 회사는 정씨가 대표로 있는 (주)얀슨밖에 없다.


‘강남팀’ ‘만만회’ 이미 제기됐던 의혹

ㅁ빌딩의 소유주는 부인 최씨다. 그런데 최씨 명의 부동산은 취득 과정을 두고 이미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선 예비후보 검증 때 ‘최 목사의 자녀들이 강남에 수백억 원대 부동산을 가지고 있다는데 육영재단과 관련해 취득한 재산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자 “천부당만부당하다. 말이 안 된다”고 부인했다. 당시 최씨도 서면 답변을 통해 “유치원 운영이 잘돼서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게 됐다”고 밝혔다.

평창 땅의 경우 정씨가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 직을 그만둔 전후로 사들였다. 10필지에 총 23만431㎡(약 6만9705평)에 이른다. 당초 대규모 목장 건설을 위해 인허가까지 획득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업이 중단됐다. (주)얀슨이 신고한 업종 중 ‘승마장업’이 있는 것도 관심을 끈다. ㅁ빌딩과 마찬가지로 취득 경위와 활용 방안을 ‘사생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최씨는 이혼 후에도 (주)얀슨의 사내이사로 등재돼 있다.

정씨 측은 ‘2007년 대선 경선 때 강남팀을 조직·운영했다’ ‘대통령의 가장 핵심 비선으로 만만회가 있는데 가장 주목되는 사람이 정윤회다’ 등을 거론하며 “추측·의혹·낭설·출처불명의 취재원 등을 자의적으로 집합해 허위사실을 적시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은 정씨가 2007년 대선 경선 때 강남팀을 조직 운영했다고 단정 짓지도 않았거니와 강남팀은 오래전부터 야권은 물론 여권 내부에서도 공공연하게 나돌았던 얘기다. 만만회의 경우 제1야당 원내대표를 지낸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방송에서 처음 언급한 후 이미 여러 언론에서 다뤘던 의혹이다. 마치 처음 나온 얘기인 양 시사저널 보도를 문제 삼는 게 오히려 생뚱맞다.

정씨를 둘러싼 갖가지 의혹은 어제오늘 제기된 게 아니다. 박 대통령의 ‘비선 라인’이 도마에 오를 때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하고는 했다. 정씨가 이에 대한 해명을 하지 않아 의혹을 더 키우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시사저널은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정씨의 설명을 직접 듣고 이를 최대한 반영해왔다. 그동안 많은 의혹이 제기됐지만 시사저널만큼 정씨의 입장을 있는 그대로 전달한 언론 매체는 없었다. 억울하다는 정씨의 주장에 전화가 아닌 대면 인터뷰를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그럴 필요 없다며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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