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시대의 종말 ‘시한폭탄’ 돈다
  • 김관웅│파이낸셜뉴스 기자 ()
  • 승인 2014.11.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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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금리로 집주인들 월세 선호…정부 뚜렷한 대책 없어

좀체 수그러들지 않는 전세난에 대한민국이 온통 시끄럽다. 저금리에 돈 굴릴 데 없는 집주인은 전세를 월세로 전환하고 있고, 매달 나가는 월세가 아까운 세입자는 전셋집을 내놓으라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전세난을 잡을 뾰족한 묘안이 없는데 자꾸 대책을 내놓으라고 하니 난감하기만 하다. 정치권은 부작용은 나중 문제이고 일단 전셋값을 잡겠다며 전·월세 상한제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세제도를 둘러싸고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한민국의 풍경이다. 마치 떠나려는 자와 잡으려는 자의 승강이 같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왜 전세제도를 놓고 이토록 아우성을 벌일까.

■ 전세와 월세, 줄다리기 본질은?

서울 잠실동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 시사저널 이종현
만약 2년 전 전세보증금 3억원짜리 전셋집이 전세보증금 4억원으로 올랐다고 치자. 세입자 입장에서 전세보증금 1억원을 올려주는 경우와 이를 반전세로 바꿔 월세를 낼 경우 어떻게 차이가 날까. 반전세율은 통상적으로 전세보증금에 0.6~0.8%를 곱한 금액을 월세로 산정한다. 이 경우 오른 전세보증금 1억원을 월세(전환 이율 0.8%로 가정)로 전환하게 되면 세입자는 기존 전세보증금에 연간 960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은행에서 대출 이자 3%(신용도 등에 따라 다름)로 1억원을 대출받아 전세보증금을 올려줄 경우 연 이자 부담액은 360만원에 불과하다. 세입자 입장에서 월세로 전환하면 연간 600만원이나 손해를 보는 셈이다.

반면 집주인은 어떨까.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넣어놓고 이에 대한 이자 수익을 얻고 있다고 가정할 때 전세보증금을 3억원에서 4억원으로 올려봤자 손에 쥐는 돈은 별반 차이가 없다. 은행 예금 금리를 2%(이자소득세 등 감안)로 했을 때 연 60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200만원 늘어나는 정도다. 반전세로 돌릴 경우 연간 760만원이 더 들어오게 되니 이 유혹을 뿌리칠  수 없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전세와 월세의 줄다리기는 누가 더 이익을 가져갈 것인지와 관련된 파워게임”이라며 “이는 정부나 정치권의 인위적인 간섭이 아닌 시장이 결론을 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전세 대책? 없는데 어떻게 내놓나

정부는 지난 10월30일 10·30 전·월세 대책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의미 있는 발언을 했다. 국토교통부 김재정 주택정책관은 “전반적인 경제 구조상 임대차 시장에서 전세가 월세 또는 보증부 월세로 전환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며 “월세화 흐름을 인위적으로 막기는 어려우며 정부가 개입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앞으로 주택 임대차 시장 정책 방향이 월세에 초점이 맞춰질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사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전세 대책은 없다. 전세난은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인데 저금리로 전세 주택이 보증부 월세나 월세로 전환되고 있는 것을 강제로 막을 수도 없고 단기간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번 대책에서도 전세난에 대한 내용은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 있도록 건축 기간이 짧은 연립과 다세대주택을 최대한 많이 공급하겠다는 게 전부다.

■ 정치권, 전·월세 상한제 카드 만지작

10·30 부동산 대책이 ‘전세 대책 없는 월세 대책’이라고 뭇매를 맞자 정치권은 전·월세 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미경 의원은 “고공행진 중인 전세가격 대책이 빠진 단기 성과만 노린 벼락치기 대책”이라며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임대차 등록제 등 전·월세 시장의 체질을 바꿀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도 “계약갱신청구권은 반대하지만 (전세금) 인상률을 규제하는 전·월세 상한제는 검토해볼 만한 상황”이라고 말해 전·월세 상한제 도입에 대해 문을 열어놓았다.

전·월세 상한제는 정부가 전·월세 인상률을 5% 이내로 제한하고 세입자에게 계약이 만료된 후에도 계약을 갱신할 수 있는 권리를 한 차례 더 줘 임대차 계약 기간을 최대 4년까지 보장하자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법무부가 전세 주기를 현재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전·월세 전환율 상한선을 10%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임대차보호법 연구 용역을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임차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유럽의 경우도 대부분 공공임대에만 이를 엄격하게 적용할 뿐 민간 임대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규제하지 않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공공임대주택에 대해서는 임대료 인상을 연 5% 이내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를 민간 부문 월세와 전세 주택까지 확대한다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말했다.

■ ‘전세 시대 종말’ 이젠 인정해야

일각에서는 이제 전세 시대의 종말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과 같은 초저금리 시대에는 더 이상 전세제도가 유지될 수 없는 데다 세입자만 약자로 보고 집주인의 재산권을 강제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업계 한 전문가는 “저금리에 돈 굴릴 데도 없는데 집주인에게 전세만 강요하고 그것도 모자라 상한제까지 도입한다는 것은 과도한 측면이 있다”며 “고가 주택에 전세를 사는 사람도 많은 만큼 세입자를 무조건 약자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 강남권에서 전세가액이 10억원을 넘는 경우도 수두룩한데 이들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 모든 세금에서 자유롭다”며 “3억원짜리 주택을 매입해 사는 사람과 10억원짜리 전세 주택에 사는 사람 중 누가 더 보호받아야 하는지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세 주택에 대한 국민들의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얼마 전 결혼을 앞둔 후배가 강남에서 전세를 얻고 싶은데 자신이 가진 돈으로는 엄두도 못 내겠다며 정부의 무능을 탓하더라”며 “속으로는 돈이 부족하면 강남이 아니라 그 가격에 맞는 곳을 찾아야지, 강남에 못 들어간다고 집값이 비싸니 전셋값이 미쳤느니 하는 건 시장경제를 거스르겠다는 것일 뿐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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