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끼리 몸 합치는 진짜 속내 따로 있다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4.11.27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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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등 규제 피하려 합병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8월 현대위아의 현대위스코·현대메티아 흡수합병과 현대오토에버의 현대씨엔아이 흡수합병, 현대건설의 현대건설 인재개발원 흡수합병 소식 등을 발표하자 업계 관계자들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합병의 배경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중복 사업을 통합해 효율성을 높이려는 사업조정이라는 반응도 있었지만, 올해 초 현대엔지니어링의 현대엠코 흡수합병에 이은 지배구조 개편이라는 측면에서 그룹 내 후계 구도와 연관해 해석하는 이들도 있었다. 정지선 현대차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포석으로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하지만 현대위스코 합병을 뜯어보면 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정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한 채로 현대위스코를 독자적으로 상장하면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을 마련하기 더욱 유리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소위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피하기 위한 편법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도가 어찌 됐든 계열사 간 합병으로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등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워졌다는 점은 분명했기 때문이다.

ⓒ 일러스트 오상민
대기업의 문어발식 급성장에는 계열사 간 부당한 내부 거래, 즉 ‘일감 몰아주기’가 큰 몫을 했다. 대기업 계열사는 그룹 내부 거래를 통해 사업 초기부터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받았다. 이후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면, 이를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해 덩치를 공룡처럼 불렸다. 대기업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매출 지원은 대기업의 성장 공식처럼 이용돼왔다. 하지만 이는 대기업의 시장 지배적인 지위를 높여 건전한 시장경제를 저해하는 독과점 문제를 낳았다. 특히 일부 대기업은 재벌 2~3세가 대주주로 있는 계열사에 대한 내부 거래를 부의 세습에 악용하기도 했다. 

2013년 7월2일 국회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규제법이 통과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현대위스코, 흡수 합병으로 과세 대상 제외

대기업의 고질적인 일감 몰아주기 관행이 사회적 문제로까지 비화하면서 이를 막기 위한 각종 규제 제도가 도입됐다. 국회는 2013년 7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자산 5조원 이상 상호 출자제한 기업집단 소속의 동일인 및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 지분율이 20%(상장 회사는 30%) 이상인 경우 일감 몰아주기 및 회사 기회 유용을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했다. 이를 어길 경우 공정거래위원회가 해당 기업에 과징금 처분을 내리고 형사처벌도 가능하도록 했다.

이에 앞서 국세청은 2011년 상속증여세법(상증법) 개정 후, 2013년부터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증여세 과세를 하고 있다. 지배주주와 친족이 일감 몰아주기로 얻은 이익(증여의제이익)에 대해 증여세를 과세하는 제도가 도입된 것이다. 이를 통해 대기업 계열사가 정상 거래 비율인 30%를 초과하는 내부 거래를 하고, 주주 지분율이 3%를 초과하면 과세를 하도록 했다. 국세청이 지난 6월 대기업으로부터 일감 몰아주기 과세 신고를 통해 받은 증여세액(2013년분)은 총 1025억원이었고, 신고 주주는 14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규제가 늘어나면서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회피하기 위한 대기업들의 ‘묘수’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인 계열사 간 합병을 통해 재벌 총수 일가의 계열사 지분을 임의로 줄이는 방식이다. 해당 대기업은 기업 구조 개편 등을 명분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내부 거래는 그대로 유지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규제를 피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꼼수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의 현대엠코는 올해 1월 현대엔지니어링에 흡수 합병됐다. 지난 2002년 현대차그룹의 본사 건물과 공장 등을 짓는 사업을 하다 아파트 건설까지 사업을 확장한 현대엠코는 합병 전 정의선 현대차그룹 부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지분이 각각 25.06%와 10%였다. 또 지난해 기준 총매출(2조7000억원) 중 계열사(특수관계법인)와의 매출(1조4000억원) 거래 비중은 53.16%였다. 상증법상 일감 몰아주기 과세 기준인 지분율 3%, 내부 거래 비중 30%를 초과하기 때문에 현대엠코는 일감 몰아주기 과세 대상이다. 하지만 합병 후 지분율이 낮아지면서 증여세의 부과 기준이 되는 증여의제이익 또한 크게 줄어들었다. 현대엔지니어링에 대한 정 회장 부자의 지분율이 현대엠코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당히 낮은 탓이다.

합병 전 정 부회장의 증여의제이익은 141억9000만원, 정 회장은 45억원이었지만, 합병 후 두 사람의 증여의제이익은 각각 42억원과 8억원으로 크게 낮아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비상장 회사인 현대엠코는 합병 전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율이 20%를 초과하고 내부 거래 비중도 53.16%로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에 대한 부당한 이익 제공에 해당돼 규제 대상이었다. 하지만 합병 후 지배주주 일가의 지분율이 16.4%로 낮아져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앞서 언급한 현대자동차그룹의 계열사인 현대위스코는 흡수 합병을 통해 총수 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과세를 아예 피해간 사례로 꼽힌다. 1974년 설립된 차량 부속 단조품 제조·판매업체인 현대위스코는 현대위아에 흡수 합병됐다. 정 부회장이 흡수 합병 전 보유하고 있던 현대위스코의 지분율은 57.87%(2013년 기준)였지만, 현대위아로 흡수 합병된 후엔 1.95%로 크게 낮아졌다.

현대위스코는 합병 전 정 부회장의 지분율이 3%를 초과하고 내부 거래 비중 또한 정상 거래 비율인 30%를 초과하는 66.02%였기 때문에 일감 몰아주기 증여세 과세 대상이었다. 당시 정 부회장의 증여의제이익은 47억8000만원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합병 이후 정 부회장의 지분율은 과세 기준인 3% 이하로 떨어지면서 과세 대상과 부당 이익 제공 규제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최근 3세 경영 세습이 가시화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는 삼성그룹의 삼성SNS(옛 서울통신기술)와 삼성SDS의 합병도 계열사 합병을 통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완화한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삼성SNS는 삼성SDS에 흡수 합병됐다. 합병 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SNS 보유 지분율은 45.69%였고, 내부 거래 비중은 42.38%(2013년 6월 기준)였다. 합병 이후에도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율은 11.25%,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은 각각 3.9%씩을 보유하고 있고 내부 거래 비중이 69.87%에 달해 여전히 과세 대상이다. 하지만 합병을 통해 지분율이 하락하면서 증여의제이익은 감소하고 증여세 부담도 줄어들었다. 특히 삼성SNS는 합병 전 공정거래법상 부당이익 제공 규제 대상이었지만 삼성SDS와의 합병으로 내부 거래 추정 비중은 69.87%로 여전히 높은데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됐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2014년 49개 상호출자 제한 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고 전년과 비교가 가능한 37개 그룹의 1171개 계열사 중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은 105개로 전년 117개보다 12개 줄어들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대주주 일가 지분을 줄이거나 사업 조정 등의 방법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간 매출 주고받기도 의심

상호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대기업의 내부 거래 비중을 낮추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 사례도 있다. 보험사를 계열사로 두고 있는 ㄱ그룹과 ㄴ그룹이 그렇다. 보험사는 통상 보안을 명분으로 그룹 내 IT 관련 계열사를 통해 각종 보안 관련 사업을 진행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ㄱ그룹 보험사는 ㄴ그룹의 IT 서비스업체에, ㄴ그룹 보험사는 ㄱ그룹의 IT 서비스업체에 용역을 맡겼다. 이를 통해 두 그룹은 IT 계열사의 매출은 보장받으면서 내부 거래 비중을 낮췄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피하기 위해 ㄱ그룹과  ㄴ그룹이 서로 매출을 주고받은 ‘짬짜미’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국세청 등 관계 당국은 일부 대기업이 계열사 합병을 통해 지분율을 희석하거나 매출 주고받기 등을 통한 방법으로 과세를 피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라 집중 조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인수·합병이 기업 경영의 고유 영역이라는 점에서 일감 몰아주기 규제 회피라는 고의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당국이 일감 몰아주기를 회피하려는 대기업의 꼼수를 적극적으로 제어하기는 힘들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이에 따라 일감 몰아주기 과세 및 규제 기준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 채이배 회계사는 “현 제도로는 대기업이 계열사 간 합병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내부 거래를 통한 부의 축적은 그대로 이어가면서 규제를 회피하는 것을 막기 힘들다”면서 “내부 거래 비중이나 지분율 등 비율에 따른 과세가 아닌 절대 금액 기준으로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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